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삼각지 '옛집'

천원짜리 두 장이면 별미국수 잔치

흔히 결혼 적령기에 든 미혼남녀에게 “국수 언제 먹여줄 거냐?”고 묻곤 한다. 이 말이 결혼 언제 할거냐는 속내를 담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 요즘은 하객들 접대 음식으로 뷔페나 갈비탕을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예전에는 주로 국수를 내놓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러한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하고많은 음식 중에서 국수일까? 요즘에는 국수가 흔하디 흔한 음식 중의 하나이지만 과거에는 꽤나 귀한 음식이었다. ‘고려사’나 ‘고려도경’ 같은 옛 문헌을 보면 국수는 제사 때 주로 쓰고 절에서 만들어 팔던 고급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에는 밀이 귀했던 탓에 상류층 사람들만이 즐겨 먹었고, 귀한 음식이었기에 제사나 잔치 등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다. 혼인잔치에 국수를 내는 관습도 고려시대의 잔치음식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한 면발이 긴 국수의 외양처럼 신랑신부 두 사람의 결혼 생활도 길게 백년해로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어 결혼과 국수를 연관짓게 됐다고 한다.

이렇듯 과거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던 국수가 이제는 어디서나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잡았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잔치국수라고 하면 시장통 한구석에서 값싸게 팔리는 간식거리쯤으로 인식되곤 해 국수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억울할 터이다. 하지만 소수에게서만 받던 사랑을 이제는 만인에게서 받을 수 있게 됐으니 어찌 보면 더욱 행복해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가 부질없는 상상을 펼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국수는 아무런 상념 없이 출출한 이들의 배를 채워주는 서민음식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고 있을 것이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꼭 맞는 것만은 아니다. 국수가 값이 싼 음식이긴 하지만 맛이 없거나, 영양가가 없지는 않다.

삼각지에 가면 20년 동안 국수를 말아온 옛집이라는 식당이 하나 있다. 이 집에서는 천원짜리 두 장이면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이를 먹어보고 나면 모든 게 제 값어치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주인 모자가 이 자리에서 국수장사를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지만 고인이 된 전 주인이 끌어온 세월을 합치면 이 집의 역사는 무려 50년이나 된다.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국수를 만드는 노하우도 차곡차곡 쌓여 한 번 이 집에 다녀간 이는 다시 찾게 만드는 맛을 낸다.

새벽 일찍 문을 열어 늦은 밤이 돼서야 문을 닫는데, 종일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점심 무렵에는 기다려야 하기 일쑤다. 손님들 중에 유독 군인들이 많이 보이는데, 인근에 위치한 국방부에서 오는 이들이다.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여기에 면발을 듬뿍 넣은 후 파, 부추, 유부를 올린 온국수는 시원하면서도 깔끔한 맛의 국물이 일품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은은한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연탄불로 국물을 우려내는 것이 비법이라고 한다.

맛도 맛이지만 그보다는 면이 모자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무한정 퍼주는 넉넉한 인심이 이 집을 찾게 만드는 비결인 듯 싶다. 뭔가 맛있는 별미는 먹고 싶은데, 주머니 사정은 가벼워 고민이 이가 있다면 한번쯤 들러보는 것이 어떨까. 든든해진 뱃속만큼이나 마음 속도 넉넉해질 것이다.

▲메뉴 - 온국수 2,000원, 비빔국수 2,500원, 수제비 3,000원, 콩국수 5,000원, 김밥 1,500원.

▲찾아가는 길 - 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나오는 건물1층에 원아트액자라고 써있는 상점이 보인다. 이 상점의 우측으로 나 있는 작은 골목 안쪽으로 10m 정도를 들어가면 우측에 옛집이 나온다. 02-794-8364

▲영업시간 - 오전 6시~오후 11시.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

손형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2003/04/1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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