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골탈태 한총련… 학생 속으로

발전적 해체… 수배자·합법화 문제 이슈로

1993년 4월 전북대학교에서는 한국 학생운동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다. 87년 이후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 왔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가 깃발을 내리고 ‘생활 학문 투쟁의 공동체’를 내세우며 새로운 한국 학생운동의 대표 조직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출범했다.

당시 언론들은 한총련 출범에 대해 “정치투쟁 뿐만 아니라 학내 민주화, 학생들 생활 주변의 문제까지 다루는 새 학생운동 조직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학생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부의 탄압과 내부 분열로 코너에 몰렸던 한총련은 ‘해체 후 새 학생운동 조직’이라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며 위기 타개를 위해 애쓰고 있다. 상대적으로 학생운동에 대한 인식이 관대한 노무현 정부 출범과 맞물려 이적단체로 규정됐던 한총련 합법화와 수배자 문제가 사회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한총련 해체와 학생운동의 대변화

지난 13일 경희대에서 끝난 한총련 대의원대회는 한총련의 향후 행보를 점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한총련의 주축인 민족해방(NL) 계열이 두 세력으로 나뉘어 각각 의장 후보를 냈고 재투표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의외였다.

한총련의 대중적 학생운동 조직으로의 전환을 내세운 혁신 계열 정재욱 후보가 그 동안 한총련을 주도했던 반(反)외세 자주통일 투쟁 중심의 자주 계열 후보를 근소한 표차로 누르고 당선된 것이다.

정 의장은 당선 일성으로 “한총련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학생들의 생활 속으로 다가가는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정 의장의 당선은 10년 역사의 한총련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정 의장은 ‘스스로의 혁신을 통한 합법화’로 한총련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이어서 조직의 대대적인 개편 논의는 이미 점화한 상태다.

한총련 인적 구성의 변화도 이러한 움직임에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총련 관계자는 “한총련 주요 지도부인 대변인, 조국통일위원장 등에도 혁신 계열 총학생회장이 당선됐고, 한총련을 실질적으로 꾸려가는 중앙 집행국장도 혁신 계열로 채워질 예정이어서 한총련의 노선 변화는 힘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대외적인 여건도 그 어느 때보다 우호적이다. 노무현 정부는 수시로 “한총련 문제를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고 공언하면서 한총련의 변화 움직임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내부 분열과 외부의 탄압

93년 당시 전국 237개 대학 총학생회와 단과대 학생회 학생회장단을 대의원으로 하며 구성된 한총련은 총학생회장단 중심의 협의체인 전대협 보다 조직력이 견고해진 것으로 평가 받았다. ‘학생운동의 대중화’를 내세웠지만 ‘자주 민주 통일’을 한국 사회의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전대협에 비해 오히려 학생운동의 투쟁성이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그러나 96년 8월 연세대 점거농성 사태 이후 한총련은 국가보안법 상 이적단체로 규정돼 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 급속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검찰과 법원은 한총련의 강령이 “남한을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규정하면서 인민민주주의 혁명을 추구하는 북한의 대남정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97년부터 매년 200여 명의 각 학교 학생들이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이유로 구속ㆍ수배됐고, 4월 현재 175명이 수배된 상태다.

학생운동 내부의 분열도 한총련을 약화시켰다. 한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평가가 다르고, 사회적 모순 해결의 우선 순위에 있어 이견을 보이던 민중민주(PD)계열 학생들이 한총련 운영의 폐쇄성에 대해 비판하고 일반 학생들은 정치투쟁 일변도의 한총련 조직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당초 200여 개에 달하던 한총련 참여 대학 중 90여곳이 탈퇴한 것도 한총련의 위기가 학생운동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하게 만들었다.


근본적인 변화 기대는 난망

신임 한총련 의장단은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을 만들고 2~3년 내에 안정화 시킨다’는 계획 아래 연구소위원회를 구성할 방침이다. 정 의장은 “학생운동에 반감을 가진 일반 학생들과 정치적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중민주(PD) 계열 학생운동 조직을 모두 끌어 안을 수 있는 300만 한국 대학생 연합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또 “변화하는 사회 추세에 맞춰 학생운동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다면 국민들과 학생들의 학생운동에 대한 호응도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한총련의 발전적 해체와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 건설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 요구하는 ‘탈(脫)정치 순수 학생운동’은 이들의 목표가 아니다.

한총련은 지난해 대선 부재자투표소 설치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 총선에서도 진보정당과 연대해 정치투쟁을 전개할 계획이고 ‘한ㆍ미 주둔군 지위 협정(SOFA)’ 전면 개정 투쟁과 남북 학생 교류행사 개최 등 자주통일운동도 주요 활동 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정재욱 의장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여전히 자주 민주 통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총련 내부의 ‘자주’ 계열이 일선 학교 총학생회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변화의 폭을 좁히는 요소다. 자주 계열인 전남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국가보안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한총련이 마치 큰 잘못이나 한 것처럼 이적단체 규정도 철회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신임 의장단이 한총련 해체를 먼저 주창한 것은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정재욱 의장은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자주 계열 학생들도 인정하고 있어 문제는 쉽게 풀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는 “한총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 환골탈태의 뜻이 없던 한총련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 조류에 맞춰 한 발씩 양보하는 상황”이라며 “한총련은 내부를 되돌아 보며 바깥을 지향하는 열린 자세의 새로운 학생운동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상원 기자

입력시간 2003/04/25 10:35


정상원 ornot@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