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남민심읽기] 한나라 텃밭에 '민주 싹' 틔울까

부산- 盧정권에 우호적 여론 확산

“요새 노무해이(노무현 대통령) 잘 하제. 아 따 이 동네(부산 경남) 문디(인사)들 제부(제법) 마이(많이) (청와대 등 정부 부처에) 들어갔데”

“아이고 형님 뭐라카노. 그것도 안할라꼬. 짜다라(별로) 그런 것도 아이라 카이. 군은 저쪽(호남)이 다 묵었는기라(차지했다)”

지난 17일 밤 11시께 부산지하철 1호선 안, 불콰하게 술기운이 오른 50대 초반의 중년남자가 나이가 서넛은 위로 보이는 이에게 제법 신문 등을 통해 연구라도 한 듯 검찰과 군 등 각 정부부처의 구체적인 인사 숫자까지 들먹이며 반론을 펼쳤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인사문제 등과 맞물려 호남지역 역차별론이 일면서 상대적으로 부산 경남 민심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부산 경남지역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호남쪽에서 그렇다 하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는 반응과 ‘아직 멀었어’라는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자는 ‘노사모’ 등 대선 때 ‘노’쪽에 표를 던졌거나 기권했던 부류이고, 후자는 대선 때부터 일관된 자세를 보여온 ‘반노’ 진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선한 개혁바람 민심 변화조짐

하지만 최근 부산 경남지역에서는 골수 ‘노사모’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현 정부와 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특히 민주당 등 여권측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PK(부산 경남)지역의 분위기가 새 정부의 인사정책과 특검 수용, 검찰개혁 등 일련의 신선한 바람몰이로 크게 달라졌다”며 벌어진 입을 닫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서 “부산지역 17개 의석 가운데 절반가량을 차지할 수 있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펼치기도 한다.

실제 최근 부산MBC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지난 연말 대선 때와 비교, 66%에서 52%로 14% 포인트 가량 줄어든 대신 민주당의 지지도가 그만큼 오른 결과가 나왔다. 비록 해석의 배경이야 다르지만 부산 경남지역 한나라당 관계자들까지 참여정부 출범이후 지역민의 정서가 상당히 달라졌다는데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나라당 간판=당선’이란 등식은 더 이상 존재하기 어렵고, 향후 어느 선거에서든지 개혁성과 참신성을 바탕으로 지역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당선이 힘들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런 여건을 바탕으로 17개 지구당 가운데 11개 지구당에 위원장을 선정해놓고 있는 민주당 부산시지부측은 중앙당 차원의 개혁안이 확정되고 상향식 공천, 진성당원제 등 참신한 개혁방안이 뒷받침 될 경우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더욱 상승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1년 후에 있을 총선과 맞물려 이 같은 민심 변화가 곧 바로 지역 정치구도 변화로 나타나기는 힘들다는 시각도 만만찮다. 회사원 박윤석(50ㆍ부산 동래구 복천동)씨는 “최근 지역 민심에 상당한 변화가 느껴지지만 선거결과로 나타나려면 노무현정부가 변화만 추구할 것이 아니라 만민이 공감할 수 있는 성과물을 도출해야 하고 민주당도 환골탈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측은 어떻게 하면 갓 발아된 친 민주 성향의 싹을 제대로 키울지를 골몰하는 분위기이다. 민주당 부산시지부 최낙용 사무처장은 “중앙당차원의 개혁방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며 “진성당원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는 방안 등 변화를 시작한 민심을 확실히 돌려놓을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의 비서 출신인 한 지구당위원장은 “중앙당의 개혁방향이 참신성과 개혁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주저 없이 당을 탈당하겠다”며 최근 민주당에 대한 우호적인 시선이 민주당이 아닌 노무현정부에 대한 기대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한나라 “반짝효과일뿐” 일축

이에 대해 한나라당측은 “최근 지역민심에 변화가 있다면 정권이 바뀐 데 따른 당연한 현상”이라며 “정권 출범 50일을 갓 지난 시점인 만큼 추이를 지켜보자는 정도”라며 상반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나라당 부산시지부 이석희 사무처장은 “노무현정부는 DJ정부 보다 더 심각한 지역구도를 안고 출발했다”며 “호남은 변하지 않으면서 영남에서만 개혁과 지역구도 타파가 이뤄지기를 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선거판도를 직접 겨냥했다.

그는 또 “3김이 지배하던 ‘카리스마 정치’가 사라진 마당에 참신한 인물 중심으로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인식은 누구나 갖고 있지만 정치현실을 고려할 때 선거가 실질적인 정책대결로 발전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시기상조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박관용 국회의장을 제외한 부산출신 의원들은 지난 18일 부산 해운대구 송정에서 연찬회를 갖고 조직활성화 지역현안 해결방안을 숙의하는 등 한나라당 의원들도 달라진 민심읽기에 들어갔다는 관측도 나온다.

부산대 정치학과 정용하 교수는 “노무현정부 출범이후 지역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팽배한 것은 사실이지만 정치주체 및 세대교체를 이룰 정도로 정치세력화한 징후는 아직 없는 것 같다”며 “앞으로는 누가 변화에 대한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느냐에 따라 정치구도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김창배기자

입력시간 2003/04/22 16:10


부산=김창배 kimcb@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