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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수상하다

내각제 개헌설 모락모락, 이회창 정계복귀설도 뭉게뭉게

정치권에 신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출범한 지 1개월여 밖에 안된 시점이지만 벌써부터 내년 총선 결과를 둘러싼 정치 체제의 완전 개편 이야기가 피어 오르고 있다.

이런 정계 개편은 이전처럼 단순히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나 정당간의 합종연행이 아닌 현행 대통령 중심의 권력지도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개헌급 시나리오’에 해당돼 정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여야가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전부터 정계개편설은 막강한 힘을 가진 여권이 ‘세 불리기’를 위해 시도되거나 아니면 정권창출에 실패한 야권에서 자당 추스리기를 위한 애드벌룬 성 카드로 곧잘 이용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집권 여당은 소수 당이면서 그나마 신ㆍ구 주류로 나뉜 상태여서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봐줄만한 수의 정치를 펼칠 수 없다.

야당도 그렇다. 절대 과반수 정당이면서도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은퇴이후 노-장-청으로 나뉘어 사분오열 상태다. 사안에 따라 제 각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년이나 남은 내년 총선 공천에 따른 후유증을 걱정하는 이가 있을 정도. 여야가 공히 위기 아닌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정계개편설이라 힘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호탄은 노 대통령이 먼저 쏘아 올렸다.

노 대통령은 4월2일 국회 첫 국정연설에서 취임 후 다듬어온 개혁 프로그램의 일단을 밝히면서 지역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의 개혁을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지역구도를 이대로 두고는 정치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에서 3분의 2 이상 의석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선거법을 개정해 달라”고 정치권의 선거법 개정을 주문했다. 그는 “내년 총선에서 이런 제안이 현실화되면 과반수의 정당 또는 정치연합에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며 “이는 대통령 권한의 절반 이상을 양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의 이런 구상은 당선자 시절인 지난해 12월23일 처음 밝힌 이후 “적절한 시기에 정치권에 제안하겠다”고 말해 왔는데 첫 국정연설을 그 계기로 삼은 것이다. 노 대통령의 함의와는 상관없이 표면적으로 본다면 다수당에 내각 구성권을 넘기겠다는 뜻이다. 이론적으로는 준 내각제 형태의 연립정부도 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민주당과 자민련에서는 당연히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의외로 한나라당의 반응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듯 했다.


하순봉 최고위원, 내각제 개헌 공론화 의도?

한나라당은 표면적으로 “인위적인 정계개편 의도가 엿보이는 발언”이라며 깎아 내리기에 바빴지만 한편으로는 “과반만 차지한다면 사실상 집권한다는 얘기도 되는 것 아니냐”는 묘한 반응을 보였다.

먼저 박상웅 부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노 대통령이 입만 열면 부르짖는 정치개혁은 실제로는 총선 전략에 불과하다”며 “중 대선거구제로 바꾼다 해도 선거 비용이 소선거구제보다 훨씬 많이 들어 개혁이 아닌 개악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내년 총선에서 호남은 싹쓸이하되 영남의 일부 의석은 건질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흠집내기에 열을 올렸다. 또 다수당의 내각 구성권과 관련, “노 대통령은 민주당이 다음 총선에서 못 이기면 ‘반(半)통령’이 된다며 총선 승리의 조급증을 드러낸 바 있다”며 “무슨 수를 쓰더라도 총선에서 승리하라는 민주당에 대한 독려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공식적으로는 노 대통령의 정치개혁프로그램 전반을 거부하고 나섰다. 하지만 다음날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하순봉 최고위원은 대표연설에서 “권력집중의 폐해를 막고 국정 혼란과 국론 분열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 기본 틀과 제도를 모색해야 한다”고 권력구조 개편론을 들고 나오면서 묘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는 전날 노 대통령의 정치권력 변화 언급과 궤를 같이 하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자민련은 당연히 “하순봉 최고위원의 주장을 높이 평가하며 환영한다”며 “노 대통령의 연설에 이어 이틀 연속 당론과 합치되는 발언이었다”고 희색을 띄었다.

하 최고위원은 연설에서 "권력집중의 폐해를 막고 국정 혼란과 국론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모색할 때"라며 "지난 헌정 반세기를 진지하게 되돌아보면서 백년대계를 내다보는 국가 기본 틀을 새롭게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내각제 개헌의 공론화 의도로 해석됐지만 하 위원은 "있는 그대로 해석해 달라. 내각제 개헌 같은 특정 개념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니다"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미다"라고 말했다. 딱히 내각제를 겨냥한 것은 아니지만, 권력구조 개편 논의과정에서 내각제도 검토대상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담겨있다.


왕당파들의 이회창 재옹립 의도?

사실 한나라당 내에선 내각제 개헌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상당한 세를 갖고 잠복해 있다. 하 위원의 연설도 이런 목소리를 대변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특히 하 위원은 연설문중 유독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한 대목만 연설문팀과 사전 상의없이 전날밤 직접 집어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측근은 "노 대통령이 국회 국정연설을 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집중 부각시켰기에 제한없는 논의를 통해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인 의견은 내각제 개헌 공론화 시도라는 점에 모아진다. 두차례 대선 패배에 따른 허탈감을 달래고 구심점을 잃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하나로 묶어 놓을 절호의 카드가 내각제라는 해석에서다.

더구나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이 3월26일 “낭비적 정치를 청산하기 위해 이원집정제나 내각제로 국가권력 구조를 분권화해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노 대통령도 국회연설에서 우회적인 뜻을 비친 터라 더욱 당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하 위원의 연설내용을 놓고 일부 소장파 의원을 중심으로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심재철 의원은 성명을 내고 “하 최고위원은 ‘새로운 제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히 밝혀야 하나 현재의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개헌 제안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의 입장이 없는데 대표연설 기회를 빌어 개인 의견을 당을 대표하는 의견인 것처럼 비치게 만든 것은 권한 남용”이라며 “미래연대 차원에서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쏘아 부쳤다.

당 지도부는 즉시 파문진화에 나섰다. 김영일 사무총장은 “순전히 하 최고위원 개인의 발언일 뿐 당론을 모아 공격적으로 내각제 개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혁 소장파 의원들은 “내각제는 정치개혁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발상”이라고 비난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소장파를 비롯한 당내 개혁세력들이 내각제 의도를 싹부터 자르겠다는 태도를 보인 이면에는 민정계가 주동이 된 내각제 개헌론이 곧 이회창 전 총재의 측근인 이른바 ‘왕당파’들의 이 전 총재 재 옹립과 연결돼 있을 것이란 의심에서다. 그만큼 당이 대선 패배이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러니 전당대회를 통한 새 지도부 구성이 코앞인데도 “차라리 창(昌)이 다시 오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단순히 왕당파들의 공작 만으로 치부할 것도 아니다.


당의 혼란상 가중될수록 昌 복귀 여지 커져

일각의 얘기대로 내각제 개헌이 추진된다고 해서 무조건 이회창 전 총재의 정계복귀와 맥이 닿는 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 정계은퇴를 선언한 이 전 총재의 복귀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성숙돼야 가능하다. 물론 내각제 개헌 이야기도 그 조건 중 하나인 것은 틀림없다.

첫째 지금과 같은 당의 혼란상이 가중돼 구심점 없는 파행 운영이 계속될 경우. 총선의 패배가 불보듯 훤해져 당의 존립여부마저 걱정될 때란 것이다. 둘째 이 전 총재가 나설 경우 당의 안정과 단결을 가져와 총선에서의 압승이 담보될 때다. 이 경우 노 대통령이 언급한 정국 주도권 이양 약속이 지켜질 것이란 가정아래서다.

끝으로 노 정권과 민주당의 ‘헛스윙’ 여부도 주요 관건이다. 파병문제와 KBS 사장 인선 등의 문제를 둘러싸고 노 대통령은 집권이후 최악의 날을 운운할 정도로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올라 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신ㆍ구주류로 나뉘어 있는 분열상은 갈수록 간극만 넓어지는 양상이다. 이미 분당을 각오하는 듯 하다. 이런 식으로 노 정권의 국민 인기가 시들어지고 민주당 지도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외면받을 때 가능하다.

그가 국민을 찾아오는 형식이 아닌 국민이 그를 부를 때여야 만이 왕당파들이 바라는 복귀 시나리오가 완성될 수 있다. 이렇듯 산술적으로 보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편인 데도 이 전 총재의 복귀 이야기는 괴담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그가 남기고 간 구멍의 크기가 너무 큰 탓이 아니다. 그만큼 현 정권과 한나라당에서 스스로 이 전 총재의 복귀 여지를 계속해서 주고 있어서다. 그렇기 때문에 한 의원의 발언에 이렇게 당 전체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현재 이 전 총재 측근들은 정계복귀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며 부정한다. 아니 조기 귀국설만 나와도 펄쩍 뛰는 수준이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 많은 이들은 이 전 총재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고 그 시기는 내년 총선의 승리를 정조준하는 시기가 될 것이란 분석이다. 가을 귀국설이 슬며시 고개를 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3/04/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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