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의 경제서평] 식량독재와 녹색혁명의 허구

■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반다나 시바 지음/류지한 옮김/울력 펴냄)

이 책의 원제는 ‘빼앗긴 식량: 세계 식량공급의 강탈(Stolen Harvest: The Hijacking of the Global Food Supply)’이다. 이만큼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요약해 잘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식량 체계와 농업 체계를 파괴하는 세계적 기업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러한 파괴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운동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성장’의 허상ㆍ허구로부터 출발한다. 산업경제에서 성장이라는 것은 사실 자연과 사람들로부터의 약탈에 불과한데, 농업 부문에서는 더욱 그렇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약탈은 경제의 세계화와 더불어 가속화하고 있어 저자는 우선 세계화에 대한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화의 상징인 세계무역기구(WTO)의 창설은 자연과 인간으로부터 약탈한 수확에 기반을 둔 기업의 성장을 제도화하고 합법화했다는 것이 저자의 기본 시각이다. 시장 개방을 통한 무역 자유화는 농업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종자와 곡물, 농업 관련 제품을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난한 나라는 자신들이 먹을 곡물보다는 달러를 위해 수출용 곡물을 재배하고 대신 선진국에서 들어오는 과잉 생산물을 소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난한 나라는 더욱 가난해지고 음식 문화의 다양성도 사라진다. 이 같은 악순환은 꼬리를 물면서 더욱 심화한다.

저자는 또 배고픈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는 녹색 혁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몇 가지 작물의 단일 재배를 근간으로 한 기계화와 엄청난 양의 살충제 및 비료 살포를 수반하는 산업용 농업인 녹색 혁명은 높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자랑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소수 작물의 과잉 생산은 유통 구조를 왜곡하고 강제적인 시장 개방을 요구하며, 과도한 살충제 및 비료 사용은 환경 파괴와 직결된다. 결국 기본적인 경제법칙에서 보면 산업형 농업이 전통적인 노동집약적 생산 방식보다 효율적인 것은 아니다는 주장이다.

식량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말해지는 생명공학을 이용한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냈다고 하지만 이는 자연과 농민들이 수대에 걸쳐 이룩한 혁신을 약탈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현 시대를 소수의 다국적 기업들이 세계 식량 공급을 통제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그것을 재편하고 있는 식량 독재의 시대로 규정한다. 자유 무역은 부유한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식량권과 생명권을 강탈하는 강제된 무역이며, 특허와 지적 재산권이라는 명목으로 생명체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자연의 수확을 약탈하는 생물 해적 행위라고 비판한다. 한 마디로 식량 전체주의 시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맞서야 하나. 저자가 내세우는 것은 식량 민주주의다. 식량 민주주의는 식량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기업의 약탈을 막고 인간의 식량권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자유무역 질서를 생태학적이고 정의로운 식량 생산 분배 체제로 바꾸고, 모든 종의 본래적 가치를 인정하고 그들의 몫을 그들에게 되돌려 주며, 유전 공학적 패러다임을 버리고 비폭력적 유기 농업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철폐해야 할 무역장벽으로 간주되고 있는 식량 안전 문화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자는 주장이다.

대학에서 핵물리학을 전공한 저자는 환경운동가이자 여성과 자연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스트로, 인도의 ‘과학 기술 생태학 연구재단’대표를 맡고 있다. 가디언지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급진적 과학자’라고 평했으며, 1993년 제3 세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Right Livelihood Award’를 수상했다.

이런 이력이 말해주듯 저자의 주장에는 급진적이거나 반론이 제기될 부분이 적지 않다. 녹색 혁명이나 유전자 변형 작물 등이 하나의 예다. 또 저자는 식량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방법은 대규모 시민운동 뿐이고, 이 운동은 유럽 일본 인도 브라질 등에서 탄력을 얻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얼마나 실효를 거둘 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세계화를 먹거리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바라보는 데는 이 책이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다.

이상호 논설위원

입력시간 2003/05/1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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