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관리자 최승룡씨 "고귀한 영혼을 받드는 일이죠"

기증 시신 수습을 천직으로…장의사 취급땐 속 상해

연세대 의과대학 지하실. '푸른사랑 한우리'라는 문패가 달린 철문을 열었다. 차가운 기운과 약품 냄새가 확 풍겨오는 가운데 하얀 보자기에 싸인 유골 상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의학실습해부용으로 기증된 시신들이 안치된 '납골당'이다.

"무섭지 않는냐구요? 전혀요. 의학 발전을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내놓은 이들의 숭고한 정신을 생각하면 고개가 숙여질 따름입니다."

이 대학교 의료 기사인 최승룡(33)씨의 주 업무는 의학실습용으로 기증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해 와 실습을 위해 방부 처리를 하고, 실험이 끝나면 화장한 뒤 납골묘에 않치한다. 또 시간이 날때마다 납골당에 들러 항온·항습기를 확인해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고, 찾아오는 유족들을 맞는다.

그의 일과는 들쭉날쭉하다. 오전 8시 30분~오후 5시 30분이라는 근무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운명하는 사람들이 이시간을 맞출 수 없으니 한밤중에 전활르 받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달려 나가는 일이 다반사다. 24시간 대기상태나 마찬가지. 잘때도 핸드폰을 항상 켜 둔다.


"벌써 10년이나 됐네요"

최씨가 시신 수습을 천직으로 안고 살아온 것은 10년 전부터다. 원래 1988년 서울 동도공고를 졸업한 뒤 신촌 세브란스병원 원무과로 들어갔으나 군대를 갔다 온 92년부터 해부학 교실로 옯겼다.

"벌써 한 10년 됐네요. 제가 스스로 생각해도 참 신기해요. 집에서는 바퀴벌레도 잡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시신을 대하는 일에는 거부감이 없습니다."

어려울 때도 많았다. 얼마 전에는 시신서 떼낸 피부조직이 음성적으로 거래됐다는 언론 보도에 유족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고 그를 장의사 취급을 하며 "납골 비용은 얼마인가"를 물을때는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

이따금 화장을 하러 갔을때 실습이 끝난 뒤 아무 시신이나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관을 뜯어보자"고 요구하는 유족도 있다. 시신 처리비용을 부담하기 싫어 고인의 뜻과는 상관없이 기증을 문의해 오는 사람들에겐 정나미가 떨어진다.

남들이 꺼려 하는 시신을 만지는 일을 하지만, 급여가 많은 것도 아니다. 병원내 사무직원이나 간호사들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 이제 6살과 9살이 된 두 아들을 둔 그는 막내가 "우리 아빠, 시신 가지러 새벽에 나가요. 놀아주지도 않고요"라는 말을 할때면 가족들한테 소홀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하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다.

그만큼 그는 거칠고 힘든 현재의 일을 사랑한다. "시신 기증이라는 고귀한 뜻을 받드는 작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신과 유족들을 늘 대하다 보니, 얼굴에서는 웃음이 거의 사라졌지만 가슴 속에서는 사람에 대한 예의와 존경이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마지막 으로 던진 그의 당부가 가슴을 찔렀다. "처음 시신을 접하면 금방 알아요. 이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가족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요. 나이 드신 부모님께 잘 해드리세요."

입력시간 2003/03/1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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