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얼굴 팔려 못 살겠네"

얼마 전에 일산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친구를 문병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출근시간이 지나서인지 객차에는 승객이 아주 드물었다. 좌석마다 한 두명씩만 드문드문 앉아있었는데 내가 앉은 바로 맞은편에 젊은 여성이 유난히 시선을 끌었다.

늘씬하게 큰 키에다 긴 생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단아한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었는데 얌전히 모으고 앉아있는 쪽 뻗은 다리선이 시원스러웠다. 다른 승객도 별로 없고 특별히 읽을거리도 없었던데다가 바로 맞은편이라 어쩔 수 없이 자꾸 그 여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나야 이른 아침부터 괜찮은 이미지의 여성을 본다는 게 그다지 손해볼 일은 아니었지만 정작 그 여성은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머리칼을 넘기는 손동작과 시선처리가 이미 타인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 뚜렷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속으로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30여분 동안 끊임없이 조심스럽게 동작을 바꾸고 샐쭉해졌다가 어색해졌다가 하며 표정관리에 바쁜 그 여성의 순간순간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문득 연예인들이란 참 불쌍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 사람들도 잠깐 동안 머무는 타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데 허구헌날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와 손가락질 속에서 살아가는 연예인들의 고충은 스타로서의 빛보다 더 짙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어디 가서 양손에 기름기를 번들거리며 뼈다귀를 잡고 물어뜯을 수도 없고 터져나오는 하품을 늘어지게 할 수도 없다.

콧속이 근질거려서 새끼 손가락을 넣고 한번 파주면 시원하겠는데 주변의 시선 때문에 우아한 척 코푸는 흉내만 내야 하는 고역은 또 어떻겠는가. 모처럼 여유를 즐기느라 쇼핑을 나서도 몸조심을 해야 한다. 물건 살 때 조금씩 깎는 맛도 쇼핑의 즐거움인데 그러면 금새 인터넷이 뜨거워진다.

“000는 짠순이다. 돈도 많이 벌면서 푼돈 깎냐. 싸가지 없다, 재수없다….”대중들은 그들의 입맛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연예인들을 씹어먹지 못해 안달이 난다. 소형차를 타면 스타일에 안 맞게 궁상스럽다고 그러고 비싼 차를 타면 사치스럽다고 난리다.

대중들이 언제 어디서 자신을 씹어대고 흠을 잡을지 모르기 때문에 연예인들은 연애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차 한잔을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 금새 뜨거운 사이네 열애설이네 하며 터져나오는 판국이다. 그러니 피 끓는 청춘들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요새는 사귀자마자 손잡고 키스하고 호텔까지 직행하는 풀코스로 데이트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들은 자신의 자유분방한 감정을 즐기고 순간의 열정에 쉽게 빠져든다. 자신들의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길거리에서 보란 듯이 키스하고 껴안고 지하철을 타서도 다른 자리가 남아돌아도 남자의 무릎에 앉아서 간다.

평범한 사람들은 남들이 보는데서도 진한 애정표현을 하는 등 거리낌없이 이성과 사귀면서도 사랑의 표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하물며 연예인들이라고 외계인도 아닌데 왜 그런 감정이 안 생기겠는가. 우리와 똑같이 감정을 느끼는 사람인데도 스타라는 허울 속에서 대중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직업병 때문에 연애조차 괴로운 실정이다.

연예인 A군도 모처럼 여자를 만나서 거사를 치뤄야 했는데 주변의 시선이 거북했다. 그래서 연예인 티를 안내려고 짙은 선글래스에 마스크까지 착용한 후 야구 모자까지 눌러쓰고 변장을 했다.

평소 실력을 발휘해서 완벽한 분장을 하고 당당하게 모텔에 들어갔다. 가뿐한 마음으로 모텔을 나서는데 종업원이 시원스럽게 인사를 하더란다. “사인 좀 해주고 가세요. 팬이에요.” 그 후로 한동안 A는 모텔 간판만 봐도 진저리를 쳤는데 이제부터는 연예인을 봐도 그냥 모른척 해주는 게 그들을 아끼는 길 일 것 같다.

입력시간 2003/04/23 13:42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