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복권 최일선에서 본 '대박풍속도'

[방담] 국민은행 복권사업팀 이인영·한희승·이병용


'당첨=파산'은 잘못 알려진 것

‘64억, 193억, 407억….’ 벼락 맞을 확률보다 어렵다는 로또 복권 당첨되는 ‘인생 역전’의 주인공들이 매주 혹은 격주로 나오고 있다. 때문에 대다수의 로또복권 구입자들은 궁금하다.

일순간에 황금 방석을 차지한 주인공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이 사람들은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쓸 계획인지, 또 로또 복권 당첨의 숨은 비결은 있는지 등. 호기심만은 아니다. 일순간 자신에게도 기회는 올 수 있다는 그 짜릿함에 오늘도 복권 부스는 발길을 붙든다.

주간한국의 요청에 따라, ‘인생역전’의 주인공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 보고 있는 국민은행 복권사업팀 세 명이 4월 25일 국민은행 여의도 지점에 모여 앉았다.

이인영 팀장(47) 한희승 과장(38) 이병용 차장(43). 이들의 눈에 비친 1등 당첨자들의 모습과 로또 복권을 둘러싼 소문의 진실은?


스마일형, 덤덤형, 자물쇠형 등 다양

이인영: 당첨자들은 대부분 온순하고 밝은 표정의 ‘스마일형’이죠. 가족과 같이 와서 복권 당첨된 사실에 감사하고 행복해 하고…. 신변 안전을 위해 사설 경호원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드뭅니다. 수요일이나 목요일에 당첨금을 찾으러 오는 ‘덤덤형’도 눈길을 끄는 경우입니다.

보통 당첨되면 월요일에 많이 오시거든요. 불안하니까. 당첨 복권을 갖고 있다가 분실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마음에 당일에 서둘러 오세요. 대부분 지방에서 오기 때문에 오후 2~4시쯤이 많죠. 그런데 수요일이나 목요일쯤 담담한 표정으로 찾아오는 분들은 부인이나 아주 가까운 가족 친지에게도 당첨 사실을 알리지 않는 ‘자물쇠’ 입을 가진 경우가 많더라구요.

이병용: 옷 차림을 보면 편한 점퍼 차림이 가장 많아요. 그야말로 서민 스타일이죠. 처음에는 서너 분이 같이 오곤 했는데 요즘은 많아야 세 분이 함께 와요. 거의 혼자 아니면 동행자 1명과 함께 오죠. 주변 사람들에 의해서 정보가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점점 더 조심하는 것 같습니다.

한희승: 아무래도 상기된 표정이 많죠.

이병용: 그렇죠. 아무래도 1등으로 오는 분들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요. 행동이나 말도 조심하고…. “저 당첨자입니다” 이렇게는 얘기 안 합니다. 신변 보호 때문에 직원들도 모르게 행동해요.

이인영: 맞아요. 407억에 당첨된 경찰관은 양복을 차려 입고 와서 우리도 그냥 회사원인 줄 알았습니다. 언론에도 그렇게 한 차례 발표했는데 우리도 속은 거죠. 또 ‘이 복권 갖고 가면 정말 돈 줄까’ 하는 마음에 긴장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종이 쪽지 하나인데 하는 마음에 복권의 진위를 확인하고 통장에 돈을 입금시키기까지 좀처럼 입을 열지 않습니다. 통장을 받고 컨설팅을 할 때라야 말문이 터지곤 합니다. 그전까지는 신문 보고 입 꾹 다물고 있어요. 기자: 컨설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이인영: 갑작스럽게 많은 돈이 들어오면 쓰는 것도 쉬운 법이잖아요. 자산을 포트폴리오 해서 관리하라고 조언해 드립니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가족을 위해서 장기 예금에 가입하고, 재테크 위해 아파트나 부동산을 사고, 그 다음에 적금이나 기부도 권장해드립니다.

이병용: 의외로 당첨자 중에 남을 돕겠다는 분이 많으세요. 저희가 말을 꺼내지 않아도 불우이웃 돕겠다는 말을 먼저 하시는 분들이 꽤 있어요. 다행이죠.

이인영: 네. 컨설팅하면서 꼭 아울러 부탁 드리는 부분입니다. 당첨금의 일부는 사회에 환원해야 그 분 마음도 편할 테니까요. 1,000만원이라도 좋다고… 고아원이나 양로원에 기부할 뜻이 있다면 반드시 알려달라고 말씀 드립니다.

93억 7,000만원에 당첨된 분은 그 자리에서 10억을 기부하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즉석에서 청구서까지 썼는데 도장이 없었어요. 사실 이미 본인이라는 게 확인됐으니 도장 없어도 찾을 수 있지만 기회를 한 번 더 드렸어요. 가족과 한 번 상의해보라고. 그 분이 돌아간 후 직원들은 다들 “다시 안 올 거다. 부인이 말리지 않겠냐”고 했어요.

하지만 전 믿었죠. 과연 그 분은 다음 월요일 날 5억 짜리 수표 두 장을 들고 나타나셨어요. 대구참사와 불우이웃 기금으로 각각 써달라고. 지금까지 만난 당첨자 중에 그 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자영업자, 회사원 순으로 당첨

이병용: 전 시골에서 올라온 노부부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세파에 많이 시달린 것 같은 정말 어려운 분들인 것 같았어요. 할아버지는 약간 술을 하고 오셨는데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할머니는 제일 먼저 당첨금으로 딸이 진 빚을 갚아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으면….이런 분들한테 당첨금이 가는 게 참 다행이다 싶었어요.

이인영: 그렇죠. 서민들이 많이 당첨된다는 것을 저희도 보람으로 여겨요. 근데 주택복권 등의 기존 복권은 진짜 서민들이 대부분 당첨됐는데 로또복권은 조금 다른 점이 있어요. 회사원의 당첨 비율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지금까지의 당첨자들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자영업자가 26%, 회사원 21%, 전업주부 19.6%, 나머지는 일용직 산업 건축업 농업 등입니다. 20~30대 회사원이 로또복권을 많이 구입하기 때문에 당첨율도 자연히 올라가는 것이겠죠.

기자: 당첨금 수령 절차는 어떻게 진행됩니까?

이인영: 절차라고까지 할 게 없습니다. 30초면 끝납니다. 신분 확인하면 바로 끝이 나요. 컨설팅을 하는 시간이 1시간쯤 걸리는 것이지요.

이병용: 네. 일단 복권을 받아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신분증 대조한 다음에 돈을 지급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인영: 이때 지급하는 돈은 반드시 통장에 넣어드리는데 그 이유는 액수가 커서 현금이나 수표는 분실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래하는 국민은행 통장을 갖고 오면 거기에 넣어 드리고, 아니면 신규로 발급합니다.

기자: 당첨자의 신변 정보 노출을 둘러싼 우려가 많은데.

이병용: 문의가 정말 많이 옵니다. 국민은행에 가면 어떻게 보호해줄 거냐고. 꼭 1등이 된 경우가 아니라도, 미리 당첨이 될 거라는 가정 하에 전화하죠. 근데 은행측에서 정보가 나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알려진 계기는 당첨자의 주변인들 때문인 경우가 많죠.

한희승: 요즘 로또복권 당첨자들은 스스로 정신 무장을 잘 하고 와요. 다들 인터넷에서 당첨자 행동 요령 같은 것도 보고 와요. 그러니까 인적 사항이 새어나갈 여지가 없지요.


당첨자 신상은 절대 비밀

이인영: 국민은행에 의해서 정보가 노출된 경우는 없습니다. 은행에는 비밀의 방이 있어요. 아무나 못 들어가는,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하기 때문에 담당자가 아니라면 다른 직원들도 1등 당첨자를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요즘은 덜 합니다만, 예전에는 1등 당첨자를 취재하기 위해 은행 1층에 기자들이 10여 명 대기하고 있어서 그들 눈을 피하느라 외부에서 만나 같이 들어오기도 하는 방법도 썼습니다.

한희승: 407억 당첨자가 나왔을 때는 은행 직원들도 많이 긴장했어요. 당첨금이 워낙 거액이다 보니 신변보호를 위해 정말 애썼는데 그 다음날인가 신문에 알려져서 매우 허탈했습니다. 정확한 유출 경로는 모르겠습니다만 스스로 밝혔다더군요.

기자: 국민은행에서도 일부 정보는 알려준다 던데요?

한희승: 어느 지역에서 어느 연령의 사람이 당첨됐다 정도입니다. 그 사람을 특징지울 수 있는 신상 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사실이죠. 예를 들면 무슨 꿈을 꿨다거나 그런 건 알려줍니다. 다른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인영: 물론 1등 당첨자의 신상 정보를 알려달라는 전화는 엄청 많이 받습니다. 당첨자가 아니라 저한테 전화를 하죠. 예를 들면 우리 단체가 무슨 일을 하는데 좀 소개해서 도와주게 해달라는 식이죠. 하지만 그런 부분은 일체 당첨자에게 얘기 안 합니다. 당첨자가 그런 기부 요청 전화를 빗발치게 받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신변 노출이 안 되는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해요?

한희승: 예전에 서울대 다니는 대학생이 1등에 당첨돼 일주일 만에 바로 유학 갔다는 얘기가 나돌았어요. 기사화도 됐지요. 그래서 은행측에서 사실 확인에 들어갔는데, 그 회차 1등 당첨자 중에는 20대 남자가 없었습니다. 순 낭설인 셈이죠.

기자: 1등 당첨자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이후 소식은 듣나요.


당천금 타간 뒤엔 대개 연락두절

이인영: 아니요. 당첨금을 타서 간 다음에는 절대 연락을 취하지 않습니다. 사생활 보호 문제도 있으니까요. 당첨자들에게 다시 연락 오는 경우도 없구요. 그렇지만 복권 당첨 전보다 향상된 삶을 살고 계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세간에는 복권 사서 잘 된 사람 없다는 말도 돌지만, 그건 아니라고 봅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90% 이상 다 잘 살거든요. 다들 어디에 기부하고 입양까지 하고 그래요.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나는 등 소수의 안 좋은 경우만 언론에서 보도하니까 크게 부풀려지는 것 같습니다.

한희승: 로또복권의 문화가 원래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게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하나의 문화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점도 있습니다. 특히 10회차 때에는 명절이라는 특수한 상황과 언론의 관심이 맞물려 상승작용이 돼, 열풍 내지 광풍이 일기도 했죠.

이인영: 아무리 로또복권이 좋아도 한 번에 50만원, 100만원어치 사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외국에서는 로또복권을 구입할 때 당첨 되면 좋고, 아니어도 좋은 일을 하는데 일조한다는 기분으로 편하게 사는데, 우리나라의 경우는 도입한 지 얼마되지 않다 보니 일시적 과도기를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로또복권에 약간의 중독성이 있긴 합니다만, 사행심 조장 비판을 받기에는 매우 약한 수준입니다. 카지노의 약 37분의 1 정도죠.

이병용: 로또복권이 생기면서 많은 평범한 샐러리맨들이 꿈을 꿨을 거예요. 저 역시 당첨이 되면 이 돈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을 해봤으니까. 워낙 당첨금 액수고 크고 해서,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었죠.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도움도 주고… 매주 1만원 투자하는데 5등만 두 번 됐어요. 4등만 되는 걸 봐도 부럽던데요.

한희승: 저도 매주 1만원어치 사는데 5등 한 번 걸렸어요. 하도 실적이 저조해서 최근에는 구입처를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궁리하고 있어요.

이인영: 처음에 딱 1회 샀는데 그 다음에는 안 삽니다. 로또복권을 총괄하다보니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겠더라구요. 근처의 식당에 가면 제 얼굴을 알아보고 번호 좀 알려달라고 사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1등 당첨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지요. 그래도 굳이 알려달라면, 본인에게 의미 있는 숫자를 조합해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라고 말씀드립니다. 본인의 생년월일이나 결혼기념일 등이요. 지난번 190억원 당첨된 분은 여자친구 생일로 4회부터 20회까지 계속 하다가 됐거든요. 말하자면 16전 17기였던 거죠.


건전한 놀이문화로 인식해야

한희승: 번호 알려달라고 하면, 저는 농담 삼아 “알면 내가 당첨되지!” 하고 넘겨요. 로또복권이 사람들에게 큰 관심을 끌다보니 제가 끼는 모임에서는 항상 화두가 되곤 하죠. 로또 번호추출기를 얻으려고 몇 년 만에 전화한 친구도 있어요.

로또복권의 수익금 사용처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죠. 수익금은 서민주택을 짓고 산림을 녹화하고 중소기업 창업 자금으로 쓰는 등 정부 10개 부처의 고유한 사용 틀이 있습니다. 조금만 지켜봐주시면 정부에서 투명하게 공개할 것입니다. 이렇듯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이지만, 당첨자들이 복권 사업팀 나가면서 환한 미소를 지을 때는 정말 보람을 느낍니다.

이인영: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당첨금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일주일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건전한 놀이문화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건전한 기부 문화로 정착되길 희망합니다.

로또 당첨되려면 연속 숫자를 노려라
   
로또 1등의 변수는 ‘연속 숫자’다. 19회(38, 39, 40)차 로또 추첨에서 407억원이라는 거액 당첨금이 터진 것이나, 21회(17, 18과 31,32)차에서 23명의 1등 당첨자를 배출한 것은 연속 숫자의 영향이 가장 컸다.

지금까지 21회차 로또 추첨에서 당첨번호에 연속 숫자가 한 쌍 이상 포함된 것은 이번 21회차를 포함해 모두 13번으로 절반이 훨씬 넘는다. 이 가운데 연속 숫자가 두 쌍 포함된 경우도 6번이나 된다.

로또 복권 구입자들은 45개 숫자 등 단 6개를 골라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의식적으로 연속 숫자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연속 숫자에 대한 실제 로또 추첨 결과는 일반적인 확률 이상이다.

19회차 이전까지 최고 당첨금을 기록했던 15회차의 경우에도 ‘3,4’와 ‘30,31’ 등 연속 숫자가 두 쌍이나 포함돼 있었다. 미래사회전략연구소의 최종은 과장은 “그 동안의 추세를 살펴볼 때 인접한 두 숫자를 잘 조합하여 번호를 선택하는 것이 고액 당첨을 위한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번호대별 출연 빈도 분석에서는 30번대 번호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 1회부터 21회차 추첨까지 제20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30번대 번호가 최소 1개 이상 뽑혔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4/30 16:52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