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정치 드라마’무대 뒤가 궁금하다

요즘은 TV에서 대통령을 자주 볼 수 있어서 좋다. 억압적인 5공 시절의 ‘땡전 뉴스’와 달리 굵직한 국정 현안이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 설명하고 설득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한달 가까이 보여준 모습은 서민적이고 탈 권위적인 새로운 대통령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함께 일할 장관들을 직접 소개하고, 검찰 개혁과 관련해 평검사들과 토론하고,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 결정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등 언제 우리가 이렇게 친근하고 자상한 대통령을 가져보았던가?

대통령의 달라진 이미지만 빼면 우리는 정권 교체기에 늘 맞닥뜨려온 낯익은 한국적인 ‘정치 드라마’를 다시 보고 있다. 12ㆍ19 대선의 극적인 결말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기는 하지만 노 대통령 특유의 신사고가 거기에 기름을 부었으니 드라마는 더욱 재미가 있다.

지금까지 ‘정치 드라마’는 권력이동에 따른 ‘줄서기 인사’로 막이 오르곤 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언론사만 해도 청와대 출입기자를 비롯해 정치부 데스크를 바꾸고, 어떤 때는 편집국장까지 교체한다. 일부 신문에서는 대통령과 가까운 기자가 정치부 데스크에 앉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5년마다 반복되는 언론사 풍경이다.

물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권력이 바뀌면 언론으로서는 권력이동에 따른 취재원 확보가 생명인데, 어떤 형식으로든 대통령 혹은 권력실세와 가깝다면 취재에는 그만큼 유리하다. 노 대통령이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던 C신문이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유인태 정무수석의 발탁을 발표 하루 전 특종보도한 것은 취재원 확보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새 정권의 ‘깜짝 인사’ 맞추기는 퍼즐 보다 더 재미있는 정치 드라마의 백미다.

인사가 끝나면 사회부 차례다. 미리 미리 법조팀을 보강해 전 정권의 부정부패와 비리 척결에 나서는 새 정권의 ‘사정 칼날’에 대비한다. ‘자고 일어나면 한명씩 쇠고랑을 차게 되는 거물급 인사’시리즈로 드라마는 절정을 향해 달려간다. 그 것은 이미 시작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구속은 식전행사에 불과하고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로 DJ 정권의 실세들이 줄줄이 드라마의 주역으로 무대에 오를 것이다. “한번 물을 먹으면 5년 동안 반카이(挽回ㆍ만회)가 불가능하다”는 법조팀의 ‘취재 전쟁’은 바야흐로 본게임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러한 취재 전쟁이야 말로 역사의 진실을 캐는 과정이다. 언론으로서는 짜릿한 흥분을 느낄만하다.

검찰청 국정권 금감위 국세청 등 소위 ‘빅4’ 권력기관의 내부 물갈이도 정치 드라마의 한편을 장식한다. 40대 여성 변호사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취임과 동시에 진행된 검찰 개혁은 ‘검찰 쿠데타’에 버금가는 평검사들의 항명과 대통령-평검사들의 대화, 김각영 전 총장 등 지도부의 항의성 퇴임 등으로 매일 아침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처럼 숨가쁘게 진행되는 정치 드라마의 현장에서 언론은 장면과 장면을 이어주고, 설명해 주는 내레이터 역할을 맡는다. 특히 눈앞에 펼쳐진 낯선 장면에 의아해 하는 관객(국민)에게 무대뒤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전해주면 환호를 받는다. 이 것은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것만 알려온 권위주의적 역대 권력이 만들어낸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언론 취재 시스템을 개선하고, ‘오보와의 전쟁’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기자실 폐쇄나 취재원의 직접 접촉 제한 등을 통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언론개혁을 말릴 생각은 없다.

다만 ‘정치 드라마’의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어하는 국민은 어떻게 할 것인지 궁금하다. 또 “취재한 사실을 확인요청해오더라도 발표 전까지 확인해 줄 수 없다”(이창동 문화부 장관)는 발상은 민주사회의 발전동력인 자유경쟁 원칙을 부정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더구나 우리에겐 아직도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부패를 들춰내는 언론이 필요하다. 월터 리프만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기자로 평가받는 제임스 레스턴은 “정부라는 배는 꼭대기부터 새는 유일한 기구”라고 간파했다. 나랏돈이 뭉텅이로 새나가는 정부의 낭비를, 세금을 쓰는 국가 기관과 공직자에 대한 감시를 언론이 잠시도 늦춰서는 안된다는 고언인데, 우리는 DJ 정권하에서 언론이 캐낸 ‘게이트 시리즈’가 사실로 밝혀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럼에도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고 ‘오보’를 막는다는 이유로 언론의 취재 자체를 봉쇄하려는 시도는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정보만 국민에게 알려라는 독재권력이나 다름없다. 이 세상에 오보를 내고 싶은 기자는 없으며, 진실을 숨기려는 취재원과의 숨바꼭질 과정에서 오보가 더 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입력시간 2003/03/2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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