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철쭉

세월이 흐름에 따라 마음을 끄는 나무도 꽃도 달라진다. 철쭉만 해도 그렇다. 예전에 무리를 지어 지천으로 피어 온통 산등성이를 붉게 만들던 진달래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는데 이젠 그 강렬한 빛깔보다 연분홍 꽃빛으로 온 산에 퍼지듯 피어나는 철쭉꽃의 부드러운 빛깔이 더욱 마음을 끈다.

꽃보다 더 화려한 사람들의 옷차림과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남쪽에서부터 북상하는 철쭉제 소식을 따라 봄 산행을 준비하고 싶은 마음이다.

철쭉은 진달래과에 속하는 작은 키나무(관목)이며 겨울이 되면 잎을 떨구는 낙엽성 식물이다. 봄이 시작되면 철쭉은 화살촉 같은 꽃봉오리를 살며시 열며 피어난다. 그 개화는 결코 서두름이 없이 충분히 무르익은 봄에 시작되므로 꽃샘추위에 해를 당하는 일은 결코 없다.

꽃은 한가지 끝에 두 송이부터 일곱 송이까지 여러 송이가 모여 달린다. 꽃이 한껏 피어나면서 꽃잎은 솜사탕처럼 부드러운 연분홍빛이 되고 다섯 갈래로 갈라져 벌어지면서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철쭉은 이 갈라진 꽃잎의 아래 부분이 함께 붙어 있는 통꽃이다. 꽃잎은 마치 깔때기처럼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고 그 사이로 꽃잎보다도 길게 나와 있는 한 개의 암술과 열 개의 수술은 마치 갈고리처럼 한 방향으로 휘어진다. 수술의 길이는 조금씩 다르다. 꽃잎의 안쪽, 수술이 맞닿을 곳에는 자주빛 선명한 반점이 점점이 박히어 소녀의 주근깨처럼 애교스럽다.

꽃이 피면서 함께 자라기 시작한 철쭉의 잎은 주걱처럼 길쭉하게 둥근 잎을 내보내고 연두빛 잎새들이 싱싱한 초록빛으로 변해갈 무렵 꽃이 진다. 시든 꽃잎은 한 장 한 장 떨구지 아니하고 보기 싫은 모습이 되기 전 앙증스런 깔때기 모양의 통꽃 잎이 한번에 떨어진다.

봄비라도 내리고 나면 그 고운 분홍빛을 아직 그대로 간직한 꽃잎들이 바닥에 어질러지고 가지 끝에는 아직 암술이 홀로 남아 매달려 있는 모습은 철쭉꽃이 봄에 가져다 주는 또 하나의 서정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뒷산에 지천으로 피어 한입 가득 따서 물고 허기를 달랠 수 있던 진달래를 사람들은 참꽃이라 부르고 비슷하게 생겼으나 먹을 수 없는 철쭉을 개꽃이라 불렀다. 또 진달래가 피고 연이어 피는 꽃이라 하여 연다래라고도 한다.

한자 이름은 척촉(擲燭)이라 하는데 철쭉이란 우리말 이름도 이 한자 이름의 발음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닐까 추측 해 본다. 척촉이란 한자어는 가던 길을 더 가지 못하고 걸음을 머뭇거린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사람에 따라서는 철쭉꽃에 반해 더 가지 못하고 우뚝 서서 바라보게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어린양이 철쭉의 붉은 꽃봉오리를 보고 어미양의 젖꼭지로 잘못 알고 젖을 빨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러나 그 보다는 철쭉꽃에는 독성이 있어 양이 이 꽃만 보아도 가까이 가지 않고 머뭇거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맞는 듯 하다.

독성이 어느 정도냐 하면 벌들이 찾아 갔다가 기절할 정도다. 독성 이외에도 철쭉에게는 꽃받침 주변에서 끈끈한 점액이 묻어나는 특징이 있어 벌레들을 어려움에 빠뜨린다.

진달래가 피기 시작하는 이른 봄이야 아직 날씨가 덜 풀린 탓에 벌레들의 활동이 뜸한 때이지만 철쭉이 만발하는 시기는 온갖 벌레들이 나와 기승을 부릴 때이다. 그래서 철쭉꽃은 나비나 벌들은 직접 꽃잎에 날아와 앉아서 철쭉꽃의 수분(꽃가루받이)을 돕도록 하고 새순을 갉아 먹는 기는 벌레들은 이 점액질에 발이 묶여 피해를 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철쭉은 이 외에도 약으로, 조각재로 쓸모가 많다. 우리나라엔 수없이 많은 서양의 철쭉 품종들이 들어와 있지만, 원색적인 외국 품종과 비견하여 우리 철쭉의 빼어남에 감동하는 이가 나 말고도 많다. 철쭉 보고 ‘아! 그 모습 참 곱다’ 하고 한번 제대로 알아보고 불러 주면 봄이 훨씬 특별해지련만.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2003/04/0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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