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프로야구 '플레이 볼'

투타 완벽조화, SK 돌풍 예고

다른 운동과는 달리 야구는 휘슬이나 팡파르 음향 대신 주심의 우렁찬 구호와 함께 경기가 시작된다.

‘플레이~볼.’ 프로야구의 함성이 돌아왔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은 5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팀 당 133게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스포츠면을 화려하게 장식할 5개의 키워드를 통해 어느 해보다 새로운 바람과 뜨거운 경쟁이 예고되는 올 시즌 프로야구 판도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SK 반란 이끌 조범현감독, 엄정욱

8개 구단 중에서 현직 대통령과 가장 ‘코드’가 맞는 사령탑을 뽑으라면 단연 조범현 SK감독이다. 다 쓰러져가던 팀에 새롭게 지휘봉을 맡은 것부터가 닮았다. 최연소 감독(43)으로 20대 중심으로 선수층을 과감하게 물갈이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주전 투수 평균 연령은 22살로 8개 구단 중 가장 젊다.

조 감독은 기존의 권위나 구습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SK에는 20승을 거둘 투수나 30홈런을 칠 걸출한 스타가 없다. 조 감독은 지난해 홈런을 45개나 친 페르난데스를 팀워크를 해친다는 이유로 퇴출시켰다. 그런데도 SK는 이번 시범경기에서 10승3패의 성적으로 2위 한화를 3경기 차로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비결이 뭘까. 조 감독은 명령보다는 선수들과의 대화를 중시한다. 선수들의 잘못을 손찌검으로 꾸짖기보다는 왜 그 순간에 그런 플레이를 했는지 묻는다. “조 감독님이 취임한 후 게임을 풀어나가는 안목이 크게 늘었다”는 한 노장선수의 귀띔에서 SK가 정규 시즌에 몰고 올 돌풍의 강도가 느껴진다.

SK의 마운드는 시범경기 10승 중 5승을 완봉승(팀 방어율 2.08)으로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인천의 짠물투수들이다. 그 중에서도 엄정욱(22)의 이름 석자가 올 한해 헤드라인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지 않을까. 엄정욱은 지난 스프링캠프에서 160㎞의 광속구를 던진 괴물투수.

그러나 그 빠른 공을 그 자신도 어쩌질 못해 3년 동안 단 1승도 건지지 못했다. 그러던 그가 올 시즌 뭔가 단단히 사고를 칠 태세다. 엄정욱의 시범경기 5게임 성적은 2승2홀드에 방어율 0. 더더욱 놀라운 것은 27타자를 상대하는 동안 삼진은 7개나 되지만 볼넷이 3개에 불과하다는 사실. 1승을 올리는 것보다 볼넷 없는 경기를 해 보고 싶다는 그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엄정욱의 부상은 올 시즌 투수가 타자를 압도하는 투고타저 현상을 의미한다. 시범경기 52경기를 치르는 동안 평균 방어율은 3.72로 역대 통산 방어율(3.93)과 지난해 평균치(4.23)에 비해 크게 향상됐다. 이에 비해 시범경기 평균 타율은 0.240으로 역대 통산 타율(0.260)과 지난해 정규 시즌 타율(0.263)에 크게 못 미친다. A


우승방향 풍향계 될 정민태

해외복귀파 정민태(33ㆍ현대)의 활약 여부가 올 프로야구 우승 경쟁의 풍향계가 될 전망이다. 현대가 5억원을 내던지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영입한 정민태에 거는 기대는 ‘에이스’다. 투수놀음이라고 하는 야구 경기에서 에이스의 비중은 팀 전체 분위기를 좌우할 만큼 막대하다.

2년4개월만의 첫 국내 무대에서 신나게 두들겨 맞았던 정민태가 25일 두번째 등판에서 막강 삼성 타선을 5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승리투수가 되자 계약 마지막해인 현대 김재박 감독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민태의 에이스 부활은 개인적으로는 일본에서 겪어야 했던 부상과 차별에 따른 좌절과 수모를 만회할 수 있는 명예회복의 기회다. 팀으로 볼 때도 1998년과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던 투수왕국 재건의 신호탄이다.

정민태의 성공적인 복귀 기대감은 프로야구 판도를 당초 삼성과 기아의 양강 다툼 예상에서 삼성-기아-현대의 삼국지 열전으로 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5일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는 정민태의 부활투를 함께 지켜볼 일이다.


기아타이거스 V10 향해 ‘포효’

프로야구도 뿌린 만큼 거둔다는 경제원리의 지배를 받는다. 그런 면에서 기아 타이거스가 올 한해 가장 큰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반드시 ‘V10(전신 해태를 포함해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의 대망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이를 위해 기아는 스토브리그를 통해 ‘올인’ 배팅을 했다. 현대의 간판타자 박재홍과 두산의 특급 마무리 진필중을 데려오는데 현금만 18억원을 쏟아부었다. 늘 4번 타자에 허전함을 느끼던 기아로서는 박재홍의 영입으로 막강 화력의 중량감을 더하게 됐다.

박재홍은 시범경기 12게임에 출전해 42타수14안타 7볼넷을 기록, 3할3푼3리의 타율과 4할4푼의 출루율로 팀 공격을 주도했다. 이와 함께 김진우, 마크 키퍼, 다니엘 리오스, 최상덕 등으로 이어지는 선발진에 진필중이 버티고 있는 불펜은 최강 마운드를 자랑한다.


한해 농사 절반은 용병 몫

국내 프로야구에서 용병의 역할은 ‘킹메이커’에 비교된다. 잘 뽑은 용병 하나가 우승 대권의 향방을 결정짓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팀 전력과 흥행성적에서 용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특히 올 시즌에는 외국인 선수 교체 가능 횟수를 기존 1회에서 2회로 늘리는 등 용병의 활용도를 대폭 확대했다. 그러나 정작 올 시즌 확실한 용병 흥행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과거 두산의 홈런타자 타이론 우즈나 롯데의 야생마 펠릭스 호세처럼 화끈한 공격야구를 주도할 만한 대형 슬러거를 찾기 힘들다.

3년차인 삼성의 브리또가 34타수15안타로 4할4푼1리의 고감도 타율에 4개의 홈런을 기록한 것이 용병 최고 성적. 뒤를 이어 LG의 브렌트 쿡슨과 SK의 디아즈가 나란히 3할의 타율에 1개와 2개의 홈런을 각각 쏘아올렸지만 이들 또한 파괴력은 미흡하다.

물론 홈런 3개를 기록한 롯데의 보이 로드리게스도 있다. 하지만 그는 1할7푼8리의 초라한 타율에 34개의 아웃카운트 중 절반이 넘는 19번을 삼진으로 당할 만큼 기복이 심해 꼴찌 탈출을 염원하는 롯데팬들에 실망감만 안겨줄 것으로 우려된다.

김병주기자

입력시간 2003/04/06 13:04


김병주 bj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