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 이라크 자폭공격으로 결사항전

조기종전론 다시 부각, 전후 복구사업 놓고'파이'다툼

이라크 전쟁이 결정적 국면에 들어섰다.

미군은 4월4일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의 격렬한 저항을 물리치고 바그다드 외곽 사담 국제공항을 점령한데 이어 이튿날 전격적으로 바그다드 시내에 진입했다. 그후 바그다드 중심부로까지 진입 반경을 확대하려는 미군의 진격은 일상사가 됐고 바그다드 함락이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조기 종전론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전쟁 이후 이라크라는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놓고 미국, 영국 등 참전국과 전쟁 반대 강대국들간의 반목과 갈등도 심화하고 있다.

피를 흘리지 않는 국가들과는 ‘빵 한조각’도 나눌 수 없다는 미국의 논리는 이번 전쟁이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고, 대량살상무기를 사전에 제거한다는 미국의 개전 명분을 반추하게 만들고 있다.


전격적인 바그다드 시내 진입

5일 아침(현지시간) 미 보병 3사단 선봉부대는 공군의 폭격 지원을 받으면서 에이브럼스 탱크 40대와 브래들리 장갑차 60여대를 앞세워 힐라대로를 따라 바그다드 시내로 진격했다. ‘우레 진격작전’의 시작이었다.

미군 선봉부대가 바그다드 외곽에 도착한 지 24시간도 채 안돼 이뤄진 전격적인 진입이었다. 특히 전날 리처드 마이어스 미 합참의장이 바그다드 진입 시기와 관련 “여러 선택안이 있을 수 있고 인구 500만명이 넘는 도시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경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연막을 친 터여서 세계는 더욱 놀랐다.

진격이 전격적이었던 만큼 퇴각도 전격적이었다. 시내 진입을 지휘했던 에릭 슈워츠 중령은 “전차가 시내 중심부로부터 10㎞ 떨어진 지점에 다달았을 때 잠시도 멈추지 않고 곧 바로 퇴각, 3시간 동안의 드라마를 끝냈다”고 말했다.

바그다드를 서울로 비유한다면 과천에서 남태령을 넘은 뒤 되돌아간 것이다.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다. 미 중부사령부는 “미영 연합군이 바그다드에 왔다는 느낌표를 찍어 주고 이라크 지휘부가 더 이상 바그다드를 장악하지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고 자평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전이 ▦미군이 문턱까지 진입했음을 바그다드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심리전 ▦이라크 군의 전열을 살피기 위한 탐색전 ▦전면적인 진입전의 예비전 등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미군 진입 후 바그다드를 탈출하려는 시민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군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후 미군은 바그다드 외곽과 시내를 들락거리면서 완전 함락의 기회를 엿보는 작전을 지속하고 있다.


드러나는 바그다드 함락 작전

바그다드 진격이 적의 의표를 찔렀듯이 미군의 바그다드 함락 작전도 군사 전문가들과 이라크측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군의 함락 전술로 ▦장기적 포위작전 전개 뒤 항복 및 민중봉기 유도 ▦주요 거점 확보를 통한 점진적 점령 ▦전격적인 전면적 진입 등을 미리 꼽았었다. 하지만 미군은 이런 방식을 모두 배합하는 방식을 취했다.

미국은 전격 진입을 통해 강한 심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장기 포위작전에 버금가는 심리적 성과를 거두었고, 시내 거점 확보를 통해 이 같은 심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저항이 약해진다면 언제든 시내 중심부를 완전 장악한다는 가능성마저 열어두고 있다. 교도통신은 이를 ‘단계적’ 점령작전으로 규정했다.

미국의 이런 작전은 단기전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군사적 목표를 동시에 감안해 내놓은 고육지책이라고 봐야 한다. 군사적으로 볼 때 장기 포위전을 통해 이라크 군 지휘부를 고사시키고, 미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미군에게 최상책이다.

하지만 전쟁을 오랜 끈다면 미 지도부는 국내외 반전 여론에 몰리는 것은 물론 경제 불황을 감수해야 할 처지이다. 결국 미군은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바그다드를 조금씩 점령해 나가는 점진적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가전, 가장 비열한 전투

군사 전문가들은 이렇게 막이 오른 시가전을 비좁은 공중전화 부스에서 두 사람이 칼을 들고 싸우는 것에 비유한다. 시가전에서는 쌍방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승패를 떠나 교전 양측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시가전의 잔인성은 애꿎은 민간인 피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미군은 5일 시가전에서 이라크 군인과 민명대원 1,000명 이상을 죽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중 상당수는 민간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진격에 참여했던 미군 장병들이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모든 이라크 차량에 대해 무조건 사격을 가했고 가로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고 진술하는 것으로 보아 이 추측은 단순한 예단이 아닐 것이다.

이라크 특수공화국 수비대와 민병대원들이 민간인 복장을 한 채 전투에 임해 이라크 군의 식별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5일의 비극은 종전까지 지속될 것이다.

단계적 점령작전을 구사하는 미군은 시내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시가전을 벌이지 않고 시내를 구획별로 나눠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USA투데이지는 ‘이스라엘식 작전’을 상기시키고 있다. 테러 용의자 체포를 명목으로 압도적인 화력을 앞세우고 가자, 요르단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침투해 싹쓸이식 시가전을 벌이는 이스라엘식 전술을 말한다.

미 해병대가 6개월 전부터 이스라엘로부터 이런 전법을 전수 받았다는 얘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런 방식은 전면적 시가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다량의 인명 손실 가능성과 작전의 실패 위험성을 동시에 줄일 수 있다. 미군에게는 1968년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에서 전면적인 시가전을 벌여 병사 400명을 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러시아군 10만명이 1994년 분리독립을 주장하던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포위하고서도 전면적인 시가전에서 패배했던 시가전의 의외성도 무시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일사천리로 진군했던 미군이 바그다드에서는 자살 공격 등 전혀 다른 유형의 전투 상황에 맞부딪치면서 1만명의 특수공화국 수비대, 6,000여명의 보안대, 민병대와 게릴라들에게 고전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조기 종전 가능성

시가전 국면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옴에 따라 미국과 세계는 조기종전론에 들뜨고 있다. 미국이 6주~10주내 끝낼 수 있다는 낙관론이 퍼지면서 제일 먼저 세계 증시가 들썩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해방이 다가오고 있다”며 조기 종전론에 기름을 부었다.

연합군 보급문제, 예상치 못했던 완강한 이라크 민병대의 저항으로 장기전의 우려가 짙었던 지난 주 상황과는 딴판이다.

여기에는 예상보다 쉽사리 무너진 공화국 수비대의 방어선이 있다. 바그다드 외곽 진입이 용이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공화국 수비대의 진지는 미군의 파상 공습에 쉽게 뚫렸다. 바그다드 시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진행될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80년대 이란-이라크전, 90년대의 유엔의 경제제재로 무력해질대로 무력해진 이라크 국세와 비례해 군사력도 크게 약해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사정이 이렇자 부시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도가 70%를 뛰어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WMD)를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이라크전은 정당한 전쟁이라고 답한 국민도 3분의 2를 넘어섰다. 단기전으로 끝날 경우 미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장밋빛 전망이 월 스트리트에서 나오자 미국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침 흘리는 강대국

전쟁의 포연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라크의 전후 처리문제를 놓고 전쟁 참여국과 비참여국간, 또 전쟁 참여국간에 힘겨루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미 하원은 4일 이라크 전후 복구 사업이 포함된 800억 달러의 전쟁 예산을 통과시키면서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반전국들이 미국 주관 복구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 봉쇄했다. 함께 피를 흘리지 않는 국가들과 전리품을 나누지 않겠다는 속내다.

전후 복구사업과 전후 이라크 통치 문제에서 미국의 헤게모니를 강하게 주장하는 쪽을 미 국방부와 백악관내 매파들이다.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보좌관은 “생명과 피를 바친 국가들이 이라크 전후 처리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선언했다.

대 유럽 관계 등을 감안해 어느 정도 전쟁 비당사국의 참여를 보장해 주려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물론 유엔을 통한 이라크 전후 복구를 주장하는 프랑스 등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은 것이다.

미국은 본질적으로 미군정기구인 이라크 임시(과도) 정부를 세운 뒤 이 기구를 통해 전후 처리를 주도한 뒤 이라크 차기 정권을 수립하는 모양새를 고집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남부 움카스르에 하루 속히 ‘전후 이라크 재건과 인도적 지원’(ORHA) 책임자 제임스 가너 예비역 중장을 수장으로 하는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종전 후 이라크 유전을 미국이 독점 관리하겠다는 패권적 발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독일 등은 “이라크는 파이가 아니다”라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유엔을 통한 ‘동일한 기회’를 강조하고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미영 연합군의 승리를 지지한다”면서 “종전 후 이라크에 유엔평화유지군이 파견될 경우 독일군의 참여를 희망한다”고 노골적인 손짓을 보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벌어진 프랑스 북부 소재 2차 대전 영국군 전사자 묘지 훼손 사건과 관련해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프랑스의 뜻은 이라크의 영국군과 함께 한다”고 듣기 민망한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반전 국가들의 이런 희망사항이 미국과 영국에 의해 수용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영국 재계가 벌써부터 흘린 피에 상응하는 전후 복구 사업 참여를 미국에 요구하는 상황에서 비참전국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는 좀처럼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전후 처리를 둘러싼 움직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와 이라크 국민의 해방이라는 연합군의 개전 명분을 곱씹도록 해줄 뿐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반전 강대국들의 이중성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

이영섭기자

입력시간 2003/04/10 13:40


이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