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살아있는 예술학교


■ 로베르네의 집
장은아 지음/시공사 펴냄

20세기에 ‘바토라부아르’가 있었다면 21세기에는 ‘로베르네의 집’이 있다.

1900년대 초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자리잡은 허름한 아파트 바토라부아르는 위대한 화가와 시인들을 길러냈다. 피카소, 모딜리아니, 마티스, 블라맹크, 아폴리네르, 자코브…. 이 곳은 당대 예술의 중심지이자 혁신적인 미술 운동의 구심점이었다.

1999년 11월 작업공간이 없는 30여명의 예술가들이 파리 도심 한 복판인 리볼리가 59번지의 한 버려진 건물을 점거했다. 이 건물은 프랑스 정부가 폐쇄시켜 몇 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고 있었던 빈집. 무단 점거자들은 쓰레기 더미를 모두 치운 뒤 그들만의 작업 공간이자 전시 공간을 만들었다. 바로‘로베르네의 집’이다.

‘로베르네의 집’에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무작정 그림이 좋아 화가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 많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유명화가는 아니지만 이들은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예술작품을 전시하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예술가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관객과 언제든지 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에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이 곳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술학교라고 생각한다.

이 곳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화공간이 됐다. 관람객 수(년간 4만명)가 퐁피두 센터와 국립현대미술 화랑인 주 드 폼미에 이어 세번째다. “도시 안에서 숨 쉴 수 있는 장소”(르 몽드), “가장 원초적인 현대미술의 중심”(누벨 옵세르바퇴르) 등 언론의 찬사도 끊이지 않는다.

파리에서 미술공부를 한 뒤 유럽에서 비디오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지은이는 2002년 여름 불법 점거 아틀리에를 찾아갔다. 그리고 한결같이 창조적이고 열정적인 에너지가 넘쳐나는 이 집 식구들을 한명 한명 만났다. 그들과 인생에 대해, 예술에 대해 주고 받은 이야기들을 꼼꼼히 기록했다.

이 책을 쓰면서 지은이는 이 집을‘59 리볼리 바이러스’라고 이름 지었다. 수많은 파리지앵의 감성에 자유로운 삶의 철학과 예술혼을 전염시키고 있음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2003/05/14 11:06


최성욱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