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代 열혈남녀 "골드세대라 불러다오"

'인생은 60부터' 몸으로 실천하는 실버세대

아직은 쌀쌀한 기운이 남아 있는 3월의 오후, 광장종합복지관 강당. 신나는 댄스 음악이 가득한 이 곳에는 열기가 후끈하다. 젊은이들도 배우기 어렵다는 라틴 댄스를 파트너의 손을 잡고 열심히 따라 하는 이들 수강생은 대부분 70 전후의 노인들이다.

강사의 설명과 몸 동작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진지한 분위기는 여느 일반 강습장과 다를 바 없지만 5분 간격으로 웃음이 터진다. 박자가 틀려도 즐겁고, 용케 제대로 춤동작이 나와주면 즐겁다. 파트너와 다리가 엉키더라도 기본 스텝을 다 밟고 나면 박수와 환호가 쏟아진다.

"젊은 사람들에 비해 아무래도 배우는 건 더디지만 아주 흥겹게 춤을 추세요. 그야말로 춤추는 것. 배우는 것.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강사 진인화씨에 의하면 항아버지 할머니들의 의욕과 자세는 젊은이들 이상이라고 한다. 기체조를 배우다가 체조보다 훨씬 재미있을 것 같아 왔다는 박규자(64·여)씨는 "잘 따라하지 못해 선생님깨 너무 미안하다"며 10여분의 휴식 시간에도 연신 발을 놀려 스텝을 연습한다.


비로소 내 인생을 즐긴다

공무원으로 정년 퇴직한 우수찬(68) 할아버지는 몇 해 전부터 산악 자전거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처음엔 좀 힘에 부치는가 싶었는데 갈수록 몸이 젊어지는 것 같다"며 탄탄한 종아리를 잘아스레 내보인다. 장성해 가정을 이룬 아들들이 모시고 살겠다고 청해도 몸 성할때까지는 두 내외가 오붓하게 지내고 싶어 거절하고 있다는 우 할아버지는 "요즘 비로소 내 인생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실버 컴퓨터 교실에서 웹 서핑에 열중하고 있던 김기찬(72)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알고 나니 세상을 하나 더 얻은 듯한 기분이라며 친구들에게도 컴퓨터 배워볼 것을 적극 권한다고 한다. 김 할아버지는 "노년은 원숙하고 고요한 인생의 황금기"라는 키케로의 말을 인용하면서 "실버 세대라 하지말고 골드세대로 불러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노년이란 손자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쓸쓸히 인생을 정리해 가는 시기로 여겨졌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은 다소 억지스런 위안처럼 들렸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져야 하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만의 인생을 만끽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생긴 것이다.

게다가 노인들이 여가를 보낼만한 장소와 모임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난 것도 한몫을 한다.

"아주 많이 좋아졌지. 요즘엔 우리 같은 노인들이 심심할 새가 없어요. 새벽엔 공원에 모여 체조를 하지, 아침엔 노인정에 가서 같이 밥해 먹고 수다를 떨지, 오후엔 노래 교실이랑 영어 교실 다니드라 영감 얼굴 볼 시간도 제대로 없어." "세상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을 실감한다는 김일례(76)할머니는 "노래 교실 시간에 늦었다"며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선 노인정이 많이 생긴 후로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늘었다는 우스개가 있다고 한다. 함께 장을 봐서 밥을 해 먹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며느리 험담부터 자식 자랑, 고생한 이야기, 영감 할멈 흉까지 몽땅 뱉어내고 나면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돼 마음 속에 쌓일 게 없다는 이야기다.

할머니를 따라가 슬쩍 들여다본 노래 교실은 얌전히 자리에 앉아 옛 가락을 배우겠거니 했던 상상을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노래방 기계의 반주에 맞춰 최신가요를, 맵시있게 몸을 흔들어 가며 부르는 모습에선 노년의 우울이나 허전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노인 대상 복지 프로그램 많이 늘어

우리나라에도 65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를 넘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개인적 사회적으로 노인 복지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고 잇다.

정부주도의 복지 프로그램도 상당히 활성화해 2006년까지는 서울시내 모든 자치구에서 노인 종합 복지관이 들어 설 예정이다. 또 서울시가 다양한 프로그램과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시범 경로당도 지금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 노인종합복지관이 있는 구는 서초구 성북구 송파구 마포구 구로구 강서구 성동구 중랑구 등이며 시에서 직접운영하거나 복지 단체에서 운영한느 시설도 있다.

노인종합복지관이 없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일반 종합복지관에서 노인 대상의 프로그램을 개설해 두고 있어 누구나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아주 다양해 영어, 일어, 한문, 한글, 서예, 꽃꽃이, 요가, 기체조, 우리 춤, 댄스스포츠, 노래 교실, 컴퓨터, 당구, 수영, 게이트 볼, 동의보감, 발 마사지, 수지침 등 웬만한 문화센터 이상이다.

문화 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치매 노인이나 독거 노인을 돌봐 주거나 고령자 취업을 알선해 주는 곳도 있어 필요에 따라 짭짤한 도움을 받기도 한다.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뿐 아니라 노년의 건강한 생활에 관한 알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

입력시간 2003/04/09 13:2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