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선셋대로

최근 추억의 스타가 출연한 고전 명작이 DVD로 많이 출시되고 있다. <버터필드 8>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한창 때 미모와 연기력을 확인할 수 있는 멜로물이다. 오드리 헵번을 스타로 만든 <로마의 휴일>은 헵번 사망 10주년과 영화 제작 50주년을 기려 <로마의 휴일 특별판>으로 출시되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탐낼 만큼 아름다운 상자에 담긴 1,000장 한정판이 단번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마릴린 몬로가 기타를 치며 동명의 주제곡을 불렀던 서부 배경 멜로물 <돌아오지 않는 강>도 출시되어 몬로 팬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스페셜 에디션판으로 출시된 <선셋 대로 Sunset Blvd>(15세, 파라마운트)는 무성 영화 시대의 대스타였던 글로리아 스완슨의 말년 카리스마를 확인할 수 있는 1950년 작이다. 오래 전 비디오로 출시된 적이 있는데, 화면이 잘리고 번역도 신통치 않아 고전 명작이라는 선전이 창피할 정도였다.

특히 명 대사가 많기로 유명한 영화여서 오역은 이 신랄한 블랙 코미디 감상에 일급 장애물이다. 감독 빌리 와일더는 시나리오 작가 출신이고 <선셋 대로> 각본도 감독 자신과 당대 최고 시나리오 작가였던 찰스 브라켓과 D M 마시맨 주니어의 공동 작업이었다.

여기에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오역에 대한 불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선셋 대로>는 할리우드 이면을 까발린 가장 신랄한 영화이자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자아도취적이고 부패한 초상화이기도 하다. 반대로 영화에 대한 무한대의 애정을 담고 있는, 영화를 위한 애가이기도 하다. 전 출연진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반영한듯한 캐릭터를 맡아 긴 여운을 남기고 있는 점도 이런 설명에 부합한다.

당연히 영화에 대한 잠언이 많아 대사를 적어두고 싶어진다. <선셋 대로>는 쓰디쓴 웃음과 데카당스한 슬픔이 함께 하는 블랙 코미디인가 하면, 필름 느와르의 진정한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1950년 아카데미영화제 11개상 후보에 올라 각본, 작곡, 흑백 미술상을 받았다.

<선셋 대로 SE>의 코멘터리에서 에드 시코우(‘On Sunset Blvd-The Life and Times of Billy Wilder'의 저자)는 영화 제목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선셋 대로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거리로, 실버 레이크로부터 시작되어 해가 넘어가는 태평양까지 뻗어 있다.

지도상의 이름과 함께 이 길은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고 있는, 잊혀진 늙은 여배우와 할리우드에서의 성공 야망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에 놓인 젊은 남자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와 TV가 등장한 50년대를 사는 젊은이-즉 old and new의 대비를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코멘터리 외에 풍부한 일화를 전하는 부록도 적지 않다. 원래 대본과 달라진 도입부, 메 웨스트와 메리 픽포드가 거절한 노마 역과 몽고메리 클리프트로 내정되었던 조셉 역, 자신의 역할 그대로 출연한 세실 B 데밀, 버스터 키튼, 헤다 호퍼, 영화의 배경이 된 거리와 저택 설명, 영화 음악에 대한 해설 등.

B급 영화 작가인 조셉 길리스(윌리엄 홀덴)는 차압당할 위기에 처한 자가용으로 도망을 가다, 선셋 대로의 저택에 들어선다. ‘위대한 유산’의 해비 샴양이 사는 곳 같은 저택에는 무성 영화 시대의 스타 노마 데스먼드(글로리아 스완슨)가 20여년째 은둔해 있었다.

자신을 발굴한 감독이자 첫 남편이었던 맥스(에릭 폰 스트로하임)를 하인으로 부리며, 화려했던 과거 기억 속에 사는 노마. ‘스크린을 떠난 걸 원망하는 팬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살로메’ 대본을 쓰고 있다는 노마는 조셉에게 퇴고를 제안한다.

옥선희 DVD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4/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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