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외모가 내 자산"

못난이 개성시대 연 연예계의 반란자들

“연예인이라고 명함 내밀려면 적어도 ‘옷발’ ‘화장발’은 받아야지. 제 아무리 능력 있고 끼 있어도 ‘기본’이 안 되면 다 ‘꽝’이야. 브라운관에 시각공해(?) 만들 일 있어?”

몇 년 전만 해도 ‘꽃다운 나이’와 ‘용모 단정’은 연예인의 필수 사항이었다. 핑클이나 SES같은 꽃띠 소녀들이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고 춤을 추며 브라운관에 나타나면 시청률 상승은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수 뿐만 아니라 탤런트, 영화배우 심지어 개그맨까지 연예인이라면 일단 외모가 받쳐줘야 했다. 여자라면 더욱 그랬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연예계 ‘성공의 법칙’이 무너지고 있다. 2월 첫 앨범을 발표한 뚱뚱하고 편안한(?) 4인조 여성그룹 빅마마는 4월 둘째 주 처음으로 음반판매 차트 1위를 차지하면서 3주째 정상을 고수하고 있다.

“예쁜 것들은 다 죽었어!”라는 구호를 외치며 여성가요 시장에 뛰어든 ‘버블 시스터즈’는 아예 ‘안 생긴 외모’를 전략으로 내걸고 인기몰이에 나섰다. 고 이주일 이후 가장 못 생긴 개그맨이라는 ‘옥동자’ 정종철과 개그우먼 겸 MC인 ‘귀여운 뚱녀’ 조정린의 활약도 눈부시다. 그야말로 ‘못난이 전성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소탈하고 친근한 외모로 차별화

이들은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녔지만 묘한 공통점이 있다. 여자 신인 그룹이면서 김건모 조성모 이승환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과 경쟁해서 당당히 앨범 판매 1위를 거머쥔 빅마마는 아무리 잘 봐줘도 예쁘다고는 할 수 없는 외모다.

더구나 리더인 신연아는 서른에 가까운 나이. 순진하게도 이들이 믿는 것은 노래 실력 뿐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가요계 불황의 시기에 이례적으로 ‘대박’을 터트리며 가요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당초 이들을 바라보던 싸늘한 시선은 요즘 감동으로 바뀌었다. 심지어 공간 면적을 넉넉하게 끌어올린 오피스텔에 ‘빅마마 오피스텔’이란 별칭이 붙는 등 사회 전반에 거센 ‘빅마마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버블 시스터즈는 또 어떤가. 얼굴엔 온통 검은 분칠을 하고 레게파마 머리에 흑인 분장으로 무대를 요란하게 뒤흔드는 그녀들의 모습은 과히 ‘엽기적’이다. 하마터면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릴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덕분에 수많은 화제를 뿌리며 스타덤에 올랐다.

‘여자 김건모 4명’이라는 영광(?)스런 별칭도 얻었다. 하여튼 무대 위에서 신명을 다하는 이들을 보노라면 못 생긴 외모로 인해 오히려 ‘노래 잘하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안 생긴 외모’로 스스로를 차별화하는데 성공했다.

“쭉쭉빵빵이라는 아름다움에 대한 대표적 가치가 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범람하고 있는 것이 요즘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예전에는 TV를 켜야만 빼어난 선남선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주변 동네만 돌아다녀도 예쁘고 세련되게 차려 입은 여자들을 얼마든지 쉽게 볼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잘난 연예인들에게 식상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은 순수하게 노래로 승부하겠다는 빅마마나 버블 시스터즈의 소탈함에 오히려 신선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문화평론가 김종휘씨가 말하는 이들의 인기 비결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주눅 들지않는 당당함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정종철을 보자. 그는 꽃미남 전성시대인 연예계에 반기를 들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성대모사(특히 게임뮤직)로 요즘 초등학교 학생 사이에서 단연 인기 ‘짱’이다.

‘옥동자’라는 개념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예전에는 아이를 가리켜 ‘옥동자’라면 하면 칭찬이었는데, 요즘 애들에게는 욕이 됐다. 정말 ‘못 생긴 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드름 투성이의 거친 피부에 찢어진 눈 등 희한하게 생긴 그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부르짖는다. “헤헤헤. 얼굴도 깨끗한 것들이 잘난 척 하기는, 적어도 내 얼굴 정도는 돼야지잉~.” 그러나 그의 이 황당한 말은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가.

개그작가 장덕균은 이러한 그의 성공은 오랜 아픔을 겪으면서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전환하는 미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종철이는 사실 초등학교 때 졸업 앨범에서 본인의 얼굴 사진을 오려낼 정도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성형 수술 대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주입시켰습니다. 그의 외모에 상반되는 ‘옥동자’라는 터무니 없는 발상으로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통쾌하게 뛰어 넘은 것입니다.”

장 작가는 “약점을 억지로 고치려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아가 이를 장점으로 믿게끔 만드는 그의 당당함이 사람들의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진단한다.

제2의 박경림으로 불리는 개그우먼 겸 MC인 조정린의 활약도 대중의 내면 정서를 보여준다. 그녀는 최근 SBS ‘가슴을 열어라’의 메인 MC로 발탁됐는가 하면 예쁜 여성들의 전유물로 인식됐던 뮤직비디오에도 주인공으로도 뽑히며 꽃미녀 연예인들을 기죽이고 있다. 그녀는 다음 카페에서만 회원이 2만5,000여 명이다.

조정린은 주로 10대 중ㆍ후반의 ‘누나’ ‘언니’ 부대를 몰고 다닌다. “처음에 정린씨가 눈에도 안 들어왔는데 볼수록 귀여운 거 있죠. 이러다 사랑에 빠지면 어이할 지… 심은하보다 더 이뻐 보인다”(코요테) “머리 스타일 정말 깜직해요. 여자들이 봐도 너무 귀여워요. 정린 언니 러빙 유~.”(뽀미지훈)


외모 지상주의에 통쾌한 일격

이처럼 평범한, 혹은 못생긴 스타들이 인기를 얻는 가장 확실한 비결은 시청자들의 ‘자기동일시’에 있는 것 같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못난 얼굴의 열악한 조건으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는 자체가 각박한 현실에서 위안과 숨통을 틔워준다.

“사실 정종철의 외모가 미남의 기준으로 비춰진다던가, 조정린이 누나 부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방송을 통해 이러한 편견의 틀을 연속적으로 깨고 있죠. 이들의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자신감을 새롭게 얻는 것 같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심광현 교수의 분석이다.

현실에 잘 나고 못난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TV에서 자신과 비슷한 혹은 못하다고 생각되는 스타들이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대중들은 편안함과 함께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얘기다.

고려대 심리학과 성영신 교수 역시 대중이 이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심리적 편안함이 연예계에 ‘못난이 열풍’ 현상을 불러온 주요인이라고 분석한다.

“연예인의 기준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보통 사람들보다도 떨어지는 외모의 스타들은 대중의 자존심을 높여주는데 기여합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렇게 나쁘진 않다는 식으로 안도감을 얻죠. 특히 열악한 조건 속에서 각고의 노력으로 만인의 환호를 받는 스타가 됐다는 사실은 뿌듯함도 함께 안겨줍니다.”

이처럼 외모가 좀 떨어져도 성격 좋고 열심히 노력하면 인기와 성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세상은 덜 각박하다. 빅마마나 버블시스터즈, 정종철과 조정린 등 외모보다 능력과 끼로 승부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대중들의 숨겨진 바람은 바로 이것인지 모른다. 가수는 노래 잘 하고 연기자는 연기 잘 할 때 예쁘게 보이는 법. 그래서 이들의 독특하고 개성 있는 외모는 더욱 빛을 발한다.

홈쇼핑 인기 다이어트 모텔 표은진
   


"살아 살아, 고마운 내 살아"

키 163cm, 몸무게 83kg. 홈쇼핑 채널에서 최고의 모델로 각광 받고 있는 표은진씨의 신체 비밀이다. 날씬할수록 대접 받는 세상이지만, 홈쇼핑 광고 속에서 그녀는 언제나 주인공이다. 화면에 그녀가 나오면 해당 상품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간다.

표씨는 다이어트 제품의 사용 전 모습을 보여주는 비포(before) 모델이다. ‘날씬녀’와 비교되는 ‘뚱뚱녀’ 역할의 그녀에게 풍만한 몸매는 가장 중요한 성공 조건이다. 표씨는 “몸무게 줄면 큰일나요. 얼마나 고마운 살들인데요”라며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시부모를 모시고 사는 평범한 결혼 4년차의 주부인 표씨가 모델로 데뷔한 것은 1년 전. 연극영화과 출신의 시누이가 한 홈쇼핑에서 급하게 뚱뚱한 아줌마를 찾는다는 소식에 그녀를 적극 추천했다. 얼떨결에 출연한 광고 한 편으로 그녀는 홈쇼핑 인기 모델로 떴다.

“급히 흰색 면 티셔츠와 반바지를 준비해 오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어요. 근데 난데없이 티셔츠 소매를 위로 걷어 올리더니 제 팔뚝에 전자파 기구를 갖다 대고 팔뚝살이 ‘위잉’ 떨리는 모습을 촬영하는 거예요. 생전 처음 찍는 광고라서 공들여 화장도 하고 갔는데 황당했죠. 그래도 물건이 ‘대박’을 터트려 뿌듯했어요. 그래서 아예 뚱보 전문 모델로 나섰지요.”

뛰어난 순발력을 갖춘 표씨는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진정한 ‘연기파’. 운동을 하고 난 후 빵을 우적우적 씹어먹거나, 변기 위에서 고통스러운 듯 휴지를 물어뜯는 등 대본에도 없는 애드립을 척척 해낸다. 그럼에도 NG를 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상황 대처력이 뛰어나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나오는 화면을 의식할 만한데 그녀는 태연하다.

“뚱뚱한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생각에서 의상 하나도 정성껏 준비한다”는 표씨. 그녀는 개성 있는 연기자로 더욱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기 위해, 영화출연도 꼭 해보고 싶다는 꿈을 밝힌다.

 

배현정 기자

입력시간 2003/04/30 16:57


배현정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