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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민심읽기] 광주- 정부의 극도의 배신감

"다벗고 밀어줬더니, 겨우 '팽'이냐"

“국민의 정부 때도 ‘역차별’을 받았는데 참여정부에서 또 푸대접을 받아야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도 그러면 안 된당께. 누구 덕에 대통령이 됐는디….”

“언제까지 기득권 세력의 여론 호도식 정치놀음에 ‘호남’이 놀아나야 합니까. 지역구도를 교묘히 이용하는 그런 짓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최근 정부 고위직 지역 편중인사 논란으로 불거진 ‘호남 소외론’을 놓고 정치권 내 이견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호남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민주당 내 호남출신 일부 인사들이 행정자치부 1ㆍ2급 인사를 놓고 “명백한 호남차별이다”며 목청을 잔뜩 높인 후 ‘노풍(盧風)’의 진원지인 광주에서는 이들 정치인의 주장에 동조하는 목소리와 지역구도 탈피를 바라는 열망이 마구 뒤섞여 표출되고 있다.


참여정부에 쏟아지기 시작한 불만

“노통(노무현)은 호남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대통령 못할 사람이었다. (호남을) 너무 홀대하는 것 아니냐.” 광주의 대표적 번화가인 충장로 1가 입구에서 손님을 기다리던 택시기사 최현수(59)씨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의 인사정책을 보면 전라도가 완전히 ‘팽’ 당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구. 기껏 대통령을 만들어 줬더니…. 다들 대통령만 되면 왜 그러는지, 이제 정말 믿을 사람이 없어.” 그는 DJ정권에 이어 노무현 정권에서도 호남이 대를 이어 차별을 받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광주시청 앞에서 만난 회사원 김모(35)씨는 조금 우회적으로 서운함을 전했다. “저쪽(영남)에만 신경을 쓰다가 이쪽(호남)을 망칠 수가 있습니다. 광주로 대변되는 호남이 정치개혁의 1등 공신이라는 자부심만으로 (차별을) 감내하라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것 아닙니까.” 노 대통령의 취임 이후 호남에 대한 배려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과 함께 ‘노무현’을 선택하면서 ‘노풍’의 주역으로 떠올랐던 광주 시민들. 그들은 최근 호남 푸대접론에 휩싸이면서 이렇게 조금씩 동조하고 있었다.

4월16일 오후, 광주 남구 주월동에 자리잡은 민주당 광주시지부. 호남 소외론이 터져 나오면서 시민의 불만 토로 창구가 돼버린 이 곳에는 이 같은 지역 민심이 더욱 절박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노무현은 조금 다를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똑 같은 X이더라.” “대통령 선거 때 95%라는 지지율을 보여줬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 결국 ‘왕따’를 놓는 것이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아예 노무현과 갈라 서야죠.”

광주시지부의 한 관계자는 “호남 소외론이 불거지면서 격앙된 시민들이 자신의 신분까지 밝혀가며 노골적으로 노 대통령에 대해 험한 소리를 퍼붓고 있다”며 “시민들의 항의 전화 받는데 녹초가 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민심이 악화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당 광주시지부 김선문 사무국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노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 이후 민심이 돌아서기 시작했어요. 참여정부 출범 이후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느끼던 지역민들을 자극한 셈이죠. 이 와중에 이창동 문화부장관이 광주를 방문해 노 대통령의 지역 대선 공약인 광주의 ‘문화수도’ 조성도 추진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자 민심이 더욱 악화한 거죠. 그렇게 믿고 지지했던 사람이 등을 돌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실망감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과거 ‘호남권력’으로 불리던 권력이 중심 축에서 밀려난 데 대한 광주시민의 허탈감이 노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을 계기로 반감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게 광주시지부의 판단이다.


호남소외 거론 정치인들 물갈이 여론

물론 호남 소외론에 대한 반대 목소리와 노 대통령에 대한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남도청에서 만난 공무원 김행수(41)씨.

행자부의 지역 편중 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그는 “쓸만한 인재가 없는데 지역안배 한다고 능력도 없는 호남사람을 앉히는 것은 옳지 않다”며 “호남인사 차별은 일부 정치권에서 의도적으로 흘린 것으로 동의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서구 쌍촌동에서 피자가게를 운영하는 안모(37)씨도 “일반 시민은 호남 푸대접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데 청와대가 영남판으로 짜여진 데 불만을 가진 일부 기득권 정치세력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그런 양반들은 이제 정치를 그만 둬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역설적으로 DJ 그늘 아래 안주하며 지역구 관리에 소홀히 해왔던 호남지역 정치인들에 대한 물갈이가 필요한 때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의 정서도 ‘호남 소외’와는 다소 거리 멀었다. 조선대 캠퍼스에서 대자보를 붙이던 이세창(25ㆍ영문과 3ㆍ 휴학)씨를 만났다. 자신을 총학생회 간부라고 소개한 그는 “편중인사로 인해 호남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호남 소외론을 퍼뜨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비난하는 여론이 많다”고 대학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대학 내에서 마주친 대다수 학생들은 “이제 지역구도로 정치생명을 연장해 나가는 정치인들은 퇴출시켜야 한다”, “DJ사람들(민주당 동교동 계열)이 지역에서 너무 오래 해먹었다”며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호남 소외 부추기는 지역언론

그렇지만 이런 주장은 ‘호남 씨 말리기’나 ‘호남소외 망령’ 등 지역정서를 자극하는 선정적 표현을 써가며 호남 홀대론을 앞다퉈 이슈화해 보도하고 있는 지역언론들에 의해 묻히고 있는 게 또 현실이다.

지역 언론들은 “지난 연말의 선택에 대해 ‘손가락을 자르고 싶다’는 자조 섞인 허탈감도 상당하다”(광주일보 3월31일자 사설), “못사는 곳은 차지하고 ‘잘 사는 곳이라도 잘 살자’는 선택과 집중이라면 나라를 망해먹자는 논리다”(호남신문 4월3일자 사설)라며 연일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역 언론들의 이 같은 보도 행태는 호남 소외론의 실체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판단보다는 기득권층의 논리 확산과 ‘지역’이라는 기준에 편승한 여론몰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4월11일 광주지역 신문, 방송사 편집ㆍ보도국장단이 “지역 민심이 왜곡돼 청와대에 전달되고 있는 상황에 만나면 무엇하느냐”며 광주를 방문한 조영동 국정홍보처장의 오찬 간담회 요청을 거절한 것은 이 같은 태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렇다면 지역 언론들이 영남과 호남의 인사 대비를 통해 상대적 피해의식을 강조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광주ㆍ전남 민주언론운동연합 고현주 모니터분과장의 말이다. “지역 언론들이 지난해 대선에서 보여준 광주의 정치적 선택을 호남인사 중용에 대한 기대로 몰아세우는 경향이 짙습니다.

여기에는 일부 기득권층이 주장하는 호남소외론을 대변해 지역주의를 부추기면서 독자를 끌어들여 ‘신문을 팔아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이는 재정상태가 열악한 지역 신문들이 툭하면 써먹는 수법이죠. 실제로 1998년과 2000년 국민의 정부 당시에도 지역 신문들은 ‘호남 역차별’을 거론하며 지금 같은 논조를 보였다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지역 언론이 여론을 자의적으로 판단, 지역 감정을 부풀리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논지에 대한 반론까지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옹호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역 언론의 기득권층 편들기식 보도에 대한 비판이 점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론몰이식 ‘전술’이 먹혀 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광주 버스종합터미널에서 만난 노웅주(35)씨는 “사실 처음에는 (호남소외론을) 별로 느끼지 않고 있었는데 신문들이 연일 떠들어 대니까 ‘정말 그렇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북구 매곡동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건축 일을 한다는 김모(47)씨도 비슷했다. “지역 신문들이 호남 푸대접론을 조금 심하게 보도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사실 하나 하나 따지고 보면 다 맞는 말 아니냐”고 반문했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기득권층의 논리를 지역 언론이 확대 재생산해 내면서 호남 소외론에 대해 무던하게 생각했던 뒷골목 민심도 들썩이고 있는 것이다.


식지않은 개혁 열기

광주로 대표되는 호남 민심이 호남 소외론에 따라 동요하고 있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노 대통령에 대한 믿음과 지속적인 개혁을 바라는 마음도 컸다.

“호남 사람들은 속(마음)이 그렇게 좁지 않습니다. DJ정권 때는 과거 정권에서 홀대 받은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개혁 대통령을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이 아주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호남소외론 같은 것도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진통입니다. 하지만 호남 사람들은 이 같은 진통을 감내하고 있고 개혁을 바라고 있습니다.”

광주ㆍ전남 개혁연대 류동훈 사무국장은 요즘 호남인들의 속내를 이렇게 전했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노풍’의 진원지에서 소외론이 불거진 것 자체만으로도 부담이 아닐 수 없는 노 대통령에게 부담을 덜어 주겠다는 뜻도 배어 있었다.

노 대통령의 흔들리는 듯한 원칙과 소신, 측근들의 행태에 대한 쓴소리도 빠뜨리지 않았다. 광주환경운동연합 이채연 정책실장은 “최근 노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모든 일을 혼자서 처리하려는 과거 제왕적 대통령의 행태들이 비춰지고 있다”며 “특히 대통령의 측근들이 너무 설쳐대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한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의료기기 판매업을 하는 김우성(43)씨는 “시민의 힘으로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대통령 측근들이 이를 독점하려 한다”며 “노 대통령이 인의 장막에 갇혀 개혁이 뒷걸음질 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입력시간 2003/04/22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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