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별로 뜨는 계단 '붉은 카핏'

아카데미상과 백상예술대상으로 본 스타성과 수상의 의미

3월 24일과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각각 전쟁이 치러졌다.

스타들의 전쟁이다. 미국의 명분없는 전쟁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는 살육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세계 각국에는 전쟁을 막지 못한 무기력의 우울함과 정당성 없는 전쟁에 대한 분노의 암울함이 진하게 배어있다.

이런 가운데 오락과 영상이라는 창공에서 전쟁을 벌였던 스타들은 지난 1년간의 치열한 전투의 결과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스타들의 전쟁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어느 때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제75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뮤지컬 영화로는 1968년 '올리버'이후 35년만에 '시카고'가 작품상을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은 이라크 전쟁에 대한 경고라도 하듯 제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에서 살아 남은 폴란드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라프 스필먼의 실화를 다룬 '피아니스트'에서 열연한 애드리언 브로디가, 그리고 여우주연상은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뛰어난 외모변신과 내면 연기로 재현해 낸 호주 출신의 니컬 키드먼에게 돌아갔다.

감독상은 어린이 성 추행사건으로 미국에서 재판에 계류중인 '피아니스트'의 로만 폴란스킨 감독이 수상했다.

이틀 뒤인 2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한국일보와 일간스포츠가 주최한 3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열렸다.

텔레비젼 부문과 영화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된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대상에는 프로 도박사의 삶과 사랑을 그린 SBS 드라마 '올인'이, 작품상은 한 젊은이의 삶과 내면을 농밀하게 담아낸 드라마 '네멋대로 해라'가, 그리고 연출상은 무협사극 '대망'의 연출자 김종학PD가 수상했다.

TV최우수 연기자 남자부문은 '올인'의 이병헌이, 여자 부문은 '아내'의 김희애가 영광의 수상자가 됐고 신인 연기상은 '네멋대로 해라'의 양동근과 '명랑소녀 성공기'의 장나라가 차지했다.

영화부문에선 한 노인과 손자를 통해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담은 '집으로'가 대상을 차지했고 작품상은 장애인과 전과자 등 소외된 사람들의 사랑를 사실적으로 그린 '오아시스'가 받았으며 감독상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뒤 노무현 정부의 문화관광부장관으로 발탁된 '오아시스'의 이창동 감독이 수상했다.

최우수 연기상 남자는 '광복절 특사'의 차승원, 여자는 '결혼은 미친짓이다'의 엄정화가 받았으며, 신인 연기상은 '동갑내기 과외하기'의 권상우와 '클래식'의 손예진이 영광을 차지했다.

스타에게 있어 상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할리우드 스타들 중 상당수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되거나 수상하지 못하면 두려움을 느끼는 '오스카 신드롬'을 경험한다는 보고서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스타에게 있어 상의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지난해 7월 검찰의 방송계와 연예게 비리 수상에서 탤런트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하지원의 대종상 수상을 둘러싼 매니저 로비 의혹 수사 역시 이러한 측면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은 연예인에게 자신감의 근원

그렇다면 스타에게 있어 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명성(reputation)에 대한 인증이다.

상을 수상한 스타는 유명 브랜드나 KS마크가 일반 상품의 질을 보장하듯 소비할 만한 양질이라는 것을 보증 받는다. 대중 스타 중 스포츠 스타의 경우는 매니지먼트사의 조작과 이미지로 스타가 될 수 없다.

스포츠 선수의 스타로의 비상은 실력이 좌우한다. 선수의 실력은 조작이 불가능하며 오랜 훈련과 노력 그리고 재능이 어우러져 나타난다. 실력이 스타화의 관건이고 그 다음 이미지의 조작은 인기의 높낮이 정도만을 조절해 줄 뿐이다. 그래서 현대 스타 중 스포츠 스타가 진정한 스타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그렇지 않다. 연길겨이 출중한 배우나 탤런트가 꼭 스타가 되는 것은 아니며 역으로 연기력이 없어도 대중이 선호하는 이미지 하나로 스타로 부상할 수 있다. 우리가 이러한 현상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에서 수없이 목도 해왔다.

가창력이 뛰어나야 반드시 스타 가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춤과 외모만으로 스타로 부상하는 경우를 우리는 너무 자주 봐왔다. 매니지먼트사의 치밀한 스타화 전략과 대중매체의 호응, 이미지 조작 등만 으로 연기자와 가수는 스타로 비상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각종 방송, 영화, 가요 관련 시상은 스타들에게 연기자로, 가수로서 진정성을 부여해 스타성을 강화시켜준다.

스타의 재능과 자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준이 없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상은 그나마 공식적인 기준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수상에 대한 스타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탤런트중 MBC, KBS, SBS 등 방송 3사의 방송연기대상을 모두 차지한 유일한 연기자 고두심은 "상이 주는 영광보다는 중압감과 부담이 컸다. 하지만 내 연기인생에 상이라는 것이 연기력을 발전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연기자로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게 한 근원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상은 무명과 신인을 일거에 스타로 키우는 스타 생산기능을 한다. 무명에서 권위 있는 영화제나 가요제에서 수상하게 되면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고 스타로 도약하게 된다.

신인들이 상을 수상하면서 스타로 뜨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연기력을 있지만 대중성에게 떨어진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의 여주인공 문소리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신인 연기상을 거머쥐고 MBC영화상에서 여우주연사오가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대중적인 스타로 떠올랐다.

상은 무엇보다 상업적으로 치닫는 대중문화계와 이미지 조작으로 스타가 되는 풍토에서 연기력과 가창력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순기능적 역할도 한다. 각종 시상식에서는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일반인들의 맹목적인 스타에 대한 관심과 인기도 외에 연기력과 가창력을 수상 기준의 주요한 준거로 삼기 때문이다.

2000년 SBS연기대상에서는 '덕이'의 타이틀롤을 맡은 김현주와 덕이 어머니역을 한 고두심이 경합했다. 김현주는 인기도면에서 높았지만 카리스마 강한 캐릭터를 맡아 능수능란한 연기력으로 무장한 고두심이 대상에 선정됐다. 연기자에게 있어 연길겨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공신력과 객관성 담보돼야

스타에게 있어 상은 몸값 상승과 함께 흥행(시청률과 관객동원수) 담보라는 경제적 효과도 낳는다. 미국 영화학자 홀브루크는 1975년 1984년까지 미국에서 상영된 영화 500편의 매표 분석을 통해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우상, 최우수 여우상,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경제적 가치는 각각 660만달러, 700만달러, 그리고 790만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또한 수상자로 결정된 후 남우주연상 수상은 830만달러, 작품상은 2,700만달러의 흥행 상승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이는 20년전 결과이기에 현재의 시장 가치로 환산하면 아카데미상 수상이 초래하는 스타와 작품의 경제적 효과는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스타들이 받는 상은 권위가 있을 때만 상의 의미와 효과가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 영역에서의 상의 권위는 공신력과 객관성 그리고 영향력에서 판가름 난다. 주최측의 편파적인 입장이나 심사위원의 공정치 못한 심사 등은 상의 권위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상의 효과를 반감시킨다.

올해로 40회째를 맞는 대종상은 수상자 선정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잡음이 일고 있어 스스로 상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또한 방송 3사에서 수상하는 방송사별 연말 연기대상과 가수상은 시청률과 인기등만을 고려하는데다 젊은 신세대 스타들을 자사 방송에 출연 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략되거나 나눠먹기식 수상으로 상의 객관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상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원인은 연기자나 가수의 실력과 인기에 기대지 않고 편법이나 불법으로 소속 연예인을 수상 시키려는 에이전시나 매니지먼트사의 행위다. 톰 크루즈 등 다수의 연예인이 소속돼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자나 감독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휘두른 유명 에이전시 CAA(Creative Artist Agency)의 마이클 오비츠는 대표로 재직할 당시인 199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감독상 후보 전원을 CAA소속으로 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수상을 둘러싸고 잡음이 많았다.

대종상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각종 대중문화 영역의 시상에서도 매니지먼트사나 영화사의 과도한 로비와 압력이 끊임없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중문화 시장규모가 팽창하고 연예인을 지망하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수상을 위한 매니지먼트사들의 노력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방송사 연기대상을 둘러싸고 일부 메니저들은 상을 주지 않으면 방송사 드라마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까지 행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상은 스타를 더 빛나게 하는 기제이다. 하지만 잘못된 수상은 스타를 빛나게 하는 발광원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타의 빛을 빼앗는 폐광원 기능을 한다. 주최측, 매니지먼트사, 대중 모두 상이 상으로서 권위를 유지할 수 있고 수상이 스타의 영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상의 존재의미이니까.

입력시간 2003/04/0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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