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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쇼크] 재벌수사, 불황의 벽 못넘나

검찰·재경부 등 속도조절론이 대세…재계는 일단 한숨

"경제사건등은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합니다. 혐의가 있다고 무조건 기소하는 것은 정의에 맞지 않고 국가의 균형 발전적 측명을 고려해야 합니다."

3월13일 서울지검 기자실, 서영재 신임 서울지검장은 취임식 직후 기자 간담회을 열고 '국익우선'을 취임 일성으로 밝혔다. 이 말은 서울지점의 SK수사발표이후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검찰이 국내외의 경제여건을 고려해 재벌 총수들의 편법 증여·상속 의혹 등 재벌비리 수사를 서둘러 유보할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됐다.

재벌을 향한 노무현 정부의 개혁 칼날은 'SK쇼크'로 무너지고 말 것인가. 일단은 '예스'쪽으로 기운다. 재계로 향했던 화살이 '시장의 쇼크'라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혀 속도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숨고르기'라고 하고, 다른쪽에서는 '물건너 가는 것 아니냐'는 견해를 밝힌다.

SK를 수사해온 서울지검 형사9부측은 정부의 '외압' 을 인정하면서도 "SK수사 결과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검찰은 수사로만 말하다"는 검찰의 불문율을 거듭 피력해 왔다. 그러나 3월11일 SK그룹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SK글로벌이 은행 공동관리에 들어가고 최태원 SK화장이 개인 주식을 은행담보로 내놓자 '시장'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라크 전쟁 발발 위기와 북한 핵문제 등에 의해 취약성을 드러냈던 국내 경제는 1조5,500억원에 달하는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여파로 주가, 환율, 금리 등 실물 지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위기국면으로 치달았다. 검찰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SK수사로 나타난 '시장의 쇼크'를 수사 주체로서도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민단체로부터 편법 증여·상속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전전긍긍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안심하고 경제활동에 전념하기 위해서는 재벌 수사의 속도조절이 '필요 악'인 셈이다.

물론 검찰의 입장 발표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건 총리 등이 앞장 서 SK수사가 검찰의 단독 결정임을 강조하고 경제의 충격을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재계를 다독거렸다. 검찰 단독으로 '수사 유보'를 판단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인데, 검찰 새 지휘부는 경제악화 책임론에 따른 부담을 서둘러 떨쳐버리기 위해 SK그룹 수사의 문제점을 은연중 부각시키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검찰이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소는 할 수 없다"는 서영제 지검장의 발언은 향후 재벌에 대한 검찰 수사의 앞날을 짐작케 한다.

경제를 총괄하는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도 재벌 개혁에 대한 '속도조절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김 부총리는 3월14일 외신기자와 주한 외국대사관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한 기자회견에서 참여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을 제시하며 "시장 친화적인 수단으로 기업이 견딜 수 있는 속도로 시장 개혁을 추진해 나가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시장과 기업의 가치를 높여 나가는데 개혁 정책의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SK쇼크에 대한 정부와 검찰의 잇단 '조기 진화' 발언에 재계는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분위기다. 당초 SK 그룹에 대한 전격적인 검찰수사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대목이 많아 '새 정부의 재계 길들이기'로 보기에는 정도가 심하다고 반발해온 재계는 'SK쇼크'에 잔뜩 움츠리면서도 정부가 재벌 계혁에서 일단 손을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내심 안도하고 있다.

재계는 검찰 수사가 일단 SK선에서 멈춘 뒤 방향을 바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SK수사와는 달리 주무 부처인 공정위원회가 특정 기업에 대한 부당내부거래 행위를 먼저 조사해온 혐의를 잡은 뒤 검찰에 고발하면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는 '상식의 선'으로 되돌아 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오른 일부 대기업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며 서둘러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출신 학자그룹이 노무현 대통령 측근으로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 기업의 투명성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응 수단이 없다"며 "검찰 수사건 공정위의 조사건 서둘러 집안 정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그 동안 실물 경제에 대해서는 아는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인수위에 참여한 교수들을 만나 보았더니 대 기업들의 속성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 며 "인수위 출신들은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에게는 기업의 구체적인 속성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나 전문성이 없지만 인수위 출신의 진보적 교수들이 지침을 주고 독려하면 검찰이 행동대장으로 나서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정부와 검찰의 교감을 우려했다.

SK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이후 시중에는 악성 루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은 두번째 압수수색에서 분식회계 관련 자료는 물론 비자금 조성 및 해외 자금 유출과 관련한 중요한 자료를 뺏겼다는 것이다. 구조조정본부에서 압수한 컴퓨터 수록 내용에는 최근 몇 년간 최태원 회장과 임원진간의 e메일 내용은 물론이고 최 회장의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내역까지 포함돼 있다는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

또 분식회계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H그룹은 이미 혐의를 일부 시인한 상태로 재벌 총수는 건드리지 않고 실무진만 책임을 묻는 쪽으로 로비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그룹은 일부주요 문서들을 폐기 처분하는 등 검찰수사에 대한 대비를 마쳤고 L그룹은 SK와 비슷한 규모의 큰 건이 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재계와 검찰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검찰의 수사가 언제쯤 재개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재계의 관계자는 "일단 SK 분식회계 파문으로 정부와 검찰의 수사가 숨 고르기 상태로 들어가 당분간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4월 공정위의 대기업 조사가 끝날때까지는 기업들이 몸을 낮출 수밖에 없는 불안한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입력시간 2003/03/27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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