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닥의 진실은?… 뇌관 터지나

연예계 마당발 서병화씨 피살사건

채무관계·여배우와의 치정 등 살해동기 추측무성
배병수 피살사건 재판 될 가능성 높아

‘연예계 마당발’ 서병화(45)씨 피살 사건이 연예계에 큰 소용돌이를 일으키고 있다.

10여년 동안 서울 강남에서 유명 유흥주점을 운영해 왔던 서씨가 연예계 인사와 워낙 폭 넓은 관계를 맺어 왔기 때문에 ‘서씨 피살사건’이 1994년 12월 인기탤런트 최진실씨의 매니저 배병수씨 살해사건 보다 더 큰 파장을 몰고 올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


복잡한 피살 수수께끼

지난 4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N아파트 503호 주방에서 가슴과 어깨 부위를 예리한 흉기로 14군데 찔린 서씨가 엎드린 채로 발견됐다.

서씨는 지난 달 29일 경기 모 골프장에서 유명 영화감독 A씨, M엔터테인먼트 부사장 이모(34)씨와 함께 골프 약속이 잡혀 있었으나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평소 서씨와 친분이 상당했던 이씨는 경찰에서 “약속 시간을 비교적 철저히 지켰던 서씨가 전화까지 받지 않아 닷새 후인 5일 서씨 집에 들렀다가 변사체를 발견해 신고했다”라고 진술했다.

시신 발견 당시 부패정도가 심해 냄새가 아파트 전체로 진동했으며, 경찰은 범인이 적어도 1주일 전에 살해한 뒤 유기했을 것으로 보고 범인 검거에 나섰다. 경찰은 수사 이틀 만인 6일 주요 살해용의자로 P연예기획사 대표 김모(46)씨를 전격적으로 긴급체포하고, 이틀 후인 8일 살인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이 이처럼 범인을 빨리 검거할 수 있었던 것은 시신 옆 핏자국 위에 생생히 남아있던 235㎜ 크기의 발자국이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아파트 출입문을 강제로 연 흔적이 없고, 금품이 그대로 현장에 남아 있었던 현장에서부터 ‘피살 수수께끼’를 풀어가던 경찰은 수사 초기부터 면식범 소행으로 단정짓고 용의자 추적에 나섰던 것.

서씨 주변 인사 탐문 도중에 김씨가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앓아 양발이 기형적으로 모두 짧았던 것을 밝혀냈고, 지난 2월부터 서씨와 김씨가 채무관계 등으로 자주 다퉜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단골 레퍼토리, 또 모욕감이 살해동기?

김씨가 경찰에서 밝힌 범행 동기는 서씨가 빚 독촉을 하면서 신체적인 결함을 자주 언급했고, 가족들에게 협박 전화를 일삼아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 실제로 김씨는 지난 1, 2월 수차례에 걸쳐 P연예기획사 운영자금 명목으로 5,800만원을 서씨로부터 빌렸고, 회사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탓에 빚을 제때 못 갚아 빚이 7,500만원까지 늘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가 운영하는 P연예기획사가 디자인 분야에서 상당한 지명도가 있는 ‘알짜배기’ 회사인데다 김씨가 “1억 정도는 전화 한통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범행동기에 관한 무수한 추측이 오갔다. 김씨가 기자들 앞에서 느닷없이 “서씨는 톱스타 S양과 M가라오케에서 관계를 맺었다”라는 폭탄선언을 하면서 이런 의혹은 더욱 증폭됐다.

우선 김씨와 서씨가 여자 연예인 K씨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에 빠진 적이 있기 때문에 치정극의 말로라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섹스비디오 사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여배우의 이름도 신빙성 있는 주변인의 증언과 함께 오르내렸다.

서씨가 김씨의 청탁을 받고 여배우의 영화 출연을 부탁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추측에도 힘이 실렸다. 연예가에서는 김씨가 이 여배우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이 내용이 비디오 테이프로 녹화되어 있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졌으며, 적어도 서씨가 이 비디오를 공개하겠다고 협박을 했거나 이 비디오를 직접 본 후 김씨의 성적(性的) 능력을 비하하는 욕설을 일삼는 바람에 살해했다는 것.

이와 함께 서씨와 김씨가 연예인 K씨를 두고 삼각관계에 휘말렸다는 얘기도 신빙성 있게 제기됐다.

경찰은 이런 추론들에 대해 일단 “근거 없는 소설들”이라며 부인하면서도, 공범 여부나 다른 범행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한 보강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은 사고 시점에 아파트에서 여자 비명소리가 났다는 이웃 주민들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지문 등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식 감정을 의뢰했다.

또 한달 전부터 김씨가 “서씨를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점과 경찰의 서씨 시신 발견 일주일 전인 28일께부터 연예계에 “서씨가 흉기에 찔려 숨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1,000여개의 명함과 수첩, 휴대폰 번호의 진실

서씨에 대한 연예계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연예인과의 폭넓은 친분을 무기 삼아 연예인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 ‘마당발’이라는 호평을 얻었다. 실제로 서씨가 업주로 있는 강남구 논현동 M가라오케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출입이 불가능했을 만큼 연예인들의 출입이 잦았다. 실제로 이 유흥주점은 10여개 룸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일부 인사들은 서씨가 영화, 연예기획사, 연예계 관계자 등에게 돈을 빌려준 뒤 원금 회수 과정에서 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고리대금업자라는 혹평을 했다. 이 때문에 서씨 주변인들이 서씨의 성에 빗대 그를 ‘쥐새끼(鼠)’라고 불렀던 것도 이런 연유다.

서씨가 연예계 인사와 본격적인 접촉을 한 계기는 90년대 초반 강남구 논현동에서 G주점을 운영하면서부터. 당시 유명 개그맨 등 연예인들의 단골 술집으로 이름이 나면서 서씨는 수십억원대 재산을 모았으며, 몇 년 전에 M가라오케를 새로 오픈 했다. 서씨는 ‘색즉시공’에 1억원을 투자했으며,‘낭만자객’등 영화등에도 투자를 물색하는 단계였다.

경찰은 서씨의 자택에서 명함과 수첩, 휴대폰2개를 입수했다. 당시 서씨의 서재에는 명함 1,000여개가 발견돼 서씨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넓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줬다. 실제로 서씨는 연예계 인사 뿐만 아니라 정계, 경찰 관계자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쌓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첩에도 유명인사의 이름이 즐비했으며, 휴대폰 2개에 저장된 전화번호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로 인해 서씨 명의의 휴대폰에 1번으로 저장된 ‘경아’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톱스타 A양이다’, ‘전직 호스티스다’라는 설이 분분했다. 당사자들이 한결 같이 어이없는 말이라고 진화에 나섰으나 그만큼 피해자 서씨가 여자 연예인 S, C, Y, K씨 등의 후원자 및 연인으로서 아낌없이 지원을 한 탓에 이런 오해를 사게 됐다.


연예계 뇌관 터질까

서씨 피살사건은 여러 점에서 배병수(당시 36세)씨 피살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배씨를 살해한 전용철(당시 21세)씨는 “비인간적인 처사를 참을 수 없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으나 연예계 주변에서는 배씨가 거느린 여자 톱 탤런트들과 연관된 것이 진짜 원인일 것이라는 추측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전씨가 입을 열지 않는 바람에 연예계 비사는 묻히고 말았다.

서씨 피살사건도 일단은 배씨 피살사건과 비슷한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피의자 김씨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일관되게 “공범은 없고, 범행동기는 빚독촉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모멸감”이라고 진술하고 있기 때문.

피살 사건 이후 서씨와 친분이 상당했던 주변인물들이 한결같이 서씨와의 관계를 부인하거나 잠적한 점도 진실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빈소에는 화환 3개만 놓였을 만큼 초라했고, 가족 외에는 문상한 연예계 인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연예계 뇌관이 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경찰도 “서씨 피살과 직접 관련이 없더라도 연예계 내부 비리 등이 포착될 경우 인지 사건으로 수사할 수도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과연 서씨 피살사건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정원수 기자

입력시간 2003/05/14 11:26


정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