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러시아 마피아

마피아라면 미국으로 건너 온 이탈리아 시실리섬 출신의 이민자들이 결성한 범죄 조직을 떠올리기 일쑤다. 영화 ‘대부’가 상징적인데, 마리오 푸조의 원작을 바탕으로 해 시실리 출신 꼴레오네 패밀리(마피아)의 2대 흥망사를 그린 것이다.

원작은 일생동안 한번도 감옥에 가지 않을 만큼 주변 관리에 철저했던1930년대 뉴욕 마피아의 대부 카를로 갬비노를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대부로는 1929년 라이벌이었던 아일랜드 마피아를 최신 무기로 박살 낸 알 카포네, 레스토랑에서 자신의 보스를 능청스럽게 제거한 뒤 34년 뉴욕 암흑 세계를 평정한 러키 루치아노, 영화 ‘벅시’의 주인공이자 환락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벤저민 시걸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냉철한 두뇌와 재빠른 행동, 철저한 조직 관리 등으로 마피아 보스의 ‘전설’을 남겼다.

이탈리아 마피아에 필적하는 범죄 조직으로는 중국의 삼합회, 일본의 야쿠자 등이 꼽히지만 최근에는 러시아 마피아를 빼놓을 수 없다. 91년 소련의 붕괴와 함께 유럽의 이민 사회를 중심으로 해외 거점을 확보한 러시아 마피아는 이제 미국은 물론 전세계 32개국에서 6,000여 개의 조직이 암약 중인 것으로 인터폴은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 마피아는 99년 뉴욕 은행을 통해 검은 돈 수백만 달러를 세탁함으로써 범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는 월스트리트 진출을 알린 데 이어, 9ㆍ11 뉴욕 테러 사건 이후에는 빈 라덴과 알 카에다에 대량 살상 무기를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미 전형적인 마피아형 범죄인 무기 밀매와 돈세탁 등에 폭 넓게 관여한 데 이어 유럽 일부와 아시아 대륙에서는 살인, 매춘, 마약 밀거래 등에 손을 뻗친 것이다.

러시아 마피아는 공산당 1당 독재 시절 권력을 중심으로 결속력을 갖고 있던 정치ㆍ경제적 인적 결합으로부터 출발했다. 우리 식으로 TK니, PK니 MK니 하듯이 딱히 눈에 보이는 실체는 없지만, 단합된 힘을 발휘하는 결합체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마피아와 같은 조직 생리를 갖추고 있다고 해서 국민이 붙인 이름이다. 애초에 폭력을 휘두르는 조폭은 유럽식 표현인 ‘훌리건’으로, 무장한 세력은 ‘반지트’라고 부르며 마피아와 구별됐다.

그러나 정치ㆍ경제적 혼란을 틈 타 훌리건과 반지트가 마피아와 결합하거나 손을 잡으면서 오늘날의 러시아 마피아로 변했다.

러시아 마피아중에서 가장 무서운 패밀리는 역시 소수 민족 체첸인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체첸 마피아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과 93년 자웅을 겨루다 패배했던 전 최고회의(의회) 의장 하스불라토프의 전폭적인 지지로 발판을 닦은 체첸 마피아는 특유의 용맹성과 결집력 때문에 모든 이에게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 악명은 모스크바에서 슬로뱐스카야 호텔을 경영하던 미국인 사업가 폴 테이텀이 대낮 지하철역 계단에서 피격되면서 절정에 올랐다.

테이텀은 러시아측 파트너와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체첸 마피아의 총에 살해됐다는 게 정설인데, 슬로뱐스카야 호텔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모스크바 방문시 묵기도 했던 곳으로, 미국의 대 러시아 경협의 상징이었다.

테이텀에게 총탄을 퍼부은 저격수를 마피아 세계에서는 ‘히트맨’이라 불린다. 뉴욕 마피아의 흥망을 다룬 책 ‘마피아 히트’(안혁 저ㆍ 골든 북)에 따르면 ‘히트’는 바로 살인을 뜻한다. 90년대 중후반 러시아 언론에서도 자주 등장한 말이다.

96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피살된 최덕근 영사도 히트맨에게 당했다는 게 정설이고, 부산에서 사할린 출신 마피아 두목 나우모프 바실리를 감쪽같이 살해하고 달아난 범인도 전형적인 히트맨이다. 부산에서 피살된 바실리는 콘코리아 서비스라는 수산물 수출입 업체를 차려 놓고 한-러시아 수산물 교역에서 ‘큰 손’으로 활약했다는데, 그런 정도라면 러시아에서 마피아 보스라고 부르긴 약한 편이다. 검은 돈을 챙기기 위해 바닥을 훑는 중간 보스 정도라고 봐야 한다.

서방인의 시각으로 러시아 마피아를 다룬 소설은 ‘모스크바 커넥션’이다. 영국 출신의 인기 작가 로빈 무어가 쓴 이 소설은 소련 붕괴 후 무소불위의 마피아 세계를 날카롭게 파헤쳤다. 마피아와 KGB의 대결 속에 도덕적 해이에 빠진 지방 단체장을 앞세워 핵무기를 빼돌리려는 마피아 범죄를 그렸다. 무어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3년간 러시아 전역을 취재한 뒤 러시아가 시장경제의 혼돈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94년 탈고했다.

러시아인이 쓴 마피아 소설은 93년께부터 붐을 이뤘다. 가판대에 서 포켓 북으로 팔린 책들은 당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알렉산드라 마리니나를 중심으로 미하일 로고진, 이고리 프리스토포로프 등의 손과 경험에서 나왔다. 로고진은 ‘노브이 루스키’에서, 이고리는 ‘러시아 성의 노예’ 등에서 매춘과 마약 등 마피아의 사업을 정밀하게 그려냈다.

이진희 부장

입력시간 2003/04/29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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