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키팅 선생' 정효찬

"틀을 깨고 보면 파격은 없는 거죠"

"키팅 선생이라뇨? 엽기 교사일 뿐입니다."

지난해 경북대 교양 과목인 '미술의 이해' 기말고사에 파격적인 시험 문제를 냈다는 이유로 미대 강사 자리에서 해촉됐던 정효찬(31)씨. 그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양대에 시간 강사로 전격 초빙돼 대학가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가 새 학기에 맡은 강의는 사범대한 응요미술학과에 교약 강좌로 신규 개설된 과목인 '유쾌한 이노베이션'. 이 강의는 수강신청 시작 단 2분만에 100명 정원을 채우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긴 데이어 한 반(100명 정원) 이 더 개설 됐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참 교사상으로 등장한 '키팅 선생'으로 비유되던 정씨의 팔을 대학 사회가 들어준 것이다.

"대학원(경북대·조소 전공)을 졸업하고 강의를 처음 시작한 것이 지난해였어요. 특별히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고, 교육 철학이 뚜렷한 것도 아니죠. 그러니 키팅 선생에 비교되는 것은 부담스럽기만 해요. 아마 그역을 맡은 배우 로빈 윌림엄스하고 몸무게는 비슷할 거예요."


학생들의 눈과 마음 열겠다

2월 25일 정효찬씨는 개강을 앞두고 수업 준비를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 낡은 청바지에 편한 점퍼 차림, 얼굴 가득히 사람 좋은 웃음까지 띤 그는 걱정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이는 낙천주의자의 모습이었지만, 주변의 기대를 의식한 듯 수업에 대한 부담과 앞으로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지금은 호기심으로 제 강의를 선택한 학생들이 많을 겁니다. 한양대 학생들이 실제로 저의 수업을 들었을 리도 없구요. 먼저 거품을 뺄 생각입니다. 저에 대해 기대치만 턱없이 높아진 것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니까 이벤트를 하거나 개인기를 연마할까 궁리도 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냥 긴장을 풀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편하게 수업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그는 미술이 무엇인지 머리로 알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데 이번 학기의 수업목표를 두고 있다. 어떤 작품을 보고 감흥이 일면 그 작품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뒤따라 온다는 논리다. 먼저 미술에 대해 알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학생들의 눈과 마음의 문을 열겠다는 계획이다.

"현대 미술은 대하다 보면 유명학 작가의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겠는데, 가슴이 멎을 듯한 감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경우가 있거든요. 작품에서 받는 감흥까지 학습받을 수는 없는것이니까요. 어떤 작품에 대해 이론적으로 알아보기 이전에, 가슴으로 느끼는 수업이 먼저 필요하다고 봅니다."

수업의 목표가 다른 강의와 차이가 나는 만큼 시험 출제 방식도 고정관념을 깰께 분명하다. 경북대에서 대학생 시험 문제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상식 파괴'의 방식을 택했던 그였으니 말이다. 기대에 부푼 학생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미스 코리아 대회처럼 학생 평가단을 구성해 봤으면 합니다. 최고 점수와 최하 점수를 빼고 평균 점수로 성적을 내는 방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강의 첫 시간에 학생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본 뒤 결정하려고 합니다. 학생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효찬씨는 평소 학생들과 "형, 동생"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본인 스스로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고 할 정도로 낙천적인 성격이다. 수업은 학생들의 주제 발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재미있고 튀는 것을 즐기는 편이지만, 문제의 '기말시험'이 그토록 사회적 파장을 일으킬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학기 중에 학생 개인의 예술관을 밝히는 발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때 나온 내용 가운데 인상 깊었던 것을 문제로 재구성했던 것입니다. 학생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발표를 한 번 더 생각해 볼수 있었으면 했고, 부수적으로 얼마나 수업을 잘 들었는가를 확인해 보고도 싶었습니다. 솔직히 저의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은 그러한 문제를 별다른 무리없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즐겁게 시험이 끝난 뒤 학생들의 기념으로 시험지를 몇 장 달라고 해서 줬는데, 이토록 일이 커질지는 몰랐습니다. 공식적인 시험 문제에 장난스러운 용어 등을 사용했던 점은 경솔했어요."


내 삶이 조금은 차분해진 계기

시험 문제가 인터넷에 유포된 뒤 그는 일주일 동안 모니터만 보고 살았다고 했다. 인터넷에 뜨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도 했다. 이 사건에 대해 책임 문제는 시속하게 이뤄졌다. 인터넷에 게시된 다음날 학교에 불려갔고, 이틀 뒤 강사직에서 물러났다.

"방방 뜨고 있는 제 삶의 조금 차분해지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는 잃은 것보다 얻은 것으 더 많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뒤에는 미술을 전공한 선후배들과 목욕탕 타일을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냈다. 하루 일당은 7만원. 그런데 예상했던 시간이 두배로 걸리는 바람에 결국 절반 정도의 임금만 받은 셈이 됐다. 그런 그에게 한양대에서 강의를 개설하자는 제안을 해 온 것.

"처음에 장난 전화인줄 알고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며칠 뒤 다시 전화를 받고 고민했어요. 당시는 '엽기 시험' 파문이 채 가라앉지 않은 때라, 많이 조심스러웠어요. 그래도 제가 남들보다 튀는 게 사실이고, 엽기도 하나의 문화 트렌드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도전'을 한 셈이고, 한양대는 일종의 '실험'을 했다고 봅니다."

그는 지금 '욕'먹을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를 불러준 학교와 학생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작정이지만, 설령 깨지더라도 괜찮다고 했다.


대학교육도 자극이 필요할때

"저의 수업 방식이 문제도 많지만, 장점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지난해 경북대에서 수업을 받은 학생들 중에는 이러한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학 교육도 모든 다른 사회 문화와 마찬가지로 자극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보편적인 수업 방식과 튀는 방식이 서로 자극을 준다면, 보다 균형된 형태로 발전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아버지는 경북대 음악과에 재직중인 정희치 교수이고, 어머니도 성악을 전공한 음악가 집안이다. 여동생도 현재 독일에서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어. 어려서부터 집안에셔 예술을 접하면서 자라났다.

그러나 꼼꼼하지 못한 성격 탓에 어머니는 그에게 "피아노 치는 대산, 나가서 놀라"고 했고, 그는 5살때부터 만화를 그리며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겼다. 그가 미술을 전고하게 된 배경이다.

어찌보면 정효찬 강사는 지독하게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공부를 못해서 실기능력이 중요한 미술대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졸업 후 단 1년만에 연유야 어떻든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게 됐다.

그는 '엽기 시험' 파동 이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기쁜데, 그 때문에 피해를 입는 사람들도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기말 시험 이후 저에게 '반짝' 인기가 생기면서 다른 교수님들의 귀한 수업이 학생들에게 상대적으로 고지식하게 비쳐졌다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솔직히 전 '미술'을 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갖춘 사람이 아닙니다. 이론과 지식, 경험 등에서 저는 다른 교수님들과 비교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학생들이 다른 교수들님의 수업에도 보다 관심을 갖고, 올바른 평가를 했으면 합니다.


경북대 기말시험 일부분과 정 강사의 문제풀이

◆라면 한 개(삼양라면 기준) 끓일때 필요한 물이 양은?

1. 450cc 2. 500cc 3.550cc 4.600cc

- 정답 1.2.3.4번 라면 봉지에는 3번으로 적여 있으나, 식성에 따라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모두 정답. 사고의 틀을 깨자는 의도

◆ 다음 직업 중 문신이 도움이 되는 직업은?

1. 대통령 2. 선생님 3. 때밀이 4. 양아치

-정답 4번. 문신의 종류와 바디 페인팅의 개념을 익힌 수업에서, 문신에 연관된 사회 현상을 살펴봤다.

◆일반적으로 술 먹고 깽판 부리는 사람에게 "저 사람은 술 마시면 ()된다"라고 말한다.

1.개 2. 악어 3. 용 4. 엿

- 정답 1번. '술'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음주 문화와 칵테일의 아름다운 색깔들을 감상했다.

◆세 명이 치는 점 백원짜리 고스톱에서 20점으로 쓰리고에 피박에 그리고 광박에 흔들어 났다면 총 얼마의 수입이 생기는가?

- 정답 64,000원. 화투치는 법 몰라서 정답 못 쓴 사람들도 맞게 했음. 화투의 유래와 우리 생활속에 깊이 들어 와 있는 화투에 대한 문화적 입장에서의 접근법을 기억하기를 바랐다.

입력시간 2003/03/17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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