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론분열 부른 한미동맹 덫

"명분없는 전쟁" "낙선운동"여론 불구, 파병안 통과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이 4월2일 국회에서 표결로 통과됐다. 두 차례나 처리가 연기되고 파병 찬반시위로 국론분열 양상까지 겪는 등 우여곡절 끝에 통과됐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는 파병안에 찬성 표를 던진 국회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으름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 등은 파병결정 취소를 구하는 헌법소원 및 파병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상태다.

종교계를 포함해 각 시민단체 노조단체 등은 연일 파병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대학가에서도 교수진이 가세한 가운데 동맹파업을 결의하는 등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병 반대 및 반전시위가 계속되자 4월3일 “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시는 존중한다”면서도 비서진에게는 “외교적으로 동맹국에 심각한 결례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주문했다. 심정적으로는 파병동의안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대의 입장은 이해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국익을 위한 결정이란 점을 우회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어쨌든 파병 결정으로 껄끄러웠던 대미 관계는 한결 부드러워 진 것은 사실이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4월4일 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파병 결정에 감사를 표하며 덤으로 북핵문제는 반드시 외교적인 방법으로 평화 해결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가뜩이나 외교문제에서는 ‘초보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듣던 노 정권 입장에서 볼 때는 든든한 원군을 얻은 셈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자신의 기대대로 파병 결정이 양국간 동맹관계의 공고화로 나타나고 있어 통화 내용에 상당히 흡족해 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이런 ‘실익’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신격인 노사모가 앞장서 반전을 위한 국토순례에 나서는 등 각 단체별 반전집회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노 대통령이 앞에서는 파병을 결정하고 뒤로는 지지 세력들이 반대에 나서도록 방임해 외부적 실익과 내부적 개혁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이중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이런 이중적 처신으로 국론이 심각하게 분열되는 상처만 남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親盧 신주류 대거 반대표 던져

파병안에 반대 표를 던진 의원은 총 68명. 이중 43명이 여당인 민주당이었고 특히 노 대통령 측근인 신주류가 대거 반대편에 섰다. 노 대통령이 표결에 앞서 국회연설을 통해 파병의 당위성을 설명했지만 같은 편부터 등을 돌린 것.

김원기 정대철 정동영 추미애 의원 등 극소수만이 찬성했을 뿐 신주류 핵심인 천정배 신기남 이해찬 이호웅 신계륜 이미경 의원 등과 송영길 임종석 오영식 의원 등 386세대 의원들이 반대 표를 던졌다. 평화ㆍ반전의원 모임 소속 의원들은 표결 후 “인류를 향한 사랑의 대열에 함께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국회가 평화를 버리고 전쟁의 길을 선택한 치욕의 날”이라고 정의했다.

네티즌들의 의견도 빗발치고 있다. 찬반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세는 파병동의안 반대에 맞춰져 있다. “노 대통령이 미국에 이용만 당하고 결국은 토사구팽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는 우려 섞인 글에서 “찬성도 반대도 다 소중한 국민의 의견이지만 실리를 통해 우리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찬성 의견까지 나오지만 파병 결정에 대한 실망의 목소리가 더 크다.

“파병은 북핵 문제를 더 어렵게 몰고 간다” “노 대통령은 한국을 전범국의 동조국으로 만들지 말라”는 파병 반대 주장에서 “노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의 상당수는 명분과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데 더 이상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정당성을 상실한 정부가 성공한다면 독재가 다음 수순”이라며 노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글도 상당수 올라 왔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찬성의원 49명대 반대의원 43명이란 숫자가 말해주듯 대통령이 천명한 정책 결정에 당론마저 결집되지 않는 양상이다.

이에 한나라당이 노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박종희 대변인은 “아직 시민단체와 학생들이 낙선운동이나 동맹휴학을 주장하는 등 국론이 치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파병을 반대하는 세력을 설득하는 식의 국민화합, 국론통일 노력을 거듭 촉구한다”고 공박했다.

한편 북한은 조선중앙TV의 시사해설을 통해 “남한이 이라크 전에 군대를 보내는 것은 조선반도 정세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범죄행위”라고 규정하면서 “남측의 파병반대 움직임은 의로운 애국적 진출”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찬ㆍ반 의원 모두가 소신 결정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국회 표결 이전부터 주장해온 파병 찬성 의원들에 대한 낙선운동을 강행하겠다고 거듭 천명했다. 물론 총선이 1년 후의 일이고 이라크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찬성표를 던진 179명 모두를 겨냥한 낙선운동이 벌어질 것이라고 보는 이는 적다. 하지만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노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 아래 파병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반전의 명분론보다 국익의 현실론이 우선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노 대통령 반대편인 한나라당에서 참석 의원의 80%가 넘는 찬성 표가 나와 절반에 그친 민주당 찬성표를 합해 통과됐다.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표로서 생사가 결정된다. 인기가 떨어지면 정치적 운명도 끝이 난다. 더구나 낙선운동 대상자에 오른다면 차기 총선의 당선도 어렵게 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것도 노 대통령 반대편에서 찬성표가 나왔다. 이를 놓고 악의적으로 보는 이들은 ‘친미 의원’ ‘전쟁파’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과연 그런가.

유권자를 의식했다면 오히려 야당 측에서 반대표를 던져야 했고, 낙선운동을 감안한다면 더 더욱 파병반대에 나서야 했다. 역설적으로 보면 차라리 파병 반대쪽에 선 의원들이 유권자를 의식한 명분 찾기에 급급했다고도 볼 수 있는 사안이다.

기권이나 불참한 23명의 의원들은 기회주의적 행동으로 간주할 수도 있다. 물론 파병 찬성과 반대, 기권 의원들에게는 각자 나름의 소신이 있고 국익을 계산한 행동이다. 되돌아봐야 할 심각한 문제는 이런 시각 차가 국론분열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 대통령은 ‘전략적 선택’을 강조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의 파병반대에도 긍정적인 의사표시를 했다. 여기에 민주당의 일부 신주류 의원들은 “파병반대가 노 대통령을 돕는 길”이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래서야 민감한 사안에 대한 국론통합을 기대하기 어렵다. 파병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논란마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국민통합을 이끌어 내야 할 노 대통령의 확고한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2003/04/10 11:42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