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아버지와 아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당신이나 나는 별로 다른 게 없다는 것이요. 우리는 모두 대통령이고 우리들 아버지도 대통령 이었던 것은 똑같소.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전쟁놀음으로 국민을 협박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지요. 내가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너무나 닮은점이 많소. 그래 내 이야기를 듣고 있소?”(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나는 컴퓨터를 껐소. 당신 무슨 이야기를 했었소.”(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이 채팅은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의 동상이 넘어 지는 날이었던 4월 10일에 코미디가 짙은 웹사이트 ‘생생한 일기(live Journal)’에 필명 ‘김정일’이 띄운 것이다.

이 대화 후 김 위원장의 아버지 ‘위대한 수령’, ‘영생의 주석’인 필명 ‘김일성’은 ‘일기’에 주체 92년(주체는 19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에 맞춘 연호)이 시작되는 첫날 4월15일 한숨이 깃든 일기를 썼다.

“그래 내가 금수산 궁전 유리관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주석으로 있으니 인민이 나를 잊은 것 아닌가. 나는 부시의 아들이 내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내 아들에게 조언을 해주려 해도 관심을 쏟지 않고 있어 답답해. 클린턴이 백악관에 있을 때는 즐거움도 제법 있었는데.

그는 위스키를 걸치면 곧잘 전화로 계집질 하는 법을 알려 주곤 했는데 나는 죽기 전에는 여직원을 꼬시는데 그의 방법을 택했지.” 물론 ‘생생한 일기’ 웹사이트의 ‘김정일’ ‘김일성’은 이름 모를 미국인이며 200~300명의 친구들이 채팅에 참가하고 있고 저속하지 않다.

코미디를 현실로 착각 하는 것은 비극이 틀림없다. 그러나 김 위원장과 함께 동방특급열차를 타고 2001년 7월~8월사이 24일간 러시아 여행을 안내한 콘스탄틴 폴리코프스키(러시아 연방 극동지구 대통령 전권대리)는 자신의 책에서 김 위원장 부자 관계를 다룰 때는 희극적 표현을 피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비교하면서 “김정일위원장의 삶은 절대강자였던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어 훨씬 순탄했다”고 보았다.

폴리코프스키는 2002년 2월 60세가 되는 김 위원장의 초청으로 경축사절로 갔을 때 그의 아버지의 생가 만경대를 참배하고 느꼈다. “정권이 창립자 김일성의 보호 속에 살아가고 있다. 평양에서는 사실상 한걸음을 뗄 때마다 그의 초상화와 흉상, 입상을 볼 수 있다”고 썼다.

웹사이트의 ‘김일성’이 유리관속에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것이 코미디가 아니고 비극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한반도의 절반을 숙명처럼 상속받은’ 김 위원장은 후세인과는 같은 운명으로 갈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당신의 아버지도 대통령, 우리 아버지도 대통령”이라며 벼랑 끝에서 코미디언처럼 씩 웃고 베이징으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시는 유리관속의 ‘수령’과는 달랐다. 그는 “아들이 나보고 ‘걱정말라’고 했다. 전쟁을 결정 하는 것은 위원회도 아니요, 장군들도 아니요, 오직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이 결정을 할 때의 대통령의 외로움,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들을 걱정하는 것이다”고 휴 시드니에게 말했다. 시드니는 주간 타임에 1966년부터 ‘대통령’이라는 칼럼을 10대 대통령에 걸쳐 쓰고 있다.

아버지 부시는 이라크에 ‘공포와 충격’의 침공을 하기 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군대가 91년 때보다 얼마나 막강 한가를 알아야만 전쟁을 피할수 있다. 후세인이 91년처럼 미국 군사력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전쟁을 맞는다.” “내가 미국의 자녀들을 전쟁터로 보내기로 했을 때 나의 목과 팔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긴장에 쌓였다. 내가 2차 대전에 참전한 전투 조종사였는데도 그랬다.”

이런 아버지 부시가 4월 15일 전경련 초청으로 서울에 와 청와대로 가는 날, 민주화해자주통일협의회와 부천 통일사랑노동자회 회원들은 1인 시위를 청와대 길목 세 곳에서 벌였다. 그들이 든 플래카드는 “아들은 전범, 아버지는 무기장사. 아버지 부시는 아들 교육부터 똑바로 시켜라”, “이라크 침략전쟁 지지, 파병 강요하는 아버지 부시의 방한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써 있었다.

아버지 부시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내 아들도 소박하고 진솔한 농담을 좋아한다. 미국에 와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시 대통령과 개인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충고 하기도 했다. 급서한(94년7월) 수령 아버지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칭송하는 송시를 50세 생일 때 써주었다. “만민이 칭송하는 그 마음 한결같아. 우렁찬 환호소리 하늘땅을 뒤흔든다”는 것이었다.

비록 코미디지만 수령은 유리관 속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원망하고 있다. 그런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김 위원장이 할 일은 미국의 군사력을 후세인처럼 오판 말아야 하며 한반도에 사는 민족은 한민족이며 이 땅에서의 전쟁은 반쪽의 상속마저 날려 버린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 하는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3/04/2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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