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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검사와의 TV토론] "개혁은 이런거야!"

'초 강수 청와대' '독오른 검찰'에 정부부처·정계인사 초긴장

노무현 대통령이 단단히 화가 났다. 3월9일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노 대통령은 평상심을 잃을 정도로 잔뜩 성난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줬다. 작심하고 덤벼든(?) 평검사들에게 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강력한 개혁 프로그램을 예정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재차 밝히고 토론을 마무리했다.

이날 토론회는 격앙된 분위기 그 자체였다. 당초 취지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을 위한 평 검사와 대통령의 격의 없는 대화 무대로 마련된 토론회였지만 처음부터 불신과 대립, 반목으로 흘렀다.

첫 발언자인 서울지검 허삼구 검사는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고, 저희는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아마추어이므로 토론을 통해 제압하시겠다면 보나 마다 대통령의 승리”라며 기선을 제압하려고 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저는 잔재주가 아니라, 삶의 많은 부문을 참아왔고 그 밑천으로 토론을 이겨왔다”며 “잔재주나 갖고 제압한다는 말에는 비하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 모욕감을 갖지만 토론을 위해 그냥 넘어가겠다”고 받아넘겼다.

첫 문답부터 예고된 심상찮은 조짐은 현실로 다가왔다. 참석 검사들은 줄곧 ‘위험 수위’를 넘나들며 인신 공격에 가까운 질문 공세를 퍼부었고 노 대통령의 이마의 주름은 더욱 깊어졌다.급기야 노 대통령은 “인사권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라고 선을 그으며 “현 검찰 상층부를 못 믿는다”는 속내를 밝혔고 토론회는 대통령과 검찰간의 좁힐 수 없는 간극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나야 했다.

노 대통령이 검찰 지휘부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표명하자 김각영 검찰총장은 “부적절한 사람으로 지목된 이상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 가기 어렵다”고 사의를 표명했다. 진퇴는 임명권자의 의중을 확인한 본인의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그는 사퇴 성명에서 “인사권을 통한 검찰권 통제의도”를 거론하며 노 정권을 정면으로 치받았다.

평 검사들이 토론회에서 “인사권 행사에 앞서 납득할 만한 잣대 설정이 우선”이라고 맞선 데다 김 총장의 항명성 사의표명이 더해지자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통령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개혁 드라이브에 대한 ‘태클’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노기(怒氣)는 치솟을 대로 치솟을 수 밖에 없다.

이쯤 되면 청와대로서도 검찰이 더 이상 직속 예하 기관이 아니라 청산 대상의 핵심이고 반개혁 세력의 중심으로 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상층부는 물갈이가 예고된 상황이지만 비단 상층부 뿐 아니라 ‘그들’(노 대통령이 보는 구악에 물든 지휘부 정치 검사층)과 지근거리에 있는 중ㆍ하층 부위에도 메스가 가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그 결과는 비단 검찰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국정원을 비롯, 행정부 전체와 정ㆍ재계를 포함한 일반 사회 각계로 노 정권 개혁의 칼바람은 거침없이 확산될 것이 자명하다. 자칫 주춤하다가는 이번 파동과 같은 역공에 휘말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 있어서다. 노 대통령의 중단 없는 개혁이란 ‘다(多) 과녁’ 화살은 이제 사회 전 분야를 향해 활 시위를 떠나 가고 있다.

검찰과의 대화에서 지난해 노 대통령의 청탁성 전화통화와 형 건평씨의 인사청탁 이야기가 거침없이 쏟아지자 노 대통령은 “막 가자는 것이지요?”라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했다. 이는 곧 자신에 대한 반감(反感)으로 이해했다는 말이다.

검찰도 불안한 상황이 됐지만 정작 위기의식을 느끼게 된 쪽은 오히려 노 대통령을 포함한 참여정부의 주체 세력들이다. 이전 정권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권력기관의 ‘조직적 반란’에 대한 노 정권의 해결책은 ‘이에는 이’라는 확실한 정공법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확실한 변화, 보다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로 맞서지 않을 경우 참여정부 전체의 노선이 시작부터 통째로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강금실 법무장관을 앞세운 검찰 개혁이 검찰내 인사태풍으로 불어닥칠 전망이다. 권력내부에는 ‘조기 진압만이 살 길’이란 판단은 이미 서 있는 듯 하다. 가장 큰 걸림돌이던 김각영 총장도 사퇴한 만큼 더 이상 개혁 드라이브에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더욱이 노 정권이 개혁 의지를 국민에게 보여준다는 차원에서라도 검찰은 ‘시범 케이스’가 될 게 분명하다.

나아가 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바탕으로, 또는 현 정부와 개혁 코드가 통하는 검사들이 핵심 지휘부에 포진하면 사회 전체에도 개혁 드라이브가 숨가쁘게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검찰도 이 정도로 당했으니 너희들도 단단히 각오하라”는 메시지가 사회 곳곳에 전파될 것이란 얘기다.


정치권, 유탄맞을까 전전긍긍

‘청ㆍ검(靑ㆍ檢)’ 충돌에 따른 여파를 가장 걱정하는 쪽은 당연히 정치권. 여야는 물론 친노(親盧)ㆍ반노(反盧)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전체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민주당 구 주류 등 반노로 분류되는 세력과 야당은 벌써부터 노 정권이 주도할 사정정국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뜻밖에도 이에 앞서 친노파들이 더욱 불안에 떠는 상황이 됐다.

검찰은 어차피 정치적 독립과 청와대 예속 방지책을 주문했던 터다.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서라도 검찰은 야당보다는 여당, 반노파 보다는 친노파의 중심부에 칼을 겨눠야 더욱 효과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 검사가 SK그룹 수사와 관련한 여권 핵심의 외압설을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지목된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은 “전체 국익과 경제를 고려해달라는 일상적인 통화였을 뿐”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야당 측에서 강력 반발하고 나서는 등 사태가 쉽게 마무리될 것 같지는 않다.

염동연 전 정무특보와 안희정 전 정무팀장 등 핵심 측근들도 나라종금 퇴출저지 로비사건에 연루돼 한바탕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대검이 당장 수사계획이 없다고 밝힌 바는 있지만 지금 상황은 예전과 비할 수 없이 다르다. 일선 검사들이 ‘윗분’의 뜻과 상관없이 수사를 강행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여당내 구 주류와 야당인 한나라당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검찰이 여당의 신 주류이건 구 주류이건, 또는 야당이건 무소속이건 간에 법망에 걸리면 닥치는 대로 수사를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마당에 검찰이 살 길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신분을 스스로 되찾는 길 밖에 없다. 그간 축적해 놓은 방대한 양의 정치인 자료를 토대로 무차별적인 난사(亂射)를 가하는 것이 위상회복의 지름길이란 판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번 검찰파동이 진정국면으로 접어든다 해도 정치권은 애초부터 개혁대상의 본산격이었다. 검찰의 반발성 독자수사가 아니더라도 노 정권의 사정 칼날은 언제든지 그들을 향해 준비돼 있다. 청ㆍ검 충돌여부에 따라 순서가 뒤바뀔 수는 있어도 예정된 정치권의 개혁태풍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국정원→ 행정부→ 재벌기업 순?

검찰과 정치권 개혁과 함께 노 정권이 겨냥하는 과녁은 이미 개혁의지를 밝힌 국정원과 행정부 전체다. 국정원은 국내 정치와 관련한 정보 수집 중단을 지시하면서 기능 축소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이는 대대적인 숙청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국정원이란 해외 정보수집이란 본래 기능을 망각한 구시대 공작정치의 산물로 보는 시각이 앞서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행정부 차례. 외교부를 비롯해 각 부처가 서열 위주로 꽉 짜여져 있어 전체 공직사회가 개혁의 대상이란 것이다. 노 대통령도 검사들과의 대화 자리에서 “장관은 5급 과장들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으라고 지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기존의 1,2급 고위간부들은 검찰 상층부와 같이 개혁의 대상이지 개혁세력으로 끌어들이기에는 구 시대 기운이 너무 들어차 있다는 말이다.

이밖에 대통령 취임이전에 시작된 SK그룹 수사와 같이 각 재벌기업들도 좌불안석 상태다. 노 대통령은 SK그룹 수사를 둘러싸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부의 상속은 인정할 수 있지만 편법적인 상속은 있을 수 없다. 정당한 세금을 내고 상속을 해야 한다”고 재벌가에 대한 개혁 잣대를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사회 전반에 대한 개혁시나리오는 검찰사태가 수습되면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노무현식 정치에 국민 우려도 높아져

참여정부라는 이름에 맞춰 당사자들과 직접 담판에 나선 이번 노 대통령의 모습에는 참신성과 함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국민에게 직접 진상을 알려보자는 취지는 신선한 발상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일선 검사들의 내부 불만에 대해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 또 국무총리에 이은 대통령이란 단계적 해결 범위를 뛰어 넘어 곧바로 당사자들과 직면할 만큼 급박했었느냐는 지적도 분명 타당성이 있다. 더욱 큰 문제점은 ‘마지막 해결사’가 나왔는데도 아무런 성과없이 헤어지게 되면 그 다음은 해법이 없는 정면 충돌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청ㆍ검 충돌도 이 같은 분석과 맥이 닿아 있다.

국민에 대한 직접 호소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모든 사회적 이슈를 대통령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도 있다. 검사들과의 대화를 보고 많은 국민은 젊은 검사들의 방자함(?)에 비난하는 분위기이다.

그렇지만 상기된 표정으로 언성을 높이며 흥분하는 노 대통령의 태도에도 많은 국민이 실망감을 금치 않았을 것이다. 화를 자초한 듯한 섣부른 국정운영방식을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을 노 대통령이 깊이 헤아릴 때다. 한 검사가 말한 것처럼 목적이 아무리 옳더라도 수단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3/03/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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