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대물림, 절반의 홀로서기

연예인 2, 3세… 부모후광으로 순탄한 입문, 성공까진 먼길

카밀라(26)와 노은미(21). 최근 일간지나 스포츠지에 연예계 데뷔를 알리는 이들의 인터뷰기사가 실렸다. ‘Goodbye’를 타이틀곡으로 앨범을 발매하고 방송 등에 얼굴을 내밀며 본격 가수활동에 나선 카밀라와 여성전용금융사의 CF모델로 나서 연예계에 첫 발을 딛고 연기자의 길로 나서려는 노은미.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우리 대중문화의 한 시대를 풍미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톱스타를 어머니로 뒀다는 점이다. 카밀라 어머니는 폭넓은 성량과 뛰어난 가창력, 그리고 파워 넘치는 카리스마로 청중을 압도하며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현재에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패티김 이다.

노은미의 어머니는 1966년 김수용 감독의 영화 ‘유정’ 주연 공모에서 1,300여명의 경쟁자를 물리치며 화려하게 은막에 데뷔해 문희, 윤정희와 함께 한국 영화 최전성기인 1960년대 후반을 찬란하게 수놓은 제 1대 여성 트로이카 스타의 한 명인 남정임 이다.


영화계, 가요계에 종횡무진

카밀라와 노은미처럼 요즘 연예계는 연예인 2세뿐만 아니라 3세들까지 속속 등장해 브라운관, 스크린, 그리고 무대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연예인 2세로 부모들의 인기와 명성에 버금갈 정도로 맹활약하는 연예인으로는 1960년대 개성파 연기를 펼쳤던 영화배우 이예춘의 아들로 영화와 브라운관을 누비며 다양한 연기를 펼치는 이덕화, 악역 전문으로 최고의 연기를 보였던 허장강의 아들 허준호, 1960~1970년대 ‘용팔이’ 라는 별칭으로 액션배우의 대명사로 불린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 허장강과 더불어 악역 전문 배우로 나섰던 독고성의 아들 독고영재 등이 있다.

드라마 ‘흐르는 물처럼’, 영화 ‘싱글즈’ 등에 주연으로 나선 김주혁은 탤런트 김무생의 아들이고 드라마 ‘해뜨는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연기를 하고 있는 남성진은 중견 탤런트 남일우 김용림 부부의 아들이다.

가요계에서 활동하는 2세 연예인도 적지 않다. 영화배우 황해와 톱스타 가수 백설희 부부의 아들 전영록은 1980년대 댄스 음악의 선두 주자로 인기를 누리며 요즘에도 무대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1930년~1950년대 톱가수였던 고복수 황금심 부부의 아들 고영준도 역시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탤런트 겸 연극배우 주호성의 딸은 가수, 탤런트, 영화배우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나라이며 구봉서와 쌍벽을 이루며 한국 코미디사에 한 장을 기록한 서영춘의 아들은 개그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동균 이다.

3세 연예인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난 연예인은 1920년대 영화계에 데뷔해 나운규의 ‘옥녀’ ‘사랑을 찾아서’ 등 1950년대까지 스크린에서의 ‘눈물의 여왕’ 으로 군림했던 전옥을 할머니로, 그리고 그 뒤를 이어 1950~70년대 청춘의 우상으로 떠올랐던 연예인 부부 최무룡-강효실을 부모로 둔 최민수다.

그는 1985년 영화 ‘신의 아들’로 데뷔해 드라마 ‘모래시계’, 영화 ‘테러리스트’ 등에서 터프한 남성상의 대명사로 부상하며 그의 이름 석자만으로 최고의 관객을 동원하는 스타로 군림하고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점령하며 톱스타 자리에 올라, 보기 드물게 전옥-최무룡-최민수로 이어지는 최고의 배우의 가문을 잇고 있다.


부모가 최대 후원자

이처럼 연예인 2, 3세들의 연예계 진출 붐이 일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연예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위상의 변화이다.

부모 대에는 광대를 천시하는 유교적 분위기의 팽배로 인해 연예인은 천한 딴따라라는 부정적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아 자식들의 연예계 진출을 막았으나 근래 들어 이러한 연예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라지고 대신 젊은이들의 선망하는 직업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예인 부모들이 자식들의 연예계 진출을 막지 않는 것은 물론 방송과 신문 등에 나와 자식들의 인기와 홍보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 적극적인 후원자로 나서고 있다.

또한 사회적 위상의 격상과 함께 연예인이 출연료, 모델료, 음반 판매액 등을 통해 엄청난 수입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을 몸소 느끼면서 부모들은 자식들이 끼만 있다면 연예계 데뷔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이밖에 가정에서 부모들의 연기를 보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연예계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 진로를 연기자나 가수로 정하는 것도 연예계 진출 붐에 영향을 미친다. 연예인 2, 3세의 상당수가 대학에서 연극영화나 방송연예, 실용음악 등을 전공하는 것은 이를 잘 말해준다.

무조건 연예인 부모를 뒀다고 해서 연예계 진출에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무수한 연예인 2세들이 연예계에 진출했으나 대중의 외면을 받아 부모 위치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 채 좌절하고 연예계를 떠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최민수를 비롯한 스타 대열에 들어선 2, 3세 연예인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분명 일반인들보다 연예인 2, 3세들의 연예계 데뷔는 유리하다. 연예계의 메커니즘에서부터 대중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자세에 이르기까지 일반 연예인 지망생에 비해 부모로부터 훨씬 다양한 정보를 얻고 연예계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기자나 가수인 부모의 후광에 따른 광고 홍보효과도 무시하지 못하는 유리한 점이다. 한 해에도 수 백 명에서 수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내일의 스타를 꿈꾸며 연예계에 데뷔하지만 신문 지상이나 방송 등에 소개조차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 대중의 시선 한번 받지 못하고 연예계를 떠나가야 하는 상황에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황금연못’ ‘최고의 사나이’ ‘젊은 날의 링컨’ 등에서 미국적 가치와 중산층의 성격을 대변하는 인물로 미국 최고의 배우로 칭송 받았던 헨리 폰다의 딸 제인 폰다가 영화 ‘키다리 이야기(Tall Story, 1960년)’로 배우로 데뷔할 때 신문, 잡지 기사와 칼럼을 한번 보자.

‘아버지를 닮은 미소와 코러스걸 같은 다리를 가진 제 2세대 폰다’(Time), ‘헨리 폰다로부터 물려받은 그녀의 약간 뒤집힌 코, 푸른 눈, 갑작스런 미소 그리고 재능을 가지고 있다’ (Life) 등 한결같이 아버지와 연관해 그녀의 데뷔 소식을 전했거나 심지어는 ‘이 영화(키다리 이야기)는 헨리 폰다의 딸 제인이 데뷔를 하지 않았다면 이 지면에서 리뷰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Films in Review)는 극단적인 표현을 구사하며 제인 폰다의 영화 데뷔에 아버지의 후광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이것은 제인 폰다의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우리 2, 3세 연예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 인기가 부담되기도

하지만 이처럼 연예인 부모가 연예계의 출발의 이점으로 분명 작용하지만 적지 않게 스타로의 가는 길에 걸림돌로 작용하기도 한다. 특히 부모가 정상의 톱스타였다면 더욱 그렇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신체적, 문화적(연기와 노래)인 것에서부터 생활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특성의 상속에 대한 부담감은 일반 연예인들은 체감할 수 없는 것으로 2, 3세 연예인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원초적 본능’ ‘월스트리트’ 등 주연으로 할리우드 톱스타인 마이클 더글러스는 “아버지(커크 더글라스)의 연기 개성이 강해 연기자로서의 인생에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최민수 역시 “아버지의 연기나 삶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무수한 언론과 대중이 늘 아버지의 연기와 비교를 해 부담이 되었다”라는 말을 해 연예인 2, 3세 연예인들이 감내해야 할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그리고 연예인 2세들은 스타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부모의 문화적 상속을 발전적으로 수용하거나 뛰어 넘어야 한다. 그러나 워낙 개성과 뛰어난 재능으로 인정받았던 부모이기에 이 작업은 매우 힘들다. 이 과정에서 중도 포기하는 연예인 2, 3세들이 속출한다.

1980년대 잠시 트로트 가수 활동을 했던 정재은은 끝내 어머니인 이미자의 명성과 노래 스타일의 비교의 덫에 걸려 대중의 관심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스타 가수로서의 꿈을 접어야 했다.

박노식의 아들 박준규는 최근 한 방송에서 “아버지와 비교 당하는 것은 2세 연예인의 숙명이다. 아버지의 연기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나의 연기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점 때문에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분발할 수 있었다” 며 톱스타 아버지를 발전적 기제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연예인 2세들은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에서 노력한다. 하나는 연기 스타일이나 노래 스타일을 부모의 그것과 같은 방향에서 추구해 더 능가하는 경우와 부모와 전혀 다른 개성과 분위기로 부모의 재능과 명성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수세미의 푸른 빛 보다 수세미에서 나오는 물이 더 푸르다고 했다(靑出於藍, 靑於藍(청출어람 청어람)). 하지만 연예계에 있어서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즉 부모를 능가하는 연예인 2, 3세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5/14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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