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 쏟는 오피스텔 시장

공급과잉에 양도세 부과·경기침체로 임대·분양시장 '한파'

저그림 태풍이 본격적으로 몰아치기 시작한 2001년 봄. 최고의 투자처로 각광받았던 것은 부동산, 그 중에서도 오피스텔이었다. 분양 후 임대 사업을 통해 시중 금리의 3~4배에 달하는 고정 수입을 올리려는 투자자들이 몰려든 때문이었다.

인천공항 업무단지 내 W오피스텔은 분양 3일째 100% 소화됐고, 경기 일산의 O오피스텔, 종로구 적선동의 P오피스텔 등도 2~3일만에 분양을 완료했다. 분양 몇 개월뒤에 프리미엄이 수천만원에 달하는 오피스텔도 속출했다. 하지만 그것은 '독(毒)'이었다.

오피스텔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 각지에는 오피스텔 분양 물량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회사 보유분특별분양' '선착순 분양' 등 곳곳에 내걸린 분양 광고판은 1년, 아닌 2년이 지나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목 좋은 곳에 분양만 잘 받으면 프리미엄은 톡톡히 챙길 수 있다는 것도 옛말이 돼 버렸다.

분양가 수준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그나마 다행, 오히려 밑지고 파는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넘쳐 나는 오피스텔

오피스텔 공급이 급격히 늘어난 것은 2001년의 무렵, 업무용이 아닌 주거용 오피스텔의 개념이 등장하면서부터 였다. 일반 아파트가 용적률 제한을 받고 지방자치단체의 사업 승인을 받아야 하는 반면 오피스텔은 건축 허가만 받으면 됐기 때문에 건설업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오피스텔 신축 사업에 뛰어들었다.

주거용 임대 수요 증가로 초저금리 탓에 갈 곳을 잃은 시중 부동자금이 오피스텔 시장으로 계속 몰려들 거라는 기대도 깔려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전국 요지의 빈 땅이란 빈 땅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서는 수준이었다.

부동산 114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경우 2000년 5.065실에 불과했던 오피스텔 분양 물량은 2001년 2만실에 육박(1만9,951실)했고, 경기 지역 역시 3,896실에서 2만488실로 5배 이상 폭증했다. 지난해에는 분양 물량이 서울 4만4,053실, 경기 4만890실 등으로 절정에 달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경제학의 '수요-공급의 원칙'이 적용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오피스텔 공급이 최고조에 달한 지난해 4월 즈음, 시장 매매가의 분양가, 그리고 월세 등은 곤두박칠치기 시작했다.

닥터 아파트 곽창석 이사는 "지난해 4월을 기점으로 오피스텔 경기가 식기 시작하면서 8월까지는 그나마 명맥을 이었지만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불황 상태에 접어들었다"고 기억했다.

여기에 정부가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해 양도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선 것은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최근 재정경제부가 국세청의 유권 해석을 요청 받고 주거용 오피스텔을 주택으로 간주해 1가구 2주택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그나마 남아있는 투자 목적 수요도 아예 자취를 감췄다.

서울 지역 오피스텔 매매가는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고, 월세 가격은 5개월 동안 계속 떨어졌다. 경기 지역도 3월에 모처럼 매매 가격이 소폭 상승했지만 월세 가격은 6개월째 하락세를 이어가 여전히 불황 국면임을 보여줬다.

일부 업체들은 부랴부랴 분양 시기를 늦추는 등 물량 조절에 나섰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라크 전쟁, 북핵 위기 등의 여파로 경기 침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업 게획에 잡아 놓았던 물량을 언제까지나 보류할 수 만은 없는 탓이었다.


텅 빈 일산 오피스텔촌

오피스텔 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대표적인 곳은 경기 고양시 일산 지역, 고양시 오피스펠 입주 물량은 2001년 419실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3,062실, 올해 8,845실로 늘어난 데 이어 내년에는 1만실을 넘어설 전망이다. 고양시 일대 오피스텔촌은 주로 일산선 역세권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정발산역 호수공원 일대와 백석역, 대화역, 화정역 인근이 대부분이다. 4월 대화역 인근 '영림 블레아'(232실)가 입주를 시작하는 것을 비롯해 5월에는 장항동 '우인아크리움'(546실), 호수공원 일대 '삼성메리헨하우스'(390실), '앙우드라마시티'(486실) '청원레이크빌2'(446실)등이 줄줄이 입주를 대기하고 있다.

공급 물량이 넘치다 보니 초기 계약률이 1-~30%대에 머문 오피스텔을 찾기 어렵지 않고, 급매물이 쏟아져 분양가 이하로라도 손절매하려는 물건들도 속속 눈에 띈다. 많게는 분양가보다 2,000만원까지 내려간 물건도 있을 정도다.

임대 수요도 뚝 끊어지면서 입주율이 50%를 넘으면 '성공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가 돼 버렸다. 입주가 끝났지만 저녁이 되도 절반 이상 불이 켜지지 않는 오피스텔이 허다한 형편, 심지어 공실률이 높아 건물 관리비조차 충당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 호수공원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I공인 관계자는 "계약금 정도만 내고 분양을 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임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계약금을 통째로 날릴 투주자들도 수두룩 할 것"이라고 말했다.


2년이상 분양 오피스텔 수십 곳

서울 강남 일대도 대표적인 오피스텔 과잉 공급 지역이다. 강남, 서초, 송파구 일대에만 최근 3년동안 1만2,000여실의 오피스텔이 공급됐다.

특히 강남 일대 오피스텔은 대부분 투자 목적의 20평형미만의 소형 오피스텔이어서 정부의 양도세 중과 조치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다른 지역이라고 사정이 그리 좋을리는 없다. 서울 강북의 역촌동 J오피스텔은 지난해 10월 입주를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56실에 불과한 전체 분양 물량을 소화해내지 못한 상태다. 강서구 가양동 I오피스텔은 2년만에 간신히 분양을 완료했지만 인근 부동산 중개업체에는 하루하루 매물이 쌓이는 실정이다.

분양 업체 관계자는 "오피스텔에 투자했다가는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투자 수요가 뚝 끊겼다"며 "실제 입주하려는 사람도 임대 형식을 훨씬 선호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경기 아산시 고잔동 G오피수텔, 경기 의왕시 내손동 H오피스텔, 서울 강북구 번동 P오피스텔 등 수도권 지역에서 2년이상 분양 물량을 소화하지 못한 곳이 수십곳에 달한다.


오피스텔 한파 수년간 지속될 듯

발등에 불이 떨어진 분양 업체들은 갓은 아이디어를 동원해 분양률 높이기에 주력하고 있다. 분당 수내동 '동보 노빌리티'는 오피스텔로서는 드물게 '마이너스 옵션제'를 도입했다.

주거용이 아닌 업무용으로 구입할 경우 식기세척기 등 붙박이 가전제품 가격을 분양가에서 빼주는 방식이다. "혹시 임대가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투자자들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동원하는 방식도 가지가지다.

중소 업체인 태림 컨스트는 관악구 신림동 'e-샤르망'에 대해 미리 임차인을 확보해 놓고 분양에 들어가는 '선임대 후분양' 방식을 채택했고, 종로구 안국동의 '운현궁 SK허브'는 책임 임대보장제를 도입했다.

업체들의 발버둥에도 불구하고 오피스텔 한파는 수년간 계속 될 수 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수도권의 경우 입주 물량으로 보면 올해(5만3,458실)보다 내년(7만3,851)이 훨씬 더 많은 등 현재의 공급 물량이 해소되려면 적어도 4~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탓이다.

부동산 114 석혜주 팀장은 "오피스텔 시장은 공급 과잉과 양도세 부과, 그리고 경기 침체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기회복으로 수요가 늘어난다 해도 물량 해소에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2003/04/1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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