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과연 그럴까?

정치풍장 코미디 영화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과연 국민이 권력의 주체인가 라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에 진한 의문을 영상화했다고 볼 수 있다. 창녀도 국회로 진출 할 수 있을까. 출신, 학벌, 성별, 지역, 병역 심지어 마누라와 자식의 비리 등등 오만가지가 다 문제시되는 한국 정치판에 창녀가 뛰어 든다는 설정은 꿈나라 이야기인 듯할 뿐만 아니라 도전적이기까지 한 느낌이 든다.

이 영화의 설정은 실제 외국에서 있었던 사례를 근거로 출발하는 것으로 보여지는데, 대표적인 예로는 이탈리아의 유명포르노 배우로 금배지를 단 치치올리나를 들 수 있겠다.

신랄한 비판과 절묘한 패러디가 깔끔한 손맛으로 잘 버무려진 정치풍자 블랙 코미디를 기대한 팬들은 이 영화에서 다소 아쉬운 느낌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방지>(1998)이후 15년만에 다시 메가폰을 잡은 송경식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원작의 수정과 보완을 위해 무려 12명의 시나리오 작가가 참여하고 있어 배가 산으로 간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표현의 억압을 오랜 세월 받아온 탓일까. 수준 있는 정치풍자보다는 윤락가의 성 풍속도를 소재로 가벼운 웃음만을 자아낸 섹스 코미디가 아직까지는 전체적으로 억지스럽고 어설프다.


"완벽한 누드정치 실현을"

내용은 이렇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여당과 야당을 치고 받으며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이런 와중에 야당의 한 국회의원이 여당 총재의 음모로 여자 킬러에게 복상사당하면서 여당과 야당은 각 136석씩 여야동수인 상황이 되고, 보궐선거가 열리는 '수락시'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여야는 초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필승의 카드를 내보이며 치열한 선거전을 준비하는데….

여기서 변수가 등장한다. 여야의 치열한 접전으로만 예견되었던 수락시 보궐선거에 친구의 억울한 사고로 뚜껑이 렬린 용감무쌍 윤락녀(예지원 분)가 국회의 뚜껑을 열기 위해 출마하면서 선거는 한치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3파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그녀'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여야는 각각 선거에 승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갖은 음모와 계략을 꾸미게 된다.

억울하게 사고를 당한 친구를 위해 보궐선거에 출마한, 당동하고 불같은 성격의 윤락녀 고은비는 뉴스앵커가 꿈인 친구 강세영의 도움을 받아 주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분투한다. 그녀가 내세운 슬로건은 "실오하기 없는 완벽한 누드정치". 이말처럼 그녀는 가식이 없는 솔직하고 직설적인 말투로 수락시 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의원 선출에 지역이나 연고, 학벌, 직업을 잘 따지지 않고 인간적인 면을 가장 중시하는 현대의 젊은 층과 만나 지지도가 계속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린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음모와 계략에 말려든 그녀는 선거유세의 피로보다 훨씬 더 감당키 힘든 피로에 시달리게 된다.

관심을 끄는 것은 70년대 나훈아와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가수 남진의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신부로 나와 호연한 것. 도 모델 출신이자 <클럽 버터프라이>로 데뷔한 아니타와 97년 수퍼모델 출신 윤현영 등이 각각 윤락녀로, 탤런트 김용건이 자유당 국회의원 후보로, 배우로서는 처음인 장대성이 민족당 후보로 출연한다는 점이다.


실제 윤락가 '선미촌'서 촬영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이 직업인지라, 장소 섭외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장소 섭외를 위해 실제 홍등가인 전주 '선미촌'까지 찾아가, 3개월간 그곳 상가 번영회(홍등가에도 상가번영회라는 것이 있다)를 끈질기게 설득해 허가를 얻었다. 이후 번영회는 과연 서비스업의 전문가들답게 화끈한 서비스를 지원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번영회는 과감하게 7개 업소를 통째로 대여해 주어 각 영업장은 촬영장 외에도 현장 사무실, 대기실로 넉넉하게 활용되었다고 한다. <창>, <나쁜남자> 등 윤라녀가 등장하는 영화는 그간 미봉책으로 홍등가 세트르르 제작해 왔으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실제 윤락가에서 촬영함으로써 삶의 또 다른 현장인 홍등가의 활기와 생활상을 직접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말 그대로 영화를 보면서 '색'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99년 영진위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인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영화뿐 아니라 곧 만화로 발간될 예정이다. 배역의 설정상 노출신과 여성 캐릭터들이 유난히 많은 영화이기도 하다. 이에 제작사는 만화계를 철저히 조사해 이 영화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여성'적인 성인 만화작가를 찾아냈다. 바로 만화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한 박무직이다. 그는 황미나에 이은 인기절정의 순정만화 작가다.

2001년 성인 순정물을 발간 5일만에 5,000부를 판매해 화제를 불러 일으킨 그는 여성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여성만화를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시나리오 그 자체가 만화로 발간되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길 것인데, 이것도 실제 홍등가 촬영과 함께 처음 있는 일이다.

영화 자체를 만화로 발간하면 영화 시나리오가 그대로 노출돼 관객동원에 지장을 초래할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지만 그만큼 자신감 있다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만화 발간은 영상산업에서 비디오와 DVD, 그리고 해외 수출에 이은 새로운 수익구조 창출계기가 되자 않을까 주목을 받고 있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kr

입력시간 2003/03/25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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