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프레소] 정말로의 신보 ‘벚꽃 지다’

국내에서 나온 재즈 음반은 많다. 그러나 정말로가 4월 1일 발표한 앨범 ‘벚꽃 지다’는 몇 가지 점에서 그 간의 전례들과 많이 다르다. 그 다름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무엇보다 앨범 전체가 한국의 재즈로 가득하다. 가사와 곡조 전부 다 한국인의 성정에 와 닿는다. 지금까지 국내 재즈 보컬이 발표한 재즈 앨범이라면 8~9할을 스탠더드 재즈나 재즈화시킨 팝 넘버들로 채운 뒤, 나머지는 우리 가사를 텍스트로 해서 만든 곡이기 일쑤다. 기존의 가요나 가곡 등 일반인의 귀에 익은 선율을 소재로 해, 재즈화시켜내는 방식이다. 물론 그것도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말로의 신보는 하나의 앨범 전체가 새로운 텍스트(가사)와, 그에 따른 새로운 노래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한국의 재즈사에서 하나의 굵은 획을 그을 만하다. 요컨대 한국은 이제 비로소 한국에서만 가능한 재즈 앨범 하나를 갖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특장점은 형식과 내용면에서 대단히 한국적인 재즈로 충만하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람이 가사를 쓰고 거기에 곡을 붙였으니,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다. 국내 재즈 가수들의 음반은 절대적으로 해외의 레퍼토리로 채워져 있다. 스탠더드 재즈나 팝송 등이 주류다.

우리말 노래는 뒷부분 한구석에 생색 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로 역시 비슷했다. 그랬던 그녀가 신보에서 뒤집기를 멋지게 성공해 보였다. 사실 그것은 국내 재즈 가수 모두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능력과 현실적 여건 등의 이유로 실제 이뤄내기란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 작업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먼저 텍스트가 있었다. 바로 이주엽의 가사가 그것이다. 한국일보 편집부에서 기자로 일해 오던 이씨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내겠다는 평소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음반제작자로 변신한 이씨는 자신이 노래 가사를 전제로 하고 써 둔 일련의 연작시들에 곡을 붙일 사람을 물색했다. 수소문 끝에 정말로와 연결된 그는 그 가사를 넘겼고, 이것은 정말로에 의해 합당한 선율을 얻은 것이다.

1998년 재즈 유학길에서 돌아 오자마자 1집 앨범을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에도 신보를 낼 만큼 정말로는 부지런한 가수다. 이것은 그녀의 상품성을 음반사에서 확신했고, 재즈팬들도 그의 작품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음반은 지금까지 그녀가 발표해 온 음반들과는 다르다.

‘한국적’이란 말은 재즈의 본류에서 벗어나 있다는 말도 된다. 이른바 정통 재즈가 스윙과 팝의 전통 아래 화려한 개인기로 변주를 펼쳐보인다면, 이 앨범은 속주와 변주의 색채를 줄였다. 대신 한국인이라면 어느 누구의 귀에 라도 얼른 들어 올 만한 멜로디로 흙냄새와 행주 냄새 물씬 풍기는 이야기를 잔잔히 펼쳐 놓고 있다.

‘어머니 우시네 봄날 비오듯 꽃잎 지는데/어머니 우시네 고요한 세상 저무네’(어머니 우시네). 읊조리는 듯한 리듬 앤 블루스에서 시작해 격정적 목소리로 뽑아 올리는 정말로의 목소리는 댄스 아니면 발라드만이 전부인 듯한 한국의 여성 보컬에 하나의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앨범에서 정말로는 정통 재즈라기보다는 재즈의 이름 아래 한국 대중의 감성과 맞닿을 수 있는 영역을 모색하고 있다.

앞서 소개됐던 시각장애인 하모니카 주자 전제덕의 유려한 하모니카 연주가 더욱 돋보이는 ‘벚꽃 지다’는 누구나 들어도 부담 없을 만큼 한국적이다. 또 봄이면 꼭 어디선가는 울려 퍼지는 ‘봄날은 간다’에서는 옛 노래를 재즈적 즉흥에 얹어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정말로의 노련함이 돋보인다. ‘이름 없는 풀꽃으로’ 같은 곡은 비브라하프 음색의 신디사이저와 새털 같은 브러시 워크의 드럼이 마치 MJQ의 정밀한 재즈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여기까지만 이라면 앨범의 색깔은 한국인 누구에게나 와 닿을 서정성으로 중무장하고 있다고 단정 해도 좋다. 그러나 그 같은 판단은 ‘저 바람은’을 만나 여지 없이 깨진다. 언제그랬냐는 듯, 정말로의 보컬은 댄스 뮤직의 활발함으로 가득 차 있다. 댄스 뮤직을 방불케 하는 펑키한 사운드로 일신하고 기타음도 디스토션을 적당히 걸어, 분위기를 일신한다.

앨범 곳곳이 한국적 기호로 가득 찬 정말로의 ‘벚꽃 지다’는 우리를 봄의 끝자락에 데려다 놓고, 벌써 이 봄을 아쉬워 한다.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2003/04/06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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