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재보선 한나라'축배', 개혁당'경사', 민주'피박'

정계개편 물꼬 터지나

한나라당 ‘환호’, 민주당 ‘침울’, 청와대 및 민주당 신 주류 ‘안도’, 개혁당 ‘고무’….

4ㆍ24 재ㆍ보선 결과에 따른 정당 계파별 기상도이다.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 3곳 중 2승1패를 거둔 한나라당은 당초 16대 총선에서 모두 패했던 지역에서 잇달아 승전보를 울려 승리감에 들떠 있다. 당 안팎에서는 “불안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심판이 내려진 것”이라며 대여(對與) 공세를 강화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개혁국민정당도 경기 고양 갑에서 당의 핵심인 유시민 후보가 당선되자 범개혁세력 연대에 의한 개혁신당 창당을 공식 제기하는 등 한층 고무된 분위기다. 원내의석 2석에 불과한 미니정당이지만 향후 정국은 보수대 진보 구도로 짜여질 가능성이 크며, 이 가운데 개혁당이 노 대통령을 위시한 민주당 신 주류와 함께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 재ㆍ보선 결과로 당의 존립 여부를 걱정할 정도의 홍역을 앓게 됐다. 3곳 모두 민주당 지역구였지만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패퇴했고, 나머지 광역의원과 기초단체장 등 4곳의 선거구에서도 전패해 ‘7전 7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만 남았다.

특히 민주당의 ‘영원한 안방’인 전남 진도 광역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 후보(득표율 59.2%)에 비해 민주당 후보(37.0%)는 무려 22.2% 포인트 차이로 무너졌다. 텃밭에서 이 정도의 표 차이라면 더 이상 패인 분석의 여지도 없다. 한마디로 당 전체가 절대 지지층에게 불신을 받고 있다는 반증이다.

당연히 민주당 내부에서는 신ㆍ구 주류로 나뉘어 책임을 전가하는데 급급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 신 주류 측은 선거 패배에도 불구하고 ‘코드’가 같은 개혁당 유시민씨의 당선에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내년 총선이 이전의 지역대결에서 벗어나 이념과 성향, 세대간의 대결장이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면서 신당 창당 등의 정계개편 시기를 저울질 하고 있다.


충격 민주당 “이대로는 안 된다”

3곳의 국회 지역구와 안방의 광역선거마저 참패한 민주당은 “이대로는 안 된다”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주요 패인은 절대 지지층이던 호남 출신 유권자들의 소극적 지지에 따른 점을 부인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정작 이 같은 최악의 결과를 놓고도 해석은 제 각각이다.

정대철 대표 등 신 주류 측은 “16대 대선이후 변화와 개혁을 하지 못한 당에 대한 경고이지 호남민심이 근본적으로 민주당 지지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에 구 주류 측은 “노 정권의 정책과 인사 혼선 등이 호남 표심의 이반으로 작용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민주당 개혁작업의 지지부진이 참패의 원인이라 하고 다른 쪽은 호남소외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도 신ㆍ구주류의 시각은 다르다. 임종석 의원 등 신 주류는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사형이 집행된 것”이라며 개혁신당 창당을 주장하고 나섰고, 김근태, 이해찬 등 운동권 출신 의원들도 “당내 개혁을 강하게 추진해 나가되 구 주류가 거부하면 오히려 신당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이에 구 주류 측 김태랑 최고위원은 “국민이 갈망하는 새 정치를 구현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당의 분열이 근본 원인”이라며 신주류의 일방적인 당 개혁 추진을 겨냥했다.

구 주류의 다른 인사는 “텃밭인 양천 을과 의정부, 호남의 패배는 특검제와 역차별 인사 등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며 “개혁을 빌미로 특정 정파의 이익을 추구하는 신당 창당은 차기 총선에서 이번 결과를 재연하게 만들 것”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 같이 양극화된 처방안 사이에서도 현실적인 진로 모색을 위한 방법론이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개혁세력과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내년 총선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과 한화갑 전 대표의 회동 안을 내놓는 이도 있다.

어쨌든 민주당은 하반기(구 주류 7월 개최, 신 주류 10~11월 개최 주장)에 실시될 전당대회까지는 이렇게 ‘여당답지 않은 여당’, ‘집권당 같지 않은 집권당’으로 혼선과 잡음만 뒤섞인 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개혁당, 한나라당 “민심은 우리 편”

2승을 거둔 한나라당과 유시민씨를 당선시킨 개혁당은 당연히 잔칫집 분위기. 그중 개혁당은 “신당론 대세론에 불을 지폈다”고 들떠 있다. 김원웅 대표는 “지역주의 정당에 셋방살이 하는 민주당과 한나라당내 개혁세력은 기득권에 연연하지 말고 역사 앞에 당당히 나서라”며 범 개혁세력 단일정당 구성을 촉구했다.

그는 또 “개혁당의 경쟁력을 확인한 만큼 정계개편에 드라이브를 걸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치권의 구 체제와 지역주의 경쟁구도를 해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개혁당은 김 대표와 유시민 당선자가 스스로 밝혔 듯 인적 자원이 빈약하다. 당장 내년 총선에 독자 출마해 당선될 명망가도 부족하고, 개혁 바람에 의지하기에는 지역이나 기존 정당, 기존 정치권의 벽이 너무 두텁다. 사실 유씨도 ‘자력 당선’이라기 보다 민주당과의 연합공천을 통한 승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청와대와 민주당 개혁 성향의 인사들과의 연합이 불가피하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소속 정당은 참패했으나 민주당 보다 더 친숙한 개혁당 후보가 당선됨에 따라 계산서 상에서는 그리 손해 본 장사는 아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이 뿌린 대로 거둔 것이다. 이대로 뭘하겠느냐”며 이번 선거를 통한 민주당의 한계성을 지적했다. 노 대통령이 수차례 촉구한 당의 환골탈태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데 따른 결과라는 인식이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탈당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있다.

청와대 측에서도 “아직까지 그 단계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얘기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냐”라고 은근히 속내를 비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호남 소외론이 일정부분 나타난 상황에서 청와대 측에서 당 개혁이나 신당 창당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해 관여하기 보다 당분간 당내 흐름을 지켜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나라당은 오랜만에 희색이 만연하다. 대선 패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마련된 데다 새 정부가 주도하는 개혁 돌풍의 와중에서 일궈낸 승리라는 점에서 고무돼 있다. 박희태 대표대행은 “정권에 대한 경고이며 안정세력이 뜨거운 지지를 보낸 결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이 같은 승리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갈등의 씨앗이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30대 오경훈 후보와 50대 홍문종 후보는 당선됐지만 60대 이국헌 후보만 낙마했다. 자연스레 세대교체의 요구가 바닥권에서부터 힘을 얻을 수 있다.

일부 중진들은 재ㆍ보선 승리를 계기로 소장파의 당 개혁 요구를 일축하고 새 정부의 개혁정책도 대다수 안정희구세력에게 거부감을 주고 있다는 기존의 노선을 더욱 강하게 유지하고 하는 반면, 소장파들은 “더 이상 구 세대들의 정당운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독자세력화 할 뜻을 비치고 있다. 재ㆍ보선 결과가 자칫 약이 아닌 독으로도 다가올 수 있는 부분이다.

염영남 기자

입력시간 2003/04/30 15:11


염영남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