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하늘색 고향

한 화가의 그림 통해 비춘 그들의 한 많은 이야기

■  기획, 시나리오, 제작, 감독 : 김소영
■ 촬영 감독 : 니꼴라이 게라시모브 (Nicolai Gerasimov)
■ 장르 : 다큐멘터리
■ 제작년도 : 2000년
■ 봉일 : 2003년 03월 21일
■ 상영관: 일주아트하우스 아트큐브
■ 공식홈페이지 : www.sky-blue.co.kr

“우리는 노예였습니다. 노예에겐 이름도, 민족도 없습니다. 그래서 난 <레퀴엠>에 얼굴을 그려 넣지 않았습니다…”. 세로 3m, 가로 44m의 대형화폭 속에 형상화된 그들의 어제와 오늘은 눈과 코, 입이 없는 ‘민자’의 얼굴에서부터 시작해 서서히 제 모습을 찾아가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림 22점을 그려 붙인 44m짜리 대작 신순남(러시아명- 니콜라이 신)의 <레퀴엠>.

그 대작이 담고 있는 고려인들의 처절한 절규와 고난사를 영상에 그대로 담아낸 한국 다큐 영화의 역작 ‘하늘색 고향’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영화라 강조하고 싶다.

신순남이라는 한 고려인 화가의 삶과 그의 그림을 통해 이 다큐 영화가 잡아내려 했던 것은 일제 강점시대가 낳은 우리 민족의 또 다른 비극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변방의 작은 일화로 치부되어 버린 고려인 이주사다. 1937년 스탈린 시대에 17만~20만명에 달하는 러시아 국경지대에 살던 한인(고려인)들이 한달 여에 걸쳐 중앙아시아의 황무지로 강제이주 된 사건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가슴에 품은 한을 <레퀴엠>에 담아

혹독한 왜정 치하를 피해 소련 극동지역으로 흘러 들어가 살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소수민족 정책에 의해 강제이주 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화물칸에 짐짝처럼 박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한달여 끌려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갔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해서도 억센 풍토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순남 화백의 어린 동생도 풍토병을 죽자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가 “신은 없다”며 통곡했다. 어머니를 대신했던 할머니도 어려운 생계 때문에 떨어져 살아야 했고, 할머니의 무덤조차 찾을 수 없는 그는 평생 할머니를 가슴에 묻고 살았다.

평생의 한을 가슴에 안고 있으면서도 그는 가족들도 모르는 허름한 창고에서 30년 동안 혼신의 힘을 다해 <레퀴엠>에 매달려 왔다. <레퀴엠>은 신 화백이 소련에 강제 이주 당한 고려인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KGB의 눈을 피해 그린 역작이다. 러시아와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이미 작품성을 인정받은 수작이다. 신 화백은 <레퀴엠>을 97년 한국에서 개최된 <신순남 한국특별전>을 끝으로 조국에 기증했다.

‘고려인,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인가’라는 물음에 우리는 뻔한 답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서 또 다른 희생양이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품어야 할 우리 동포라는…. 그렇지만 이 영화는 비극과 절망, 슬픔의 다큐 하면 떠오르는 그 뻔한 구도로 그려진 게 아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에 ‘왜 그것이 해답이 되어야만 하는가’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늘색 고향’의 김소영 감독은 600만원짜리 통장 하나로 이 다큐 제작을 시작해 3년8개월에 걸쳐 영화를 완성했다. 97년 9월 그녀는 우즈베크로 날아가 이듬해 4월까지 신 화백과 ‘동거’하다시피 하며 찍었다. 제작비가 달려 “내 이름을 보지말고 이 영화가 지닐 가치를 봐달라”며 기업을 설득했다. 그녀의 헝그리 정신과 장인정신이 다큐 전체에 녹아 있다.


진실을 찾는 한사람의 힘

김 감독에게 이 영화는 외로움과의 투쟁 그 자체였다. 현지인과의 언어 소통 문제로 영화의 감정 전달이 단절되자 아예 함께 먹고 자면서 생활했다.

“ ‘신 화백님은 진실이라는 십자가를 버리지 않았다’는 한 제자의 말처럼 저 또한 역사와 삶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예술가를 소개한 작품은 아닙니다. 신 화백을 통해 민족과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한 예술가의 현실 극복과 사명 의식, 그 뒤엔 고려인들의 아픈 역사가 있었습니다. 난 그걸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1m56cm의 자그마한 키에 여린 얼굴의 여성감독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제작한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한국 영상산업에 큰 획을 그으며 그 수준을 쭉 끌어 올려 놓았다. 혼자 힘으로 기획 연출 진행 음악을 맡아 만든 ‘하늘색 고향’으로 다큐 전문 TV Q채널의 ‘서울국제다큐영상제’에서 대상,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다큐 부문 대상인 와이드 앵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신 화백의 그림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뼈아픈 역사를 끌어내 오버랩 시키는 방식을 취한 이 영화는 그림 세계의 조명과 역사의 증언, 둘 중 어느 하나도 소홀함 없이 완벽한 조화를 끌어내 기존의 다큐 영화와는 확연히 차별된다.

역사적인 다큐물에 늘 등장하는 일반적인 성우나 감독의 나레이션도 없고, 어떤 기교도 없이 담담히 그들의 증언을 전한다. 나레이션 대신 배경으로 깔리는 ‘헌정’ 영화음악이 오히려 화면의 감동을 배가해 준다.

‘하늘색 고향’의 영화 음악엔 김준성씨와 현덕씨가 참여해 고향 하늘을 그리는 고려인의 애잔함을 음악으로 표현해 냈다. 또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영화의 내용을 듣고 자신의 연주곡 중 두 곡(‘엄마야, 누나야’- 작곡: 이영조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중 2악장 안단테’- 작곡:라흐마니노프)을 영화 ‘하늘색 고향’에 헌정했다.

‘하늘색 고향’은 신 화백의 작품명이고 나레이션 없이 인터뷰 화면과 영상음악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마다 그를 붙들어 준 것은 신 화백이었다고 한다.

김 감독의 화두는 ‘그가 왜 <레퀴엠>을 그렸는가, 그것을 왜 남기고 가는가’ 였다. 그 물음은 내내 그녀의 머리에 맴돌았다. 그것은 또 그녀가 ‘하늘색 고향’을 왜 만드는가에 대한 답이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아우구스비츠의 비극을 수많은 기록영화로 필름에 담아왔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강제이주’란 삶 자체가 송두리째 뽑혀나가는, 바로 우리한테 일어난 비극인데, 또 그들의 후손의 삶 곳곳에 그 역사의 흔적과 파편들이 남아있는데, 이에 대한 기록영화도 변변히 없을 뿐더러 교과서에조차 제대로 설명돼 있지 않아요.”

영화를 통해 민족의 역사를 역설하지만 김 감독이 보는 관점의 민족은 그리 거창하지 않다. “민족이란 말은 거창하지만 민족을 말할 수도, 생각할 수 조차 없는 그 사람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민족’이란 개념은 난 돌아갈 곳이 있구나, 날 반겨줄 이들, 가족들이 흩어지지 않고 같이 살고 있구나, 같은 생활 공동체를 꾸려나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입력시간 2003/03/27 13:4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