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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시장이여 축배를 내려놓아라

전쟁 조기종결 기대심리로 회복세, 장밋빛 전망

아무도 축복하지 않은 전쟁에 시장은 축배를 들었다. 미국의 대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면서 유가는 대폭 하락세로 돌아섰고, 주식 시장은 ‘전쟁 랠리’ 국면을 연출했다. 채권 가격과 원화 가치도 높아졌다.

물론 아무리 비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시장이라고 전쟁 그 자체를 즐길 리는 없다. 오랫동안 경제 전체를 짓누르고 있던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단기간에 전쟁이 마무리될 수 있다는 기대감의 결과였다고 보는 게 더 합당하다. 시장은 지금 이렇게 주문을 외고 있을지 모른다. “일단 시작된 전쟁이니 어쩔 수 없다. 미국이여!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다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시장도 예의 냉정함을 되찾을 게 분명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장은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리며 전쟁으로 인한 이해 득실을 따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천하의 수퍼 컴퓨터가 동원된다 해도 수십만, 아니 수백만의 변수를 일일이 다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제 전쟁이 터질 지 모를 불확실성은 분명 제거됐지만, 전개 양상에 대한 새로운 불확실성이 다시 엄습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은 축배를 들었다

조시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17일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게 보낸 “48시간 안에 떠나라”는 최후 통첩(ultimatum)은 전 세계 주식 시장에 힘찬 랠리의 신호탄이었다.

21일까지 미국 다우지수는 8,141.92에서 8,521.97로 4.67% 올랐고, 나스닥지수도 1,392.27에서 1,421.84로 2.12% 상승했다. 독일 닥스지수(9.16%) 영국 FTSE100지수(3.73%), 일본 닛케이평균주가(4.11%) 등도 랠리 대열에 합류했다.

하늘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국제 유가 또한 빠르게 안정세를 찾았다. 배럴 당 30달러에 육박했던 중동산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21일 23.74달러에 거래돼 1주일간 무려 6달러 가량 떨어졌고, 북해산 브랜트유와 서부 텍사스 중질유(WTI)도 각각 6~8달러씩의 하락폭을 보였다.

국내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로 직전까지 SK 사태로 휘청거렸던 국내 금융 시장도 이라크 전쟁 발발이라는 호재에 전형적인 ‘트리플 강세’를 연출했다. 월요일인 17일 연중 최저점을 찍으며 515.24까지 추락했던 종합주가지수는 4일간 무려 60포인트 이상 뛰어올라 570선을 단숨에 돌파했고, 코스닥 지수도 이 기간 34.64에서 40.10으로 올라섰다.

특히 주간 상승폭은 거래소 11.75%, 코스닥 15.76%로 전 세계에서 최대치를 기록하며 ‘최대의 전쟁 수혜국’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였다. 같은 기간 채권값도 높아져 지표 금리인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5.10%에서 4.75%로 급전직하했고, 원ㆍ달러 환율은 한동안 이어졌던 상승세를 접고 박스권 등락 국면으로 돌아섰다.

정부는 이 같은 시장의 신호를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라크전 조기 종전 후 한국 경제에도 숨통이 트이면서 당초 전망대로 5%대 성장이 가능하다”고 낙관했다. 전쟁이 4~6주 내 종결될 경우 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22~25달러 수준으로 안정되고, 미국 경제 또한 2.5% 내외의 성장을 보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꺼지지 않은 코리아 리스크

하지만 시장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전후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분명 장밋빛만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전문가들은 ‘전쟁 발발에 이은 조기 종전’의 긍정적 효과보다 내부적으로 도사리고 있는 북핵 문제 등 ‘코리아 리스크’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라크전이 끝나면 세계의 이목은 곧 북핵 문제에 집중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이 본격화하고 주한미군 철수 공론화 등으로 긴장이 깊어지면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이라크전 종결- 북핵 문제 지속’의 경우 한국 경제 성장률이 3.5%로 하락하고, 종합주가지수는 450포인트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당장 이라크 밤 하늘을 대낮처럼 밝히고 있는 엄청난 폭발음에 가려져 있기는 하지만 SK 사태로 빚어진 국내 기업의 회계 불투명성 문제, 급증하는 가계 부채와 연체율에서 비롯되고 있는 신용 위기 등도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로 남아있다.

LG경제연구원 조용수 연구위원은 “전쟁이 조기에 종결된다 해도 북핵 위기가 불거지고 SK 사태, 신용 위기 등에 따른 금융 시장 불안이 다시 재연되는 상황이 온다면 한국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위기 상태에 빠져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증권 신성호 상무도 “이번 주에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은 북핵 위기, SK 사태 등에 따라 크게 하락한 것에 대한 반발의 성격이 짙다”며 “점차 시장도 냉정을 되찾고 국내 내부 요인에 주목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 회복도 불투명

설사 북핵 문제 등 국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된다 해도 세계 경제 회복 지연이라는 암초도 걸림돌이다. 이라크전 조기 종결이 미국과 세계 경제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각의 긍정적인 전망을 무조건 신뢰할 수 없는 탓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시장이 기대하는 대로 전쟁이 단기에 끝난다 해도 미국, 유럽, 일본 경제의 구조적 불안이 해소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한다. 조용수 연구위원은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미국 경제의 성장률 소폭 상승 등의 제한적인 효과는 기대할 수 있다”며 “하지만 심각한 경상수지 적자, 재정 적자 등 단기간 수습이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 경제가 완전히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일각에서는 전쟁 이후 ‘테러 위협’이 미국 전역을 휩쓸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신인석 박사는 “‘9.11 사태’에서 경험했듯 테러 공포가 확산될 경우 극심한 소비심리 위축이라는 악재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아예 “지난 10년간 미국 경제의 공급 과잉과 거품, 구조조정 지연에 따른 유럽과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 등으로 전후 세계 경제의 조기 회복은 힘들다”고 못박았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쟁 장기화다. 기대를 저버리고 전쟁이 장기전으로 치달을 경우 세계 경제는 초토화할 가능성이 높다. 전쟁이 개시된 지 불과 며칠 새 수출 상담 중단 등으로 인한 우리나라의 수출 차질 규모는 291건에 4,600만달러, 우리 돈으로 600억원에 육박했다.

특히 대규모 유전 파괴 등 극단의 사태로 이어져 국제 유가가 다시 폭등할 경우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는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시장의 환호는 길고 긴 불황의 예고편인지도 모른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3/04/0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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