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민심읽기] "마음 속 대통령은 당신이 아니야"

대구- '盧는 호남 중심 민주당 인물' 인식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두 달이 가까웠으나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던 대구ㆍ경북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있다. 현 정권을 보는 시각도 냉랭하다.

국민의 정부에 비하면 지역 인사들이 대거 입각하는 등 현 정권 들어 인사소외 문제는 상대적으로 사라졌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또 정부가 특별히 차별한 것이 없는데도 현 정권이 싫다는 정서는 여전하다.

한일 축구전이 열린 4월16일 저녁 대구의 대표적 먹거리 골목인 수성구 들안길의 식당가에도 많은 시민이 술잔을 기울이며 TV를 시청하다 일본에 1대0으로 석패하자 탄식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이) 축구장까지 와서 저러니 진 것”라며 패인을 엉뚱한 데로 돌렸다.


지역민 마음 잡지 못한 노 대통령

3월 초 이회창 전총재가 지하철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대기하는 시민회관에 들렀을 때 한 유가족은 이 전총재의 손목을 부여잡고 “이 총재님은 우리들에게는 마음속의 대통령입니다”며 눈물을 흘렸다. 노 대통령이 아직 이 지역민들의 마음을 잡지 못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케이스다.

사실 노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자신을 가장 많이 반대한 대구ㆍ경북민들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정우 경북대 교수를 대통령정책실장으로, 영화감독 이창동씨를 문광부장관, 권기홍 영남대 교수를 노동부장관, 최기문 경찰대학장을 경찰청장에 임명하는 등 대구경북 출신이거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인사를 많이 기용했다.

또 지하철 참사가 터지자 대통령을 비롯, 총리, 장관 등 수많은 고위층 인사와 정치인들이 대구를 찾았고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구경북은 이 지역출신 인사를 대거 참여시키는 참여정부의 인사정책을 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다는 수준으로 폄하하고,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최근 불거진 최근 호남 소외론은 일부 정치인들이 입지 강화를 위해 퍼뜨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분포를 보나 인물을 보나 현재의 인재 등용 노선이 균형을 잡아가는 것인데도 누군가 이를 지역감정으로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인사업을 하는 손영민(46)씨는 “DJ정권 때 잘못된 인사를 바로잡으려면 아직도 더 물갈이를 해야 한다”면서 호남소외론은 말도 안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치과의사 김홍정씨는 “벼락부자가 망하면 부자가 되기 전보다 더 절망적인데, 그 심리를 누군가 자꾸 부추기는 것 같다”고 했다.


보수의 몸에 개혁의 옷‘어색’

정확한 조사결과는 없지만 노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취임 초기보다 더 심해진 것은 김영삼 정권 때 전폭적으로 지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경험과 최근 두 차례 대선에서 패배한데 따른 상실감이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노 대통령이 민주당보다는 거의 혼자 힘으로 당선된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대구경북인들은 그를 호남 중심의 민주당 인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대구경북의 보수성에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한마디로 참여정부와는 코드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수의 몸에 개혁이라는 옷이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는 것이다.

서문시장에서 30년째 섬유도매상을 하는 김모(63)씨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장사가 안 되는 판에 국민을 잘 먹고 살도록 할 생각은 안하고 개혁을 한다며 경제를 어렵게 하고, 받는 것도 없이 북한에 퍼 줄 궁리나 하는 대통령을 누가 좋아 하겠느냐”고 말했다.

더구나 최근 정부가 국무회의에서 양성자 가속기를 핵폐기장과 연계처리키로 방침을 정하면서 반 노무현 정서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 대구는 연구인력이나 교통 등에서 전북 익산시와 함께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호남소외론을 무마시키기 위해 특정지역에 특혜를 주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지역 중견 언론인 K씨는 “30여년간 권력을 쥐고 있다가 10여년째 대통령 후보조차 내지 못해 권력의 금단증상이 사라지지 않고 있고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하다”고 지역 민심을 진단했다.

대구=정광진기자

입력시간 2003/04/22 16:07


대구=정광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