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되어 살다 간 목마른 삶

장국영 충격적 자살, 정신적 중압감에 휘둘리는 스타들

계절의 모반이었다. 찬란한 지상의 스타는 하늘의 별이 됐다. 탄생의 계절인 봄날에. 일생에 단 한번 죽을 때에만 땅에 내려앉는다는 발 없는 새에 대한 영화(아비정전)에서의 그의 대사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죽어서만 한번 갈 수 있는 하늘로의 비상을 꾀했다.

장궈롱(張國榮) 그의 나이 마흔 여섯. 1일 오후 7시 6분 홍콩 중심가의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그는 한 장의 메모지를 남긴 채 투신했다. 지난해 주연한 영화 ‘이도공간(異度空間)’에서 그가 맡은 빌딩 옥상에서 자살하는 정신과의사처럼.

1956년 9월, 홍콩의 직물왕으로 불리며 윌리엄 홀덴, 알프레드 히치콕 등 유명 인사들의 옷을 만든 유명 재단사의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1976년 홍콩 ATV주최 아시아 뮤직 콘테스트에서 수상하며 연예계와 인연을 맺었다.

1978년 ‘홍루춘상춘(紅樓春上春)’으로 영화배우로 선을 보인 뒤 영화와 TV를 가로지르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러다 그는 아시아뿐만 아니라 미국을 진동시킨 홍콩 느와르의 진수라는 우이썬(吳宇森)감독의 ‘영웅본색’(1985년)에 출연하며 장궈롱이라는 이름을 스타의 등가물로 환치시켰다.


현실이 된 동성과의 사랑과 갈등

‘천녀유혼’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순박한 청년으로 나와 지순한 사랑의 표상으로, 왕자웨이(王家衛) 감독과 작업한 ‘아비정전’에선 친어머니를 찾으려는 냉소적인 젊은이로 나와 음울함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의 실제의 삶과 사랑에서 분리될 수 없는 ‘패왕별희’와 ‘해피투게더’에서는 시대를 달리하며 한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로 농밀한 감정을 표출했다. 그는 그렇게 성별과 나이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미지로 홍콩뿐만 아니라 국내의 팬들에게 그의 존재를 각인 시키며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그의 지상과의 마지막 결별은 지상에 남은 이들에게 충격과 슬픔이었다. 그와의 이별에 대한 팬들의 충격과 슬픔의 표현은 그에 대한 사랑과 비례해 홍콩과 국내를 가로지르며 나타나고 있다. 그가 작별을 고한 오리엔탈 호텔 앞에는 ‘천당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기를! 영원히 사랑해요!’를 가슴속으로 외치는 수많은 팬들의 애도의 추모 물결이 거대한 파도를 이루고, 그의 인터넷 사이트에는 추모의 글들이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다.

홍콩 시민들에게는 괴질로 인한 공황상태나 살육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이라크 전쟁보다도 장궈롱의 자살이 진한 슬픔으로 다가가고 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의 자살기사를 보며 만우절에 나온 해프닝이었으면 한다는 10대 소녀의 소박한 바람에서 그의 죽음을 알고 한나절을 울었다는 중년 여성의 아린 고백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가 그의 죽음에 슬픔을 표시했다. 또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선 최고의 검색어인 이라크전쟁을 앞지르며 장궈롱의 검색 건수가 최고를 기록했다.

이제 사람들과 언론은 자살을 몰고 온 원인에 대해 관심을 쏟고 있다. 구구한 추측들이 난무한 가운데 메모지에 남긴 유서가 그의 자살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다. “한 명의 20대 청년을 알았다. 그와 탕탕(唐唐)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몰라서 아주 괴롭다. 그래서 자살하려 한다(認識一位二十歲靑年, 在他與 ‘唐唐’ 間不知道如何選擇才好, 十分困難, 所以要自殺)”

이 때문에 동성애의 삼각관계로 인한 고민이 자살의 동기였을 것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장궈롱은 2000년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양성애자였음을 밝힌 바 있고 유서에 나온 탕탕과 17년간 사랑을 나눠왔기에 애정으로 인한 갈등으로 자살을 했을 것이라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자살유혹에 노출된 스타들

하지만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의 자살에는 한가지로 추정할 수 없는 다양한 원인이 잠재해 있다. 그들은 일반인보다 더 많은 자살 유혹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스타의 자살은 걷잡을 수 없는 파장을 몰고 오기도 한다.

1998년 5월 국내에도 엄청난 팬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제는 전설이 돼버린 일본의 록그룹 X저팬의 기타리스트 히데는 목을 매 자살을 했다. 그리고 1994년 4월 얼터너티브 록그룹 ‘너바나’의 리드싱어 커트 코베인은 한발의 총성과 함께 세상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고아였고, 가난했으며, 양아버지에게 강간당한 불우한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세계적으로 사랑 받고 갈채 받은 세기의 연인, 슈퍼스타 마릴린 먼로는 1962년 자살과 타살의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싸늘한 시체가 됐다.

스크린에서 인종차별의 벽을 넘으며 흑인 최초로 아카데미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1955년)에 오르며 완벽한 흑인 여성의 이상형으로 떠오른 도로시 댄드리지는 먼로의 뒤를 이어 1965년 할리우드의 한 호텔에서 자살했다.

영화 ‘모로코’ 주연 등으로 1930~1940년대 스크린의 여왕으로 군림했던 마를렌 디트리히와 1930년대 중국의 그레타 가르보로 명성을 얻은 롼링위(玩玲玉)는 수면제로, 1986년 일본 열도를 충격으로 휩싸이게 한 10대 아이돌 스타 오카다 유키코는 건물에서 투신으로 각각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자살한 스타는 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해탄 격랑(玄海灘 激浪)에 청년남녀(靑年男女)의 정사(情死)-극작가와 음악가가 한 떨기 꽃이 되야 세상시비 버려두고 끝없는 물나라로’라는 1926년 8월 5일자 한 일간지 기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사의 찬미’로 대중에게 스타 가수로 떠오른 윤심덕.

그녀는 기사의 내용처럼 자신의 몸을 바다에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995년 11월 듀스의 멤버였던 김성재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1996년 1월 1일 ‘또 다른 사랑’으로 10대 소녀 팬들의 인기를 얻었던 가수 서지원이 자살했다. 또 그 두달 뒤에는 ‘일어나’ ‘서른 즈음에’ ‘광야에서’ 등으로 대학생 등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에서 폭넓은 사랑을 받은 김광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장궈롱을 비롯한 이들 스타의 자살은 한가지 원인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실연, 흥행 실패와 인기의 급락, 예술적 한계 등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한 유명해지면서 허무감도 더하고 정신적 에너지를 발산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솟아나 그것을 해소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는 정신의학적인 진단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이미지와 실제 삶의 괴리로 인한 문제가 가장 크다. 스타는 개성과 사생활, 그리고 극중 캐릭터나 노래 등으로 대중매체에서 구축된 이미지로 존재한다. 스타의 이미지는 또 하나의 공적인 실체(persona)로 수많은 대중의 이상적인 모델이나 꿈의 원형이 된다. 스타는 그 이미지로 살아가기를 강요 당한다. 그것이 스타의 존재 의미이자 숙명이기에.


인기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

하지만 스타의 삶과 이미지는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괴리는 스타가 지고가야 할 짐이자 부담이다.

최근 들어 산업적 이윤창출을 꾀하는 문화산업의 발달로 스타를 조작해내는 스타 시스템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스타가 이윤 창출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현상이 가속화해 스타 이미지와 실제 생활의 간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어떤 이는 발전적으로 그 괴리를 메우지만 어떤 스타는 약물과 알코올로, 그리고 스캔들로 그 간극을 메우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자살로 끝을 맺는 스타도 있다. 스타덤에 오른 대가는 이처럼 가혹하다.

다양한 원인으로 극단의 자살을 택한 스타는 팬들에게 엄청난 감정의 파장을 일으킨다. 특히 자신과 스타를 동일시하는 등 삶의 존재 의미이자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스타는 팬들에게 꿈과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기제로, 어려운 현실의 도피 수단으로, 성적 대상으로 그리고 인격 형성의 선도자로 다가간다. 팬들이 스타에게 보내는 반응은 단순한 감정적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에서부터 자신의 전부를 걸며 투사하는 스타숭배까지 다양한 층위를 갖고 있다. 이처럼 팬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스타의 부재는 많은 이들에게 정신적 공황을 초래하며 극단적 행동을 취하게 하기도 한다.

1986년 열여덟살의 스타 오카다 유키코가 자살한 뒤 2주동안 31명의 청소년들이 투신자살을 해 일본열도는 경악에 휩싸였다. 또한 X저팬의 멤버 히데가 죽었을 때에는 3명의 팬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장례식장에서는 120여명의 팬들이 실신을 하고 이중 20여명이 입원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러한 자살소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X저팬의 멤버들이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팬들이 자살하면 가장 슬퍼할 사람은 히데”라며 자살하지 말라고 호소했으며 도쿄에서는 중ㆍ고교 교사들에게 학생들에게 타일러 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이 내려가기도 했다.

이제 장궈롱은 갔다. 그가 남긴 영화와 노래에서 그의 이미지를 만나며 체취를 맡아야 한다. 그리고 그는 오래도록 팬들의 가슴에 남을 것이다. 장궈롱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그가 주연한 ‘해피투게더’를 보며 지상에서 누리지 못한 안식을 하늘에서 누리며 오랫동안 대중의 정서에 거름이 될 하늘의 스타로 남아있기를 빌어본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4/11 10:2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