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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LP여행] 유리시스터즈

방송사상 첫 전속가수 맑고 고운 '꿈나무' 자매

1961년 공영방송 KBS TV의 탄생 이후 64년에 첫 민간방송 TBC가 등장하고 69년엔 후발 주자인 MBC 까지 가세하면서 본격적인 TV영상매체시대가 개막되었다. 일부 부유층에 국한되었던 TV 수상기도 60년대에서 70년대로 접어 들면서 점차 전국적인 보급이 이루어져 갔다.

이에 각 TV 방송국들은 홍수처럼 늘어나는 각종 쇼와 연속극 등 오락물은 물론, 교양 프로그램 제작으로 가수와 탤런트 기근을 극심하게 겪었다. 각 방송국의 연예 프로그램 제작자들이 신인 발굴에 촉각을 곧두세웠던 것은 당연했다.

KBS 합창단원이었던 강예원-인원 자매로 구성된 유리시스터즈는 변화된 방송환경 속에서 방송사상 최초로 탄생된 전속 가수였다. KBS-TV의 쇼 프로그램 제작자들의 적극적 지원이 둘의 모태였다.

두 자매는 연식정구협회 부회장이었던 부친 강대원씨의 부유한 가정에서 1남6녀 중 다섯째와 여섯째로, 1948년 11월22일과 1952년 4월 7일에 전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KBS 전속 경음악단장으로 명성이 높았던 작곡가 김강섭은 이들의 외삼촌이다.

언니 예원은 차분하고 이지적인 성격이었던 반면 동생 인원은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었다. 성격을 달랐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두 자매는 전주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여중고를 똑 같이 졸업했다.

학창시절, 사이몬&가펑클의 맑고 깨끗한 화음의 팝송을 즐겨 들으며 피아노, 기타, 실로폰 등 악기를 연주하기까지 했던 재주 많은 여학생들이었다. 특히 언니 예원은 전북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가 은메달을 따냈던 탁구선수이자 바둑6급의 실력자였다.

그녀는 전주여고 졸업 후 한양대 교육학과에 진학했다. 동생 인원은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클래식 레슨을 받기 시작해 전주여고 졸업반 때는 호남음악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음악성이 뛰어났다.

1970년 전주여고를 졸업한 동생 인원은 대학교 3학년이었던 언니에게 "11월의 KBS TV 합창단원모집 오디션에 나가자"고 제의했다. 오디션 장에 나가 잔뜩 긴장한 채 노래에 열중하던 두 자매는 심사위원석에 별안간 고함소리르를 지르는 외삼촌 김강섭을 보고 기겁을 했다. 한마디 외논도 없이 오디션에 나온 것을 본 그가 놀라 지른 소리였다.

이미 수준 급의 노래실력을 가졌던 자매는 무난하게 오디션을 통과했다.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며 외삼촌에게 노래 레슨을 간청했다. 자매의 음악 소질과 열의를 느낀 김강섭은 본격적인 음악 지도에 들어갔다. 김강섭의 주선으로 자매의 노래를 들은 당시 KBS TV 박종국 부장은 눈이 번쩍 뜨였다. 신인가수 발굴이 절실했던 그는 "전속가수로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 "청순한 이미지대로 깨지지 말고 맑고 깨끗한 노래를 하라"며 '유리시스터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당시 KBS 쇼PD 오용한도 "두 자매는 악보를 거꾸로 놔도 읽을 만큼 기초가 탄탄하다. 맑고 하모니가 잘되는 음색이므로 인기듀엣으로 키워보겠다"고 칭찬했다. 동생 인원은 리드 보컬을 맡고 언니 예원은 화음을 맡았다. 김강섭이 작곡한 연속극 '꿈나무'의 주제가로 이들은 데뷔했다.

71년 2월 첫 방송에 들어간 연속극 '꿈나무'는 드라마보다 주제가로 더욱 인기를 모았다. 신인 탤런트 하명중과 한혜숙이 인기 탤런트로 부상한 것은 드라마 주제가에 쏠린 관심 덕이 컸다. 싱싱한 보컬 그리고 독특한 리듬과 멜로디의 '꿈나무'는 어린이들의 애창곡이 될 정도로 사랑을 받았다.

이후 유리시스터즈는 방송가의 기대주로 떠오르며 'KBS 그랜드 쇼', '패티 김', '도레미 쇼'등 인기 TV쇼와 라디오에 매주 평균 3회 이상 출연을 했다. 신인가수들 중 최고 수준이었다. 이어 라디오 연속극 '산 넘어'의 주제가와 모 화장품회사와 거금 50만원의 광고계약을 맺고 데뷔 1개월만에 유니버셜 레코드와도 계약을 맺으며 인기의 순풍을 탔다.

외삼촌과 함께 '꿈나무'를 비롯해 '베레모 소녀'등 6곡의 녹음 작업에 들어가 데뷔 앨범 <꿈나무-유니버샬.KSL10.71년4월15일>을 발표했다.

본격 홛동에 돌입한 이들은 TV시대에 맞는 율동을 배우기 위해 저녁마다 현대무용가 강미경에게 모던 발레를 배웠다. 비슷한 용모에다 똑같은 옷과 장신구를 착용했던 까딹에 둘은 쌍둥이 자매로 오해를 받기도 했다.

데뷔 초기 이들은 외삼촌의 노래 외에 20여곡의 라틴·포크 계열의 팝송을 즐겨 불렀다. 이후 오아시스로 전속을 옮겨 2번째 음반을 발표하며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이들은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가수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동생과는 달리 언니 예원은 노래보다는 학업을 전념하기 위해 대학원 진학을 결정했다.

팬들은 "공부를 하면서도 노래도 계속하라"고 아쉬움을 표했지만 데뷔 1년만인 71년12월 KBS TV에서 은퇴 인사를 마지막으로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해채 후 동생 인원은 솔로 활동을 하다 73년 3월에는 오정선의 후임으로 6대 라나에로스포에 합류했다. 리더 한민은 'Young & 라나에로스포'라는 5인조 록 그룹으로 변신을 꾀하며 강인원과 1년3개월여 동안 활동을 했다.

74년 결별을 선언했던 강인원은 라나에로스포가 여성 파트너를 자주 교체했던 데 대한 쇼킹한 폭로성 발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후 그녀 역시 가요계에서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다. 비록 유리스스터즈의 이름을 기억하는 대중은 많지 않지만 그녀들이 남긴 아련한 '꿈나무' 노래가락은 팬들의 뇌리 속에 살아있는 맑은 노래였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hoi@hk.co.kr

입력시간 2003/04/1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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