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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검사와의 TV토론] 김 총장 '올인' 선언…

퇴진은 '책임' 아닌 '도전'

‘검사들의 반란이 시작됐나’

김각영 검찰총장이 3월 9일 ‘대통령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끝난 뒤 전격적으로 총장직을 사퇴하면서 인사파동에서 시작된 ‘검란(檢亂)’이 파국적 결말로 치닫고 있다.

검찰의 인사파동이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새 정부의 핵심부에 대한 ‘위력 시위’였던 점을 고려할 때 김 총장의 퇴진은 당연한 수순으로 예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 총장은 ‘책임’을 지기 위해 총장직을 버린 것이 아니다. 새 정부를 향한 ‘옥쇄작전’의 하나로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는 방식을 택해 사실상 현 정권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했다.

김 총장은 자신의 퇴진사유로 “(노무현 대통령과 여권 핵심부가)토론회를 통해 인사권을 통해 검찰권을 통제하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해 현 정부와 검찰의 관계가 예측불허의 위기상황으로 치달은 것이다.

청와대로서는 김 총장의 퇴진으로 자연스럽게 노 대통령이 구상한 인사안을 관철시킬 여유를 갖게 됐지만 ‘검찰총장의 도전’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권위에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게 됐다. 법조계에선 “당분간 청와대와 검찰간의 간극을 좁히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양쪽 모두 불행한 결과”라고 전망한다.

검찰내에서도 일련의 인사 파동과 김 총장의 사퇴에 대한 파장은 크다. 당장 검찰 조직이 큰 혼돈속으로 빠져들었다. TV앞에서 대통령에게 정면으로 ‘대들었던’ 소장 검사들조차 김 총장의 ‘항명’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지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검찰 개혁인가, 검찰 장악인가

사실 검찰의 인사파동은 단순한 ‘조직 이기주의’로 치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법무부의 문민화’를 내세우며 의욕적으로 검찰 개혁을 예고했고, 비검찰 출신의 40대 여성인 강금실 법무장관을 임명했다.

검찰내에선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청와대의 드라이브를 지켜봤다. 그러나 강 장관이 기존의 서열을 몇 단계 뛰어넘어 법무부 정상명 기획관리실장을 법무차관에 임명하면서 검찰 조직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특히 정 실장은 공교롭게도 사시 17회로 노무현 대통령과 동기이고, 사법연수원 시절 스터디 멤버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연히 검찰내에선 정 실장에 대해 시선이 집중됐고, 청와대의 의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나온 강 장관의 작품은 대대적인 간부 물갈이 인사였다. 강 장관은 고검장 승진대상을 사시 16회로 낮추는 ‘회심의 카드’를 내밀었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조직 생리상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였다.

현재 사시14회까지 내려간 고검장 인사의 커트라인이 사시 16회로 내려갈 경우 연쇄 반응을 일으켜 검사장 승진 대상은 사시 22회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그 경우 현재의 검사장이상 고위 간부 41명중 살아 남는 자는 절반도 안 되는 처참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

이와 관련, 노 대통령도 이런 물갈이 인사가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전국 검사와의 대화에서 “이번 인사의 목표는 과거 시대 경험을 덜 가진 사람을 빨리 위로 올리자는 것이다. 가급적 문제 있던 시절의 사람이나 개인적으로 많이 젖어 있던 사람들이 빨리 교체 되면 좋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검찰 개혁 방정식’은 곧 인적 청산을 통한 새로운 토대를 조성하고 그 위에 새로운 검찰상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불행히도 검사들의 의심은 바로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검사들은 “과거 정권 교체기마다 개혁을 위한 인적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매번 파격적 인사가 이뤄졌으나 오히려 검찰의 중립을 훼손하는 결과만을 초래했다”고 반발한다. 특히 “이번처럼 투명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의로 발탁하는 인사는 또다시 정치권에 줄대기를 초래해 검찰의 정치적 예속만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검찰 내부 권력의 향배이다. 검찰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지면 자연스레 검찰내의 힘의 이동이 동반된다. 현재 사시 12~15회까지의 인사들이 물갈이로 인해 퇴진할 경우 검찰내의 핵심 요직들은 대부분 16~17회 인사들이 차지하게 된다.

검찰 안팎에선 사시22회들까지 검사장에 발탁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대통령의 최측근인 문재인 민정수석이 바로 사시 22회이다. 결국 검사들은 ‘사시 17회’와 ‘사시22회’라는 두 기수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론은 또 다른 연상작용을 불러 일으킨다. 정권 초반기에는 사시17회 중심으로 검찰의 힘이 쏠리고, 중ㆍ후반기에는 사시 22회에 다시 검찰의 권력이 집중된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물론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들으면 펄쩍 뛸 이야기이지만 이런 구도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검사들이 ‘서열 파괴’를 내걸은 노 대통령의 인사방식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검찰이 잃은 것과 얻은 것

김 총장의 퇴진이 몰고 올 ‘후폭풍’이 어느 정도 강도일지 예상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청와대나 검찰이나 상당히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단 이번 사태는 김 총장의 사퇴가 평검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따라 수습여부가 달려 있다. 김 총장 사퇴직후 검사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한 검사는 “마치 김 총장을 낙마시키기 위해 토론회가 준비된 것 같다”고 흥분했으나 “김 총장이 검찰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했기 때문에 별다른 미련이 없다”고 말하는 검사들도 있다.

검찰에 정통한 인사들은 “검사들이 국민 앞에서 대통령과 토론까지 한 마당에 더 이상 어떤 카드를 들 수 있겠느냐”며 “김 총장이 다시 불을 지폈지만 결과적으로 김 총장이 총대를 메고 낙마하는 선에서 사태가 수습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한다.

검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려해도 이젠 ‘집단 사표’ 등 극단적 방법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카드가 없다는 것. 더욱이 김 총장에 대한 평가 조차 엇갈리고 검찰 내부에도 다양한 이해집단이 존재하는 만큼 더 이상의 실력행사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선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와 관계없이 토론회와 김 총장 낙마를 겪으면서 검사들이 ‘정권과의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각성이 생긴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부당한 정치권의 외압에 대항할 수 있는 명분이 생겼고, 정치권이 섣부른 간섭을 하기 어려운 구조로 검찰의 환경이 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사 파동을 겪으면서 일선 검사들은 “앞으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국무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리다가 집무실에서 국무위원을 연행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반농담으로 서슴없이 말한다.

또 검사들은 노 대통령에게서 앞으로 ‘인사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검찰의 정치권 예속이 인사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런 약속이 실현될 경우 검찰 환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나 검찰의 인사 파동을 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대통령과 검사의 대화 직후 인터넷에는 검찰을 성토하는 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검찰로서는 자칫 국민에게 검찰 전체가 ‘개혁 대상’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은 앞으로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태희 기자 taeheelee@hk.co.kr

입력시간 2003/03/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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