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 美] 美의 잣대와 개념의 파괴

■ 제목 : 비너스의 화장
(Venus at Mirror)
■ 작가 : 페터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 종류 : 캔버스 유화
■ 크기 : 96cm x 123cm
■ 제작년도 : 1615-1618
■ 소장 : 리히텐슈타인, 파두츠 미술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면 종교와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낫다. 극히 상반되고 타협이 거의 불가능한 견해로 맞서다가 결국은 언쟁으로 종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난마와 같은 정세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문화 예술 분야일 것이다.

소리 높여 외치는 말도, 설득력 있는 글도 아니지만 미술이라는 매체가 지닌 파장은 인지 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정치적 수단과 상류층의 유희가 되기도 했으며 때로는 순수한 정서함양 등 미학적 입장을 고수하기도 했다.

1600년 초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페터 파울 루벤스는 그림 그리는 것이 가장 하찮은 재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다재 다능한 사람이었다. 6개 국어에 능통하고 학식이 뛰어나 한때 외교관으로도 활약했던 그는 국책으로 권장하는 종교화를 주로 그렸으며 당시 전 유럽의 궁정화가로서 많은 왕족과 귀족들에게 사랑을 받아 일생동안 끊임없는 부와 명예를 누렸다.

작품 ‘비너스의 화장’ 은 고대와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 신화의 주인공을 누드화 했던 것에서 좀 더 과감히 벗어나 세속적 느낌이 강하게 묻어 나오고 있다.

그가 생각했던 미인의 개념은 뚱뚱한 몸매를 가진 육중한 체격의 여인이었던 탓에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 비너스를 연상하기 어려워 보인다. 금기시되어온 세속적 누드화로 변화의 물꼬를 슬며시 터주고 있는 셈인데 비너스 옆의 흑인 몸종의 출현으로 더 한층 현실적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어떤 작품이 당대의 권력과 실세에 편승하는 속성이 전혀 없지 않을 경우라도 예술로서의 빛을 충분히 발휘할 때 어지러운 속사정은 어느새 감동하는 마음에 녹아버리고 만다.

장지선 미술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3/04/16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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