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타자에 의해 잃어버린 주체

■ 제목 : 무제 #193 (Untitled #193)
■ 작가 : 신디 셔먼 (Cindy Sherman)
■ 종류 : 컬러 사진
■ 크기 : 160cm x  106.5cm
■ 제작년도 : 1989년
살다 보면 자신이 원치 않아도 해야 하는 일에 직면하는 경우가 많다. 본인이나 가족의 장래, 또는 사회의 이익을 위해 도움 되는 일이라면 아름다운 희생이 되겠지만 삶과 함께 필연적인 듯 동반되는 이유 있는 희생이 모두 바람직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는 적응하는 사람에겐 관습과 규율이 되고 저항하는 사람은 아웃사이더가 되는 모순과 편치 않은 타협으로 일관된 현시대의 단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예술의 형식적 요소를 무시하고 작품의 사물성에 집착하거나 작품 자체의 형식성 보다 그것이 가진 작가의 개념을 중시하는 경향으로 시작된 포스트 모더니즘 예술은 다원화된 현대의 정서가 반영된 것으로 뭐라 한계 지을 수 없는 영역에서 그들의 변화무쌍함에 자못 자부심을 가진 듯 활개를 치고 있다.

그와 같은 움직임에 크게 역량을 펼친 미국 사진 작가 신디 셔먼은 B급 영화 장면을 연상시키는 스틸 장면을 연출하고 모두 스스로 주인공이 되어 수 많은 무제 작품을 찍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 한 것과 같이 정숙하거나 섹시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과 동시에 그것을 사회구조에 의해 강요 받는 답답한 느낌에 대해 남성의 시각에 비춰진 여성의 이미지를 페미니스트의 입장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이는 현실 속의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이 외면된 채 남성과 사회, 혹은 그렇게 얼룩진 역사에 의해 이끌려온 스테레오 타입의 정형화된 모습을 띠고 있다.

성모 마리아에서 요부로 때로는 귀족에서 노동 계급 여성으로 신디 셔먼이 스스로 가장한 이미지들은 규범화된 모범적 여성에서 유혹하는 타락한 여성에 이르기까지 타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상실된 주체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직관으로 파편화된 여성의 형상을 신선하게 창조해내는 신디 셔먼의 뛰어난 재능은 본인의 희망대로 그저 평범한 사진작가가 아닌 예술가로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입력시간 2003/04/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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