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도라 도라 도라, 배트 로얄

일본인의 눈으로 본 전쟁의 광풍

올 초 1월 12일, 일본 감독 후카사쿠 긴지(深作欣二)가 72살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일본의 국민 배우로 불리는 다카쿠라 켄이 젊은 시절에 출연했던 야쿠자 영화 <의리 없는 전쟁>등 남성 액션물에 능했던 감독이다. 국내에서 비디오나 DVD로 확인할 수 있는 긴지의 작품으로는 1970년 작 <도라 도라 도라 Tora! Tora! Tora!>와 2001년 작 <배틀 로얄 Battle Royale>이 있다.

<도라 도라 도라>는 고립주의를 고수하던 미국을 2차 대전에 참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미국과 일본 양측에서 조명한 세미 다큐멘터리이다. 미국ㆍ연합국 입장의 전쟁 영화가 대부분이라, 가해자의 시각까지 안배한 영화를 만나는 것은 신기할 지경이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영국, 프랑스, 미국, 캐나다의 연합군 뿐만 아니라 독일 입장에서도 조명한 <지상 최대의 작전>과 더불어, 역사적 순간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려 한 당대 영화인의 노력이 읽힌다.

원작으로 삼은 책은 고든 W 프렌지의 ‘도라 도라 도라’와 래디슬라스 파라고의‘The roken Seal’. 일본과의 합작품이니 만치 시나리오 작업에서부터 일본 작가가 참여했고, 일본 측 연출은 마스다 도시오, 후카사쿠 긴지가 맡았다. 미국 편을 연출한 리차드 플라이셔가 전체 조율을 했다. 두 시각으로 나뉜 일본 정부와 군부, 그리고 미국 측의 혼란스런 상황 분석을 오가며 긴장을 축적해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새로 부임한 일본 해군 제독 야마모토(야마무라 소)는 육군 장성 출신이지만, “일본은 미국인을 개인주의에 물든 부패 국가로 오인하고 있다. 전쟁이 나면 미국은 강한 적이 된다. 난 미국에서 살아서 그들이 가진 긍지를 안다“며 정확한 상황 분석을 한다. 그러나 육군 장관 도조 히데키, 총리 코노에 후미마로 등은 “왜 미국 눈치를 보나. 미국은 중일 전쟁도 독일과의 동맹도 반대한다”며 강경론을 편다.

한편 미국에선 국무 장관 코델 힐이 일본 대사를 반신반의하며 맞이하고, 해군 장성들은 일본 함대의 수상한 움직임을 워싱턴에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육군 참모총장 마샬 제독(마틴 발삼)의 공격 명령 전문이 도착하기까지는 너무 긴 정보 분석 시간, 전달 단계가 소요된다.

1941년 12월 7일 오전 6시, 오하우섬 북쪽에 결집해 있던 6척의 일본 항공 모함에서 183대의 폭격기가 발진하고, 다시 1시간 15분 후 167대의 비행기가 진주만을 향하는 장면은 차라리 아름답다. 찬찬히 쌓아올린 긴장을 일거에 폭발시키는 공격 씬은 지금 보아도 놀라운 장관이다. 아카데미 특수 효과상을 수상했고, 촬영, 편집, 디자인, 사운드상 후보에 올랐다.

극적 내러티브나 예술적 성과를 꾀하기보다 논리적으로 상황을 구축해가며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통속적인 삼각 관계 사랑까지 버무린 <진주만>과 비교해보면 성과가 더욱 돋보인다. DVD에는 구로사와 아키라, 미후네 도시로에 관한 책을 썼던 듀릭 엘버리와 감독 플라이셔의 코멘터리가 들어있다.

<배틀 로얄>(스타맥스)은 일본 개봉 당시 논란이 많았다. 미래의 일본. 무인도에서 42명의 중학생이 단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생존 게임을 벌인다. 피를 분수처럼 내뿜으며 죽는 등, 내용이나 표현 수위가 대담하다. 국내 출시된 <배틀 로얄> DVD에는 ‘스페셜 에디션’ ‘디렉터스 컷’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데, 일본 개봉 당시 잘렸던 부분을 되살렸기 때문이다.

부록의 제작 다큐를 보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열적인 긴지 감독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머리는 완전 백발이지만 다부진 체격에 소매 없는 운동복, 선글라스 차림의 젊은 모습으로 자신의 60번째 작품을 지휘한다.

무더위 속에서 연기 경험 없는 어린 배우들을 가르치며, 힘겨루기 내기도 하는 노감독. 손자 손녀뻘 배우들은 긴지 감독의 70회 생일 잔치를 마련하여 노래를 불러준다. 교사로 출연한 기타노 다케시는 “긴지 감독 작품이라 기쁘게 출연했다”고 말한다. <배틀 로얄 2> 기획 중에 세상을 떠난 긴지를 대신하여, 아들이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갈 것이라 한다.

옥선희 DVD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4/06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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