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프레소] 민영석, 호주 뮤지션과의 만남

지성파 기타리스트 민영석(37)이 ‘민영석 재즈 신드롬 Frontline of Jazz’라는 무대로 호주의 재즈맨들과 만난다. ‘2003-한국 호주 재즈 정상과의 만남’이라는 부제는 주관적이다 싶은 감이 있지만, 이 무대에 실려 있는 의미와 무게를 그런대로 잘 반영하고 있다.

민영석의 재즈는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것은 현재 한국에서 재즈라 하면 얼른 떠오르는 이미지, 다시 말해 뭔가 조금 색다르고 왠지 고급스럽다 싶은 느낌과는 약간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편인가 하면, 그의 재즈는 차갑다. 다른 말로 하면 이지적이다. 만만하게 소화되고 소비돼 쉽게 잊혀져 버리는 재즈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구사하는 가지각색의 음악 재료들은 기존 재즈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귀를 기울일 법하다. 정확하고도 기교적인 그의 재즈는 우리 시대 재즈의 얼터너티브이기도 하다.

이번 무대는 민영석의 자작곡들을 위주로 꾸며진다. ‘Rain Song’, ‘Contour Line’,‘In My Heart’, ‘개구리’ 등 신보 ‘Contour Line’에 수록된 곡들이 펼쳐진다. 복잡한 리듬이 듣는 이에게 묘한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11/4’도 연주된다. 기존의 전통적 재즈를 기반으로 한 그의 재즈는 클래식, 록,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의 민족 음악, 집시 음악 등 여러 음악적 요소를 섞어 잘 빚어낸 술이라 보면 좋다.

그는 자신의 재즈를 가리켜 ‘모호성의 음악’이라 일컫는다. 보통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 십상인 모호함이란 여기서 새로운 창작으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적극 기능한다. 그것은 우선 퓨전이란 음악 양식에 대한 원칙론적 고찰이다.

즉, 여기 저기서 음악적 편린들을 조금씩 뜯어 와 록적인 리듬 아래 즉흥 연주로 묶어 내는 기존 퓨전의 방식을 거부, 여러 음악 양식이 어떻게 하나로 묶일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는 의미에서의 퓨전이다. 그렇게 본다면 그의 음악은 포스트모더니즘 재즈라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스윙이라는 자유스런 리듬 방식에 모방과 혼용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창작법을 투여해 만든 음악이란 말이다.

1999년 민영석을 가르친 스승이자 세계적 재즈 기타리스트인 존 애버크롬비는 그를 가리켜 “자신만의 독창적 사운드를 지닌 뛰어난 뮤지션”이라고 평했다. 또 전설적인 거장인 드러머 밥 모지스는 2001년 6월 한전 아츠풀 센터에서 그와 함께 공연을 가진 뒤, “놀라운 예술적 기량을 가진 뮤지션”이라며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내한하는 호주 뮤지션들은 현지에서 최상급의 기량을 자랑하는 재즈맨들이다. 권위 있는 몽크 컴피티션 수상자인 트럼펫 주자 필립 슬레이터는 2002년 호주에서 ‘올해의 뮤지션’으로 선정된 그 곳 최고의 재즈맨이다. 드러머 사이먼 바크는 세계 재즈맨들의 초청에 답하느라 많은 날을 해외 투어로 보내는 인물이다. 이번 콘서트는 2002년 서울과 대구 등지에서 그들과 함께 공연을 가졌던 민영석의 제안으로 성사됐다.

“작년에 서울과 대구에서 한 번씩 공연을 가졌던 바커와 좋았던 기억을 다시 되살릴 수 있게 돼 기쁜 마음뿐입니다.” 기대에 벅찬 민영석의 말이다. 그가 좋았다는 것은 여타 팝 뮤지션들이 흔히 말하는 차원과는 다르다. 가수들이 보통 말하듯 공연 당일 컨디션이라든가 관중의 반응 등이 좋았다는 말이 아니다. 좀 더 들어보자.

뮤니케이션이나 테크닉 같은 것은 기본이다. “동물적으로,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어 준 뮤지션이란 말이죠.” 서로 서로 상대방이 던진 음악적 발언에 대해 즉각적으로 또한 즉물적으로 반응했고, 그것이 본인들 스스로 너무 좋았다는 말이다. 주관적인 말임에는 틀림 없지만, 재즈의 중요한 비밀인 것 또한 사실이다. 연습이나 사전 리허설 없이 현장의 충돌이 빚어올리는 기 같은 감흥의 순간은 재즈라는 예술 양식, 또는 그 창작법이 이 시대 왜 더욱 절실해지는가를 웅변해 준다.

현대 재즈의 속내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민영석은 전도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3월 16일 카페 범블비에서 펼쳐졌던 공개 레슨에서는 멜로디와 솔로의 관계, 5음계의 구사, 기본적인 재즈 즉흥 등 재즈 연주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강의를 가졌다.

또 다움 카페에는 자신의 강좌를 쭉 소개한 사이트가 마련돼 있다(http://cafe.daum.net/jazzstudy). 그는 보다 깊이 있는 음악적 질문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서는 이메일로도 접수를 받고 있다().

어렵지나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아는 만큼, 또 느끼는 만큼 얻게 될 것이니. 자신도 어떤 음악이 나올 지 정확히 모른다. 공연 직전 무대에서 만나 약간의 조율을 해 보는 게 이들 리허설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5월 22일 오후 8시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02)332-2171.

장병욱차장

입력시간 2003/04/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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