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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민심읽기] 호남에 盧는 없다

특검법 수용, 정부요직 배제 등으로 지역 민심 흉흉

정치권에 때아닌 지역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것도 90%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호남지역에서 지역주의 망령이 고개를 들고 있다. 당초 많은 사람들은 3김 정치 종식과 함께 화려하게 출범한 노무현 정권으로 인해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이제 서서히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었다.

하지만 출범 2개월도 안된 시점에서 민주당의 텃밭 지역 주민들이 노 대통령을 향해 ‘소외론’을 앞세운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호남소외론이 불거진 배경은 크게 세가지. 먼저 정권 출범을 전후해 호남지역의 대표성을 띠고 있던 동교동계 의원들이 당내 신 주류에 의해 구 정치의 산물로 취급받으면서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분신 격인 한화갑 의원이 대표 직에서 사실상 불명예 퇴진한 것도 한 이유가 됐다. 이때만 해도 노 대통령을 위시한 신 주류에 기대를 걸고 있는 터라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으나 계속된 노 대통령의 행보에 호남 민심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직결된 대북 지원 문제와 관련한 특검법을 노 대통령이 전격 수용하자 줄곧 거부권 행사를 주장하던 당내 구 주류들이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성토하기 시작했고 당연히 지역 민심도 함께 술렁거렸다.

이어 검찰 경찰 군 행자부 등 새 정부의 요직에 호남 출신들이 잇달아 밀려나자 호남에서는 “지난 대선 때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며 볼멘 소리를 내기에 이르렀다.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이 현지에 내려갔으나 푸대접을 받고 귀성하고, 정대철 민주당 대표도 호남 인사들에게 비난성 공격을 받게되자 결국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게 됐다. 노 대통령은 22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한다.

대개 전직 대통령들을 불러 현 대통령이 시국에 관한 조언을 듣고 현 정부의 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자리는 종종 있어왔으나 바로 직전 대통령만 따로 초청해 식사를 함께 한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호남소외론의 심각성에 따라 노 대통령이 직접 치유에 나선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盧, DJ와의 회동으로 정면돌파 시도

청와대 관계자는 4월18일 “노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측에 초청 의사를 밝혔으며 노 대통령이 취임 이후 김 전 대통령을 한번도 만나지 못해 이번에 초청키로 한 것”이라며 “북한 핵 문제, 방미 등 현안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고견을 듣기 위해 만든 자리”라고 설명했다.

표면적으로는 북 중 미 3국회담이 추진되고, 북측에서 핵 재처리 사실을 공개하는 등 북핵문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데 따른 전임자의 경험담 청취 및 현안 토의가 주 목적이긴 하다.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보는 이는 많지 않다.

청와대 측 설명대로 대북 대미 문제에 대한 DJ의 견해는 얼마든지 다른 경로로 실무자들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다. 또 대미 문제의 경우는 DJ보다는 그 이전 대통령들이 더 ‘선수급’이다. 더구나 지금의 북핵 위기는 1994년 상황과 비슷하다.

오히려 YS의 경험담이 더 요긴하게 쓰여질 수 있다. 그런데도 다른 전직 대통령을 제쳐두고 유독 DJ만 초청한 데에는 역시 현재 불고 있는 호남소외론이 작용했다는 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최근이 호남지역 지지가 더욱 질실히 필요한 때이기도 한다. 대북송금 특검팀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설마저 흘러나와 호남 민심을 더욱 자극하기도 하거니와 집권 초기의 국정운영 성적을 가늠하는 4ㆍ24 재 보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다. 호남 민심이 등을 돌리기라도 한다면 집권 초기의 개혁정책은 물론 내년 총선까지 담보할 수 없다. 어찌보면 노 정권의 사활이 달린 문제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이에 앞선 청와대 비서진 회의에서도 “호남푸대접론이 실제 인사에서도 반영돼 있으면 시정토록 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하지만 정권의 핵심인사들이 호남 현지를 다녀온 뒤 잇딴 ‘경계경보’를 제기하자 DJ 초청회동이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은 것 같다.


호남소외론의 실체는?

호남소외론의 실체(實體)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민주당 신 주류 측에서는 “구 주류들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구 정치 행태”라고 애써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리 만만치 않다.

현지 여론 주도층에서는 “호남 소외론에 대해 정치의 무관심한 층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갖고 호남소외론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은 문제다. 오히려 일부 기득권층 이야기라고 치부한데서 격화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인사나 정책문제에서 충분히 노 정권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으나 정부 여당이 너무 가볍게 대응하는 것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호남소외론을 아우르는 포용력 대신 적대시하고 폄하하려는 태도가 문제라는 것이다.

다른 언론인은 민주당 정대철 대표와의 만남에서 “호남소외론을 지역주의로 매도해서는 안된다. 호남소외를 이 지역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입지를 위해 부추겼고 지역 언론과 결탁한 것으로 보는 것은 오해다. 호남 정치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한 언론인의 말대로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 잃지 말라”는 말로 요약된다. 노 정권의 동진(東進)을 위해 인위적인 호남 허물기가 선행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즉 영남민심을 잡기 위한 ‘호남털기’가 시작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노 정권의 호남전략이 동교동계를 비롯한 구 주류 청산에 있다는 점은 정치권의 공통된 시각이다. 잇달아 제기되는 민주당 신당론도 이와 같은 얘기다. 신 주류 측은 “구 주류가 지역감정에 기대려고 해도 개혁과 변화를 바라는 호남민심은 결국 우리를 지지할 것”이란 견해 속에 압박했고, 이에 맞서 구 주류에서는 “영남민심은 변하지 않고 있는데 왜 아군에 대한 뺄셈정치만을 지속하느냐”고 반발해 왔다.

그 결과가 새 정부 인사와 지역개발정책의 묘한 불균형적인 양태에 따라 오히려 노 정권의 목을 죄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형국이다.

한 호남 주민은 이에대해 “현 정부가 고의로 호남을 홀대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보는 쪽에서는 당연히 ‘소외론’을 얘기할 수 있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낙후지수 1위인 지역 입장에서는 지역 간 균형발전을 위한 정부의 관심과 배려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민심이 등을 돌렸다는 징후는 없지만 적어도 ‘절대 지지’에서 ‘지켜보겠다’는 수준으로 한단계 내려온 것 만은 분명하다.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

입력시간 2003/04/22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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