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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다음은 북한?

북한 지도부, 이라크 전쟁 이후 상황에 위기의식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미국의 칼날은 어디로 향할까.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제각각이지만, 지난해 10월 이후 ‘핵 시위’를 하고 있는 북한이 우선순위에 올라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부도 이라크 전쟁이 북한 핵 문제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미국 및 북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 위협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국제정세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데다, 미국 또한 이라크 전쟁을 마무리하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일 기세이다.

핵 문제를 둘러싼 북미 양국의 대결은 한마디로 마주보고 돌진하는 ‘치킨게임’처럼 위태롭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미국이 북한과 직접 협상에 나설 확률도 사실상 없는 상황에서, 양측 모두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다.

북한이 무기급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방사화학실험실(재처리 시설) 가동 준비에 들어간 가운데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효력이 다음달 10일 발생한다. 앞으로 보름 후면 북한은 국제법에 구애 받지 않고 핵 무기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북한의 선택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북한 지도부는 엄청난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이 유엔의 동의 절차도 밟지 않은 채 주권국가의 정권을 삽시간에 교체하는 모습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닐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21일 이라크 전쟁에 대해 “엄중한 주권 침해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 등 지도부가 느낄 압박감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북한 지도부는 이제 본격적인 핵 개발로 미국과 맞설 것인지, 아니면 타협 쪽으로 발걸음을 옮길지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다가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북한의 향후 행보에 대해 ‘이쪽이다’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단지 북한은 이라크 전쟁의 장기화 여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처리문제, 미국 내 강온파 역학 관계 등을 저울질하면서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최근 한달 동안 공식 활동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도 선택을 위한 장고(長考)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아가느냐, 물러서느냐

일단 이라크 전쟁이 빨리 끝날 경우 북한이 한계선(red-line)을 넘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핵 재처리에 들어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충분한 양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가 북한의 핵 시위에 대한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 북한의 핵 재처리는 ‘핵 개발은 오직 전력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그간의 해명을 무색케 할 뿐 아니라,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최후의 카드’를 버리는 도박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북한은 이라크 전쟁 후 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대화의 틀 속에서 미국과 담판을 짓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조영길 국방장관도 21일 국회 국방위에서 “한반도에 긴장이 조성될 우려는 있지만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학계에선 그 반대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핵 개발이 체제 보장의 보루라는 생각을 굳히면서 그 동안 시인도 부인도 않던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거나 핵 재처리를 강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은 1월10일 NPT 탈퇴 선언 후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 8,000개 폐연료봉 이송, 영변 5㎿ 원자로 재가동, 2차례에 걸친 실크웜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긴장관계를 높이며 정면대응 태세를 갖춰왔다.

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최근 한 세미나에서 “1994년과는 달리 폐연료봉을 추출한 현재의 상황이 더 큰 위기”라면서 “조만간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거나, 핵 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미국의 선택

북한이 선택의 기로에 선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협상과 충돌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는 북한의 핵 보유시점을 향후 6개월 이내로 진단했고, 일본의 북한 대변인으로 통하는 김명철 박사는 4월 중에 북한이 핵무기를 가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국은 북한이 위험한 도박을 감행한다면 전쟁이냐, 양보 즉 협상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의 결심은 북한 변수 이상으로 향후 핵 문제 전개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주목되는 점은 미국의 대북 정책이 이라크 전쟁이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더욱 강경해질 가능성이다. 전쟁 승리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대북 압박 정책을 본격화할 수도 있다.

특히 이라크 문제 처리 과정에서 국제 협조를 통해 후세인 체제를 무장 해제 시키려던 미 행정부 내 온건파의 입지가 약화하고 강경파들의 입김이 세질 수 있다.


김진표 해프닝과 북폭설

이 같은 관점에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2월 중순 우리 정부에 북한의 영변을 폭격하겠다는 입장을 타진해왔다는 인터넷뉴스 오마이뉴스의 보도는 심상치 않다. 물론 이 보도는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부정확한 미국의 정보원으로부터 전해들은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무책임한 경제관료의 말 실수’로 일단락됐다.

또 2월초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방미 특사단과 미 정부 고위관계자가 북폭을 갖고 논쟁을 벌였다는 브루스 커밍스 미 시카고대 교수의 전언도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옵션을 모두 배제할 순 없다’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의 말처럼 미국이 외과적 군사공격(surgical strike)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한 것 같지는 않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평화적 해결을 거듭 확인했지만, 얼마 전에는 대북 군사행동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분명한 것은 ‘후세인 및 김정일과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해온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핵무장을 할 경우 이를 김정일 정권 제거의 강력한 근거로 삼고 강력하게 대응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비타협주의가 타협주의로 옮아갈 가능성은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희박하다.


북한위협론의 미래

물론 부시 행정부가 유엔이나 다자간 협상을 통해 북한 핵 문제 해결에 나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미국이 일방주의적 이라크 개전에 대한 국제적 비난 여론을 다독거리기 위해 국제협조주의나 대화 해결 원칙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후 처리 문제, 유엔의 새 역할 모색, 독일ㆍ프랑스 등 우방과의 관계 설정을 비롯한 새 골칫거리를 떠안게 될 것이라는 점도 대화 해결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4자 회담이 실패했듯이, 북한이 강력 반대하는 미국 주도의 다자회담의 미래도 아주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전쟁 이후에도 북한 핵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고 ‘북한 위협론’을 활용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즉 북한과 협상하기는 싫고 선제공격을 하자니 북한의 대응공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위협론을 미사일방어(MD) 구축 등 군비증강의 명분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 핵 문제는 오랫동안 실마리조차 찾지 못할 수 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입력시간 2003/04/01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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