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부시의 전쟁' 결론은 석유패권

민주당 구주류 극력반발, 신주류와 기싸움

20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후 미국 영국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바그다드로 진군하고 있다. 뉴욕 증시는 벌써부터 단기전 쾌승을 점치며 전쟁 랠리의 기쁨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예견된 승리는 확고불변한 명제이겠지만 전쟁의 속성상 전쟁의 앞날을 속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1991년 1월 1차 이라크전(걸프전)이 발발한 지 12년 2개월 만에 시작된 이번 이라크 전쟁은 세계 유일 패권 국가 미국의 세계 전략이 재정립되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로마 보다 강력한 무소불위의 세계 제국, 미국이 단극 세계 체제의 맹주국으로 장기 독주하는 발판이 될지 여부가 주목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그 반대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20세기 말 미국이 패권국으로 등장한 후 이번 전쟁에서처럼 강한 국제사회의 반발에 부딪친 적은 없었다.

이번 전쟁이 로마제국의 쇠락을 가져오게 되는 스팔타쿠스 반란과 같은 계기로 작용한다면 이번 전쟁은 미래의 역사책에 “2차 이라크전은 미국 패권에 도전할 국가가 없어 진행됐지만 21세기 중 미국의 패권이 도전받기 시작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파죽지세…바그다드 함락 초읽기

미군은 이라크 남부에서 지상전을 개시한 당일(21일) 이라크로 160㎞, 다음날 250㎞ 이상을 진격했다. 거칠 것 없는 진군이다. 주초 미 지상군의 바그다드 입성 가능성도 서방 언론에 의해 유포되고 있다. 미군의 선봉인 M1_A1 애이브럼스 전차는 별 저항을 받지 않은 채 무한 궤도의 자국을 이라크 남부 사막에 남기면서 바그다드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최초 육상전투가 이뤄진 이라크_쿠웨이트 국경도시 움 카스르의 전투는 싱거웠다. 미 영 해병대원들이 쉽게 성조기와 유니언 잭을 꽂았다. 쿠웨이트 국경에서 60㎞ 떨어진 이라크 제2도시 바스라의 공격도 마찬가지다. 지상 공격 3일만에 바스라, 나시리야 등이 미군에 포위했다.

바스라 전투에 참여한 콕스 미 육군 소령은 “작전지역에 도착하기 전 이라크 병사들이 항복하기 위해 우리를 기다렸다”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 이라크군이 종군 기자에게 항복 의사를 밝히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남부의 주력 부대인 이라크 3군단 소속 1개 사단의 경우 사단장 이하 전 부대원들이 백기를 들고 투항하기도 했다. 항복한 이라크 군 규모가 지상군 개시 3일만에 2,000명선을 넘어섰다. 점령된 이라크군 참호에서는 같이 항복하자는 사병들의 요구를 거부한 이라크 장교들의 시신이 나뒹굴었다.

걸프전 당시 포로로 잡힌 이라크 병사 50% 이상이 ‘공습과 전쟁의 공포로 상관을 살해하고 항복하고 싶었다’고 밝혔는데 이번에도 같은 양상이 전개되는 것이다.


“바그다드는 공포 그 자체”

전쟁 이틀째인 21일 이후 이라크 인들은 전쟁의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미군의 공습작전 ‘충격과 공포’(shock & awe)가 개시돼 바그다드 티크리트 모술 등 이라크 주요 도시는 불바다로 변했다.

출격에 참여한 영국 공군 토네이도 편대의 데렉 와트슨은 “바그다드는 공포 그 자체 였다”면서 “우리 편대가 바그다드 상공에 도착했을 때 지상에서는 몇 초 간격으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며 불기둥이 솟았다”고 말했다. 공격자의 목격담이 이럴진대 당하는 이라크 인들은 어떠했으리라는 것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21일 하룻 만에 7억 달러 상당의 정밀 유도폭탄과 토마호크 미사일 2,500발이 이라크에 퍼부어졌고, 지중해 걸프해 영국 페어포드 기지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 등에서 이륙한 미ㆍ영 전투기, 폭격기들의 출격 횟수가 1,000회를 넘어섰다.

걸프전 당시 이라크에 떨어진 폭탄의 40%를 퍼부었던 미 재래식 전략 폭격기 B_52기의 출격도 개시돼 가히 융단 폭격이라 할 수 있었다. 레이저와 위성 등으로 유도되는 정밀 유도 폭탄들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거처와 주요시설을 차례로 파괴했다.

상처 부위를 도려내는 외과수술처럼 개인ㆍ시설 타격 목표를 설정한 뒤 이를 집중 타격, 적의 능력과 전의를 무력화하는 이 공습전략의 성공 여부는 조만간 가시화할 이라크군 반격의 강도, 이라크 군 지휘부의 건재 여부 등을 통해 증명될 것이다.


통제력 잃은 이라크 지휘부

미국은 이번 전쟁에서 사용할 대부분의 첨단 무기들을 후세인 제거에 사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 개시 3일만에 대당 가격이 150만 달러나 되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 350여기를 바그다드 시내 대통령궁, 지하 지휘본부에 쏟아부었다. 1개당 가격이 2만 5,000달러인 JDAM 등 정밀 유도폭탄도 21일 하루에만 1,600발이 소비됐다.

이 같은 정밀 타격으로 후세인의 첫째 아들 우다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세인의 사촌으로 1988년 쿠르드족 반란 진압에 화학무기를 사용한 ‘케미칼 알리’ 알리 하산 마지드 군사령관, 타야 야신 라마단 부통령, 이자트 이브라임 알 도우리 혁명평의회 부의장 등 군 수뇌부도 정밀 폭격에 희생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첨단 무기 집중 사용의 이면에는 전쟁의 양상이 후세인의 건재 여부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이라는 판단이 녹아있다. 후세인이 쓰러진다면 조기 종전이 가능하다는 게 미 군수뇌부의 인식이다. 공습 초기부터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 장관이 “공습으로 이라크 지휘부가 통제력을 잃고 있다”며 선전전에 가까운 브리핑을 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하지만 현재까지 후세인의 생사에 관해 미ㆍ영 연합군은 정확한 증거자료를 내놓지 못하는 형국이다.


만만치 않은 이라크군의 저항

미군이 이라크 남부를 횡단, 유유히 진군하고 있지만 이라크 군 저항도 상당하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미군은 쿠웨이트 인근 움 카스라를 점령하고 바스라 나시리야 나프완 등을 잇따라 포위했지만 이들 도시를 함락, 완전 장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유는 미군의 대량 피해가 불가피한 시가전을 두려워해서다.

미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라크 부대들이 어이없이 항복하고 있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군의 반격이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21일 미군이 점령한 움 카스라에서는 23일에도 이라크 군의 국지적 반격이 이뤄졌고 바스라 인근 지역에서 이라크 군 트럭들이 미 에이브럼스 전차에 저항한 것이 목격됐다.

미 관측통들은 “초기 미군에 항복한 이라크 병사들은 후세인의 수니파에 반대하는 남부 시아파 지역에서 징집된 병사들로서 이들의 항복은 예견됐었다”면서 “하지만 쉽게 점령될 것으로 보였던 남부에서 조차 강력한 저항이 뒤따르는 것은 의외의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라크의 최정예 부대인 공화국 수비대가 버티고 있는 바그다드 인근에서 지상전투가 시작되고, 바그다드 점령작전에 따른 시가전의 막이 오른다면 이라크군의 강력한 반격이 진행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단기전이라는 미국의 구상은 희망사항으로 전락할 것이다.


친미정권 수립과 중동 새 판 짜기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번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귀착될 것이고, 미국은 종전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 패권 전략을 재조정할 것이다. 미국은 세계 패권을 재편하기 앞서 이라크에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시작으로 중동의 판을 새로 짤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전후 처리과정에서 가장 초점이 집중되는 대목은 이라크에 대한 미ㆍ영 연합군의 군정 실시이다. 개전에 앞서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의 독일ㆍ일본 군정 실시 기록을 재검토했던 미국은 허약한 이라크 내 친미세력을 육성하기 위해 군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해외의 이라크 반정부 인사들은 국내 기반이 매우 취약해 미 군정에 개인자격으로 부분 참여하게 된다. 군정 실시기간은 최단 3개월, 최장 1년 등의 방안이 검토되고 있지만 최소 6개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군정을 통해 이라크 친미 정권을 세울 미국은 이라크를 교두보 삼아 이란, 시리아 등 반미 국가들을 압박할 것이 확실시된다.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쿠웨이트 등 기존의 친미 정권들에 대한 당근 일변도의 정책도 수정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미국은 이번 전쟁 추진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던 유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 다자 기구을 개혁하거나 무력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힘을 도덕적 선(善)으로 전제하는 미국 신보수주의자(매파)들은 “유엔이 스스로의 역할을 회피할 때 미국은 세계 경찰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은 이번 전쟁을 통해 실행에 옮긴 선제 공격 전략을 새 군사 독트린으로 격상, ‘안보 위협이 있다면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전쟁을 감행한다’는 전대미문의 군사전략을 정식화할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의 예단 만으로 전쟁을 겪어야만 하는 초유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국제부 이영섭기자

입력시간 2003/04/01 14:11


국제부 이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