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충무로 ‘주꾸미불고기’

얇아진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따뜻하게 내려 쬐는 햇살에서 봄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이맘때가 되면 많은 이들이 춘곤증과 함께 식욕부진을 느끼곤 한다.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살려주는 다양한 먹거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지만, 해산물 중에서는 단연 주꾸미가 돋보인다. ‘가을 낙지, 봄 주꾸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꾸미는 봄이 제 철이다.

주꾸미는 낙지보다 몸집이 작고 다리가 짧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맛에서 주꾸미를 낙지보다 한 수 아래로 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철 지난 낙지보다는 제 철을 맞아 물이 오른 주꾸미가 훨씬 맛이 좋기 때문.

주꾸미는 구이, 샤브샤브, 전골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데, 충무로 골목에 자리잡고 있는 주꾸미 전문 음식점 ‘주꾸미불고기’에 가면 주꾸미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24년째 주꾸미 요리를 선보이고 있는 이 집은 서울에 처음 주꾸미불고기를 선보인 원조로 많은 이들의 입 소문을 통해 알려져 있다.

새빨간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 주꾸미를 석쇠 위에 올린 후 숯불에 구워먹는 이 집의 주꾸미불고기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것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만하다. 숯불 위에서 지글지글 구워진 주꾸미는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일반적으로 주꾸미는 크기가 20㎝ 정도 되는데, 이 집에서 내놓는 주꾸미는 손가락 한 개정도의 크기로 한 입에 쏙 들어갈 정도로 적당하다.

소문난 맛의 비결은 주꾸미의 신선도와 매콤하게 버무려진 양념 두 가지에 있다.

순천, 부안, 서천, 대천 등 남해안과 서해안 일대에서 잡자마자 급랭을 해 가져온 이 집의 주꾸미는 산지 그대로의 싱싱함이 느껴질 만큼 신선도가 높고, 특유의 부드러움이 살아 있다. 여기에 태양초와 새마을초를 2대 1의 비율로 섞어 직접 담근 고추장에 마늘, 참기름, 간장, 설탕 등 각종 양념을 넣어 만든 불고기양념이 더해지면 매콤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돋보이는 주꾸미불고기가 탄생한다.

순천이 고향이라는 장영칠 사장은 주꾸미불고기에 대한 애착이 크다. 어릴 적 할머니께서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특별한 날 도시락 찬으로 싸주시던 맛을 잊지 못해 시작한 만큼,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도 그 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매일 아침 양념을 버무리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다.

장 사장에게는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원래 주꾸미는 입안이 얼얼하고, 얼굴에 땀이 송송 솟을 만큼 매콤하게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건강을 생각해서인지 너무 맵게 하면 잘 먹지를 않아 당시의 맛을 완벽하게 선보일 수 없다는 것. 화끈거릴 정도로 매콤한 맛을 원하는 손님들에게는 따로 양념을 만들어 준다. 원래의 양념도 혀를 자극할 만큼 매콤하지만 이 양념에 버무려진 것을 먹어야 원조 주꾸미불고기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주꾸미불고기를 더욱 맛있게 먹으려면 바싹 굽기보다는 설익어 보일 정도로 살짝 구워내는 것이 포인트. 주꾸미는 초고추장에 찍어 날로도 먹는 만큼, 살짝 구워내야 특유의 부드러운 맛을 만끽할 수 있다. 또한 매운 맛에 입안이 화끈거린다면 물보다는 냉콩나물국을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입안의 얼얼함도 빨리 잠재워 주고 매콤한 주꾸미불고기를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 준다.


▲메뉴 주꾸미불고기 14,000원, 낙지불고기 15,000원, 가이바시(키조개)불고기 18,000원, 모듬불고기 26,000원, 주꾸미야채볶음 4,000원.


▲찾아가는 길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 5번 출구에서 극동빌딩 방향으로 가다 나오는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선다. 이 골목을 따라 20여m를 내려가면 좌측에 있다. 02-2279-0803


▲영업시간 낮 12시~밤 10시 30분, 매주 일요일 휴무.

손형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3/31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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