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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식 파격인사] "관행은 가라" 물갈이 태풍예고

기수파괴, 서열무시, 영역붕괴로 혁신적 내각 인선

노무현 정권을 이끌어 갈 참여정부의 첫 내각이 진용을 드러낸 2월27일, 국민은 우려와 기대가 교차된 마음으로 고 건 국무총리의 신임 장관 발표 내용을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평소 밝혀온 대로 그간의 관행을 깬 '깜짝 인물'이 장관 대열에 합류했으며 나이와 성(性), 경력 등을 파괴한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춘추관에서 진행된 내각 발표 기자회견에서 연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참여정부의 조각 과정을 설명하면서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아주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으며 여기까지 왔다"며 비교적 순탄하게 조각이 마무리 된 데 대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보는 각도에 따라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적절한 분들이라고 자신한다"며 "적재적소 원칙에 안배를 보완해 개혁장관 안정차관 방향으로 조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들과 문답형식으로 해당 장관에 대한 인선배경을 밝히고 시중의 지적을 해명하기도 했다. '지나친 파격인사'라는 주장에는 "그야말로 지방자치의 오리지널"(김두관 행자) "검찰 독립성을 결코 훼손치 않을 것"(강금실 법무)이라고 추켜세웠다.

시민단체 반발과 권양숙 여사 측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선되기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고 아내는 아무 상관없다"(김화중 복지)고 해명했다. 또 분위기 쇄신용 개각은 멀리하고 가급적 2년에서 2년반 정도의 임기를 보장해야 지속적인 개혁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식으로 진행된 장관 소개가 끝나자 노 대통령은 큰 소리로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헌정사상 첫 여성 법무장관, 군수출신 40대 행정자치장관, 현직 영화감독의 문화관광부 장관 발탁 등은 분명 전례 없는 파격 인사다. 또 농고출신의 농민 정책 대변가, 시민운동에 잔뼈가 굵은 여성운동가, 전직 여성부 장관의 환경장관 임용 등도 실험적인 인사에 포함된다.

또 경제분야의 수장격인 경제부총리는 50대의 고시 13회 출신인데, 산하 부서격인 산자와 건교 장관에는 고시 선배인 12회와 10회가 임명되는 등 '서열 파괴'도 동시에 이뤄졌다.

이 같은 인사는 차관 및 산하기관 후속 인사를 통해 각 부처에 '물갈이 태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차관인사에 뒤이은 차관보, 국장급 인사다. 차관급 인사는 청와대의 의중이 많이 반영된다는 점에서 예외로 하고, '깜짝 장관'들이 직접 손을 댈 수 있는 1급 인사에서는 서열파괴에 따른 물갈이가 폭풍처럼 몰아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한 인사쇄신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장관 혼자 참여정부의 개혁 의지를 실천에 옮길 수 없기 때문이다.


파격인사 40대 트로이카, 법무 행자 문화

참여정부의 파격성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더욱 두드러진다. 문화의 창의성과 다양성 함양에 걸림돌로 지목된 문화관광부에는 '관의 피해자'이자 '적군'쯤으로 인식되던 영화감독 이창동씨가 장관실로 들어갔다.

이 장관이 배우 문성근, 명계남씨 등과 노사모 활동에 적극 나섰던 점에 대한 '보은'의 의미도 없지 않지만,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서기관급 주무 과장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던 영화감독이 단숨에 문화ㆍ체육계를 주무르는 수장이 됐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세상이 뒤집어져도 이렇게까지 뒤집어질 수 있는가'를 느끼게 한다는 인사도 있다.

각 부처를 돌며 일일이 악수를 나눈 이 장관의 파격은 이튿날에도 이어졌다. 취임날에 관용차를 거부하고 자신의 지프를 몰고 출근한 것이다. 문화관광부 인사와 문화계 전반에 몰아칠 '변화의 바람'을 미리 보는 것 같다는 평이다.

군수출신으로 행자부 장관에 오른 김두관 전 남해군수도 기존의 관행으로는 상상키 어려운 인사이다. 50~60대 정치인 출신이나 대통령 핵심 측근 등 '전국구형 중량급'들이 임명되던 자리에 중앙무대에서는 낯선 40대 중반의 신예가 기용됐기 때문이다.

김 장관은 이를 의식한 듯 "저보다 연배가 위인 간부들을 형님처럼 모시겠다"고 했지만 모든 간부들이 그의 다음 조치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1995년 무소속으로 최연소 군수(36)에 당선된 그는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조치로 남해군을 발칵 뒤집은 놓은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인사의 최대 하이라이트로 평가되는 강금실 법무부장관 카드에서는 여성과 40대, 판사를 거친 민변 부회장 출신이란 점에서 노 대통령의 강력한 검찰 개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인선 배경에 대해 "내가 검찰의 서열주의를 존중할 의무는 없다.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나 달라"는 당부와 의지를 담은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검찰의 내부 반발을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인데, 강 장관의 사시 동기생들은 현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 중간 간부층을 형성하고 있어 앞으로 검찰 의 서열 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경제는 세대교체, 외교안보는 안정속 변화

과거에 비하면 '김진표 경제팀'은 실무ㆍ관리형 성격이 강하다는 평이다. 다만 대부분 현물경제보다는 세제(稅制) 전문가들이란 점에서 노 대통령의 재벌개혁 의지에 걸맞은 인사라는 분석도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급격한 경제 관료의 세대교체. 행시 14회인 김진표 부총리는 전임 전윤철 장관과는 무려 9기의 고시 기수 차이가 난다. 차관급 인사에 따라 1급 간부 직원들의 물갈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도 행시 13회 출신이라 사정이 달라질 건 없다.

새 경제팀이 실무형으로 짜여진 만큼 청와대 정책실의 방향 설정에 정부 부처가 성실히 수행해가는 경제운용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을 하는 이들이 많다.

다만 정치인 출신의 농림부 장관 임용과 해양수산 업무에 낯설은 교수 출신, 환경분야에 '왕초보'격인 여성장관을 놓고 잔뼈가 굵은 전문 관료 출신의 경제 각료들이 어떻게 호흡을 맞춰갈 지 관심사다.

외교안보팀은 다른 분야에 비해서는 비교적 파격의 폭이 작았다. 통일부는 유임됐고 국방장관도 서열을 중시한 4성 장군출신이 됐다.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50대 초반의 윤영관 서울대 교수가 장관으로 영입된 외교부. 장관의 대학 동기들이 이제 외교부내 국장급에 올라 있어 서열을 중시하는 부내 관행을 고려하면 장관급 일부지역 대사 자리를 제외하면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격인사가 말해주듯 참여정부의 평균 연령은 55세로 DJ (59세)와 YS(55.5세) 때보다 낮다. 50대가 20명중 15명이고 40대 3명에 60대는 고 건 총리와 조영길 국방 등 2명뿐이다. 노 대통령은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라며 "50,60대가 되어야 장관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도도한 변화를 담을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내각의 '젊은 피' 수혈을 강조했다.

조각 때마다 관심을 끄는 지역안배는 여전하다. 영남 7명에 수도권과 호남 각 4명, 제주 강원 이북 출신이 한명씩 차지해 비교적 고른 등용을 나타냈다. 이전과 다른 점은 여성 장관이 크게 늘어난 것. DJ(2명) YS(3명) 때보다 많은 4명으로 양성 평등을 주창해온 노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으며, 특히 복지 환경 문화 등의 '마이너' 분야에서 탈피해 법무라는 메이저급에 올려놓은 점도 눈에 띈다.

학력별로는 서울대 출신이 12명으로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동아대와 이화여대가 각 2명이고 김영진 농림장관이 최종학력이 농업고교 졸업이다. 이전 정권에서 인재 풀로 활용되기도 했던 육사 등 사관학교 출신은 국방장관에 갑종출신이 임명되면서 단 한명도 장관을 배출하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첫 내각은 '기수 파괴' '서열 무시' '영역 붕괴'로 요약 된다. 기존의 인사관행에 대한 도전적 의미를 갖는 개혁적 인사로 환영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신 질서' 정착과정에서 불안을 우려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인사내용을 참신하다고 반기는 사람들 조차도 내면적으로는 불안감을 감추지 않을 정도다. 국민은 노 대통령이 조각 발표회견장에서 보여줬던 기대에 부푼 표정이 언제까지 유지될 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3/03/11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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