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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 크리스토프의 ‘사이렌’

퓰리처상 역사상 부부특파원으로 국제보도상을 받은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의 2월 28일자 ‘위험스런 비밀계획’이란 칼럼이 잘못 이해 되고 있는 것 같다.

크리스토프가 화교 3세대인 부인 세릴 우던과 함께 NYT 홍콩 지국장에서 베이징 지국장으로 간 것은 1988년 겨울. 크리스토프는 몇 달되지 않아 천안문 사태를 맞았다.

‘베이징의 강경 탄압-군대, 베이징인들의 저항을 공격하고 붕괴시켰다’는 1989년 6월 4일의 천안문 기사는 그에게 1990년 퓰리처 상을 받게 했다. 같은 날 부인 우던 특파원도 ‘베이징 거리에는 고뇌, 분노, 눈물이 넘쳐’라는 기사를 보내 처음으로 부부가 각각의 이름으로 국제보도부문상을 탔다.

그는 베이징에 자주 들르는 북한측 주요 인사들이 자신에 대해 “중국 당국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요. 그러니까 우리의 친구인 셈이지” 라고 느끼는 것 같다고 실토했다.

그는 베이징 이후 도쿄 지국장을 거쳐 97년에 본사에 귀임했고 NYT의 선데이 매거진 부국장으로 있다가 2001년에 칼럼니스트가 되어 지금은 주 2회 국제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는 베이징에서의 중국 경험을 살려 ‘중국이 깨어나다’라는 책을 95년에 냈다. 새로운 세계국가로 등장하는 중국의 신구 정신의 갈등을 부부가 함께, 그리고 따로 따로 상황을 분석한 책이다. 그 후 도쿄 특파원을 마치면서 이들 부부는 또 인도네시아, 인도, 싱가포르, 한국 등 아시아를 돌며 ‘동방으로부터의 천둥-신생 아시아의 초상’을 냈다.

그가 도쿄 특파원일 때 서울은 그의 취재 영역이었다. 두 책에는 적잖게 한국의 미래, 과거가 잘 엮여 있다.

그는 북한이 핵개발 사실을 시인하고, 핵 발전소 재가동에 들어 갈 것이 명백해지는 지난해 12월 20일 이후 8차례에 걸쳐 워싱턴- 서울- 평양간의 핵 문제를 칼럼에서 다뤘다.

이 칼럼에 등장하는 김정일 위원장이나 북한은 그의 ‘친구’가 아니다. 그의 친구는 아시아의 새별이 되기위해 열심히 살려는 한국 사람들이며 그걸 지키려 주둔하고 있는 주한 미군 3만 7,000명이다. 그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제2차 한국전쟁이다. 그 피해는 적어도 그의 친구인 100만명 한국인의 죽음이다.

그가 1997년께 북한을 처음 방문 했을 때 느낀 것은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가 ‘위대한 지도자’로 타이틀이 바뀐 것이었다. ‘수령’이 아버지 김일성의 최고 지위였다면 ‘지도자’는 김정일의 그것이다. ‘친애하는’이 아버지 사후 ‘위대한’으로 바뀐 것이었다. 더 독재화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개방, 개혁이 떠들어지지만 모든 인민이 ‘위대한 지도자’의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를 1대씩 가지고 있었다. 그건 스피커였지, 다른 소식을 들을수 있는 다이얼이 있는 라디오가 아니었다. 북한은 굳어 있었다.

그때의 북한 방문을 배경에 깔고 그는 김정일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생각은 하나일 뿐이라고 추론했다. 이라크와 미국이 전쟁을 하는 동안 핵 제조에 나서 적어도 2005년 이후에는 년간 60개정도 핵탄을 제조, 이를 판매하겠다, 그걸 원하지 않으면 미국은 북한과 단독으로 협상하고 국교 및 통상을 재개하자는 것이다.

그는 2001년 미 대선 때는 조지 부시 진영에서 취재기자를 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위성으로 찍은 사진에서 본 북한 정치수용소의 황폐한 모습에서 너무나 심한 충격을 받았음을 전해 들었다.

“나는 이 친구(김정일)가 속에서부터 싫다. 어떻게 인민을 굶겨 죽이는가. 거대한 정치수용소에는 가족이 이산되고 고문이 자행된다. 나는 충격받았다”고 흥분해 말했다는 것이다. <봅 우드워드의 ‘부시의 전쟁’에서>

그러나 그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미국의 포격을 받아 제2한국전쟁 직전, 자살 하지 않는 이상, 부시는 김정일과 대화, 협상이란 외교를 벌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위험스런 비밀계획’을 실시하기 전에 1956년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로 전쟁이 발생 했을 때 아이젠하워가 영국과 프랑스의 군사작전에 참여 하지않고 봉쇄정책+협상외교를 벌인 것을 닮으라고 권했다.

미국은 김정일 위원장에게서 부도덕, 독재, 폭군의 냄새가 나더라도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코를 막고 협상에 응하라는 권고다. 그는 “무력이 뒷받침하는 외교는 성공한다. 외교없는 무력은 성공 못한다”고 사이렌을 울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3/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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