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특수를 선점하라

기업들 이라크전 이후 400조원 복구시장에 군침

함락과 함께 전장 바그다드는 기회의 땅으로 변했다. 전쟁을 주도한 미국과 영국의 메이저 기업은 물론 세계 각국 기업들은 중동지역 전후 복구 사업을 놓고 총성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그간 전쟁에 곱지 않은 시건을 보냈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까지 유엔을 통한 전후 복구를 내세우며 사업 참여 채비를 서두리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이에 뒤질세라 '제2의 중동 특수'를 향한 시동을 걸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미국 예일 경영대의 객원 교수 데이비드 더로사 박사의 말을 인용해 "한국이 '이라크 노다지(bonanza)'에 다른 나라보다 한발 앞서 접근해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회에서 파병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전후 이라크 노다지에 한 발 걸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어쩌면 이번 이라크 전쟁의 진짜 목적이었을지 모를 중동 경제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전후 복구 시장 틈새공략에 주력

전후 복구 시장의 규모는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 가지 변수를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규모를 추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 KORTA가 자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0년동안 최대 1,05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물가등을 감안하지 않고 금액으로만 따진다면 2차 세계 대전 후 유럽 복구 계획인 '마셜 플랜'과 맞먹는 규모다. 1948년부터 3ㄴ녀간 진행된 마셜 플랜에는 당시 돈으로 133억달러,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380억달러가 투입됐다.

미국측 분석은 이를 훨씬 능가한다. 미국 과학진흥협회 (AAAS)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후 10년간 매년 300억 달러 이상의 복구비가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으로 10년간 이라크 경제를 복원하려면 3,000억달러(390조원)정도가 필요할 것이라는 얘기다.

복구 사업의 유형은 주요 항구에서붙 발전소, 도로, 철도, 병원, 주택 등 건설 분야 전반을 망라한다. 자동차, 직물, 중소형 기계류 등이나 이동전화와 식료품, 가전제품 등 생활 필수 소비재 시장보수와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선 개·보수와 추가 유전 개발도 유망한 분야로 꼽힌다.

복구 사업의 주도권은 미국 메이저 업체들이 장악하겠지만 우리 기업들도 하청이나 컨소시엄 구성 등을 통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ORTA는 최근 '중동 수출, 전쟁이 기회다'라는 보고서에서 "91년 걸프전 이후 대 중동 수출이 26.4% 증가했다. 사회기반시설 복구는 물론, 가전 통신 자동차 의약품 등의 특수가 예상된다"며 기업들의 적극적이고 발 빠른 대응을 주문했다.


꿈에 부푼 건설업계

전후 특수에 대한 꿈이 가장 무르익은 곳은 건설업계다. 연일 치솟는 건설업종의 주가는 중동에 불어 닥칠 건설 붐을 미리 예고하는 듯하다.

특히 건설업계는 곧 파병될 우리나라 공병대가 철수한 이후 자연스럽게 관련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종전 수혜 건설기업 1순위로 꼽는 곳은 단연 현대건설이다. 걸프전 직전까지 이라크 내 30개 현장에서 41억 달러 정도에 달하는 공사를 벌였고, 최근까지 바그다드에 지사를 운영해 왔을 만큼의 연고를 바탕으로 현지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한 관계자는 "미국 벡텔사 등과 함께 공사한 경험이 있고 현지 하도급 업체와 끈끈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국내 건설업체 중에서는 현대건설이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측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다. 4월13일 해외영업본부장인 김호영 부사장 등 7명이 벡텔 플러어 KBR 등 미국 건설 엔지니어링 회사와 복구 사업 참여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출국했고, 이에 앞서 전쟁을 앞두고 쿠우웨이트에서 철수했던 근무 인력 중 3명이 현지로 복귀해 알 아마디 항만공사 등의 재개 가능성을 타진했다.

또 '전후복구 사업 추진반'을 구성하고 이라크 바그다드 지사 인력을 전쟁 전 1~2명에서 상무급 지사장 등 5명으로 늘리기로 하고 최근 인선을 마무리했다.

LG건설과 대림산업은 토목 건축보다는 플랜트 공사에 노하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 플랜트 수주에 주력하고 있다. LG건설은 이라크의 정유 플랜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미국의 파트너 업체와 접촉 중이며, 대림은 전후 복구 사업은 아니지만 이미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가 발주한 총 사업비 2억달러 규모의 폐수 처리 플랜트 공사를 최근 수주했다.

대우건설, SK건설 등 다른 업체들도 복구 사업에 컨소시엄 형태로 진출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메이저 업체들과 활발하게 물밑 접촉을 진행중이다. 해외건설협회 플랜트지원실 김종국 과장은 "분명 건설업계가 종전 특수를 맞는 것은 분명하지만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초기 사업 규모가 9억 달러에 그치는 등 생각보다 실익이 많지 않을 수도 있다"며 "특히 군정 기간의 불확실성도 남아있는 만큼 리스크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사업에 뛰어들기도 힘들 것"이라고 조심스러운 의견을 보였다.


전자, 자동차 업계도 분주

건설업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전자, 자동차, 종합상사 등 다른 업계도 전후 특수를 잡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전자 업계가 가장 탐을 내고 있는 것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지역의 통신 시장이다. 삼성 전자와 LG전자는 폐허가 된 이라크에서 통신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할 것으로 보고 '휴대전화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후 1년 내 이동통신기기 200만대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 업체는 중동 수출이 재개되는 즉시 가동할 수 있는 물류와 거래선을 점검하는 한편, 건물 파괴에 따른 TV나 컴퓨터 등의 가전 제품 수요 증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동차 업계도 중동 패권 잡기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중동지역 특성상 상용 트럭, 버스,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 판매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중동지역 딜러망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9월 중동지억 수출을 중단했던 GM대우차도 올 하반기 수출 재개를 앞두고 GM본사와 함께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 판매망 구축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종합상사 중에서는 대우인터내셔날이 '중동 특수태스크포스팀'을 구성, 철강 플랜트를 중심으로 중동시장공략프로젝트를 준비하는 등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업계간 공조 움직임도 활발하다. 전국 경제인연합회는 조만간 KOTRA, 해외건설협회, 대한석유협회 등 업종 단체들과 합동 회의를 열어 효율적인 전후 복구 사업 참여 방안을 협의할 계획이다. 중복되는 사업을 조정하고 관련 정보를 적극적으로 교환하자는 취지다. 건설교통부가 건설업계와 함께 5월 중 민관합동 시장조사단을 중동 지역에 파견하기로 하고, 산업자원부가 가전 3사, 및 자동차 업계와 공동으로 중동 지역 친선축구를 개최키로 하는 등 정부도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바그다드에 찾아온 봄이 수령에 빠진 우리 경제에도 한 가닥 봄 햇살이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2003/04/17 15:13


이영태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