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리'탄생 20년, "아기 공룡이 장가갈 때 됐어요"

국내 토종캐릭터의 자존심으로 독보적 위치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알 수 없는 둘리…”

태어난 날은 아주 오래 전이지만 정신적 나이는 아직 어린아이 수준을 면치 못함. 얼굴은 귀엽지만 배가 나온 모습에, 초능력을 가졌지만 함부로 쓰지 않는 순수한 성격. 크고 작은 사고를 쳐서 길동이 아저씨를 열받게 해 혼나는 게 특기인 아기 공룡.

만화 캐릭터 ‘둘리’가 22일로 성인이 됐다. 1983년 4월 22일 만화잡지 ‘보물섬’에 첫 선을 보인지 만 20년이다. 아기 공룡 둘리는 그 동안 수 많은 어린이들을 웃기고 울리며 만화 단행본에서부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까지 진출해 국내 토종 캐릭터의 자존심으로 우뚝 섰다.

둘리는 국내 만화 및 캐릭터 산업에 독보적인 자취를 남겼다. TV용 애니메이션 제작(87년 6부작, 88년 7부작), 단행본 만화 10권 완간(94년), 극장용 장편 만화영화 ‘아기공룡 둘리-얼음별의 대모험’상영(96년 한국영화 흥행부분 4위), 만화 캐릭터로는 세계 최초로 유엔아동기금(UNICEF)카드 후견인으로 임명(97년), 경기 부천시에 ‘둘리의 거리’조성(2001년), 대한민국 캐릭터 대상 우수상 수상(2002년).


끊임없는 변신, 치밀한 구성으로 장수

둘리는 현재 완구, 문구, 의류, 게임, 영상물 등 1,500여종의 상품에 등장해 국산 캐릭터 시장의 25%(연간 로열티 20억원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관계자들은 둘리를 만화 뿐만 아니라 국내 문화산업의 성공모델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월에는 중국 연변대학 출판사에서 만화책이 출판됐으며 앞으로 유럽과 미주, 아시아로 본격적인 라이센싱이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외의 숱한 캐릭터들이 명멸하는 가운데 둘리가 꾸준한 인기를 유지해온 비결은 무엇일까. 관계자들은 사회 흐름에 맞춘 끊임없는 변신과 치밀한 스토리 구성을 꼽는다. 이제는 ‘둘리 아빠’로 불리는 만화가 김수정(53ㆍ둘리나라 대표)씨는 “어느 가족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상적인 소재를 다뤄 독자들이 바로 ‘내 이야기’라고 친근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둘리 외에 공실아, 또치, 희동이 등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잘 어우러진 것이 장수할 수 있었던 근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생일이 22일인 것은 이름이 둘리(2가 두개)이기 때문에 정해졌다. 둘리 아빠는 아들을 위해 두 번의 생일잔치를 마련했다. 19일에는 ‘만화도시’ 부천과 공동으로 송내역 주변 ‘둘리의 거리’에서 탄생 20주년 기념식을 가졌다.

원혜영 부천시장을 비롯해 이두호 김동화 이현세 이희재 등 만화가들이 축하한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명예주민등록증 수여식이었다. 4일 부천시가 둘리를 명예시민으로 선정한 것을 기념해 명예주민등록증(주민번호:830422-1185600, 주소:부천시 원미구 상1동 412-3번지 둘리의 거리)을 정식 수여하고, 명예주민등록증을 ‘둘리’ 동상 아래에 패로 만들어 붙였다.

김씨의 사인회, 둘리 만화전시(원화전·캐릭터전), 주제가 부르기, 캐리커처 그려주기, 둘리 희망엽서 만들기 등 다양한 부대 행사도 펼쳐졌다.

22일에는 서울대 어린이 병원과 서울 서대문구의 고아원에서 둘리와 친구들 캐릭터 퍼레이드, 선물 증정 등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행사도 마련됐다.


뮤지컬 등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

김씨와 둘리나라는 이 외에도 올해 내내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2001년 공연된 뮤지컬 ‘둘리’를 첨단 텐트극장 용으로 다시 꾸며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에서 순회 공연하는 것이 가장 큰 행사다.

㈜에이콤이 둘리 공연을 위해 도입하는 첨단 텐트극장은 뮤지컬이나 서커스공연에 가장 알맞은 ‘움직이는 극장’. 객석 규모가 1,600석이나 되지만 무대와 관객석 맨 뒤까지 거리가 20㎙에 불과해 관객들이 무대의 생동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공연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전국을 순회함으로써 ‘찾아가는 둘리’가 될 수 있도록 텐트 극장에 맞게 뮤지컬을 재창작 한다. 또 5월 개관하는 서대문구 자연사박물관의 홍보를 맡아 이 박물관이 청소년들을 위해 제작하는 과학, 자연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6부작 TV용 애니메이션도 제작된다. 12월부터 한 편씩 선을 보일 이 애니메이션은 내년 초부터 공중파 TV를 통해 방영될 예정이다.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고 시나리오도 업그레이드되며 다양한 특수효과도 가미된다. 현재 김씨는 시나리오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둘리는 이제 국민캐릭터로 자리잡고 있다. 박세용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요즘 거론되는 ‘원 소스 멀티 유스’의 본보기가 바로 둘리”라면서 “우리 사회의 변화가 아주 빠르고 금방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지만 둘리는 앞으로도 20년 이상 장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75년 소년한국일보에 ‘폭우’를 연재하면서 만화가로 데뷔한 김수정씨는 17일 서울 남산 힐튼 호텔에서 열린 축하행사에서 “둘리가 한 일도 없이 나이만 먹어 스무 살이 됐는데 제 몫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앞으로 좀더 신명 나는 둘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남경욱기자 kwnam@ hk.co.kr

입력시간 2003/04/25 14:57


남경욱 kwnam@ @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