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타운] 화성으로 간 사나이

꿈을 먹고 사는 21세기 어린왕자

■ 감독 : 김정권
■ 주연 : 신하균, 김희선, 박소현, 김민준
■ 장르 : 드라마, 로맨스
■ 제작년도 : 2003
■ 개봉일 : 2003년 05월 16일
■ 국가 : 한국
■ 공식홈페이지 : www.gomars.co.kr

영화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환타지 성격의 영화다. 시나리오가 환타지라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들이 그려 나가는 이야기의 모티브가 그렇다는 것이다. 시골과 도시에서 서로 떨어져 있는 승재 (신하균)와 소희(김희선)가 그려 나가는 사랑은 어린 시절 환상에서의 출발이라 하겠다.

여기서 서로 존재하는 공간인 고향마을과 도시의 구분은 이 영화의 중요한 키 포인트로 작용한다.

이 영화의 촬영 및 조명 구도는 시골과 도시라는 대립적 이미지를 영상으로 표현하는데 여러 각도로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승재가 사는 시골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옐로우 톤을 많이 썼고 소희가 살아가는 도시는 차가운 느낌의 블루 톤을 살린 것이 그것이다.

물론 이 표현은 근본적으로 어린 시절과 성년 시절의 이상을 대립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영화는 소희가 돌아가신 아빠를 그리며 화성에 보낸 편지에 대해 승재가 그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 답장을 대신하면서 사랑이 싹튼다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려낸 김정권 감독은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용병이반>, <스카이 닥터>, <기막힌 사내들>, <간첩 리철진>의 조감독을 거쳐 <동감>으로 정식 데뷔한 감독이다. 2000년 첫 영화 <동감>으로 전국 120만 관객을 모았다. 능력 있는 흥행 감독이다.

그는 “남들은 생긴 거 답지 않게 멜로만 고집한다고 하지만 난 멜로가 좋다. 사랑 얘기 뿐 아니라 사람, 희망, 꿈 같은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름답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해 왔다. 그런 그가 또 하나의 로맨스 영화를 구상해 준비기간 2년, 촬영기간을 포함해 <동감>이후 3년 만에 두 번째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다.


감성 멜로와 코미디적 발상의 조화

그는 두 번째 작품 <화성으로 간 사나이>를 제작하는 동안 흥행감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큰 부담을 안았다고 한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와 낙천적인 성격으로 항상 느긋하고 여유 있는 웃음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 김 감독 특유의 감성이 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묻어 난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장진 감독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탓으로 장진 특유의 코미디적 요소가 물씬 풍기는데, 이것은 마냥 한들거리는 순수 감성 멜로 특유의 따분함을 적절히 없애주고 있다.

자연과 섬세하게 어울리는 이야기를 그려내다 보니 영상을 만드는데 가장 애를 먹인 장본인은 바로 ‘햇빛’이었다고 한다. 또 영화 속에서 맑은 물을 찍기 위해 월악산 국립공원을 찾았고, 노력 끝에 얻은 영상은 영화의 맑고 환상적인 느낌을 전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화성으로 간 사나이>는 내용이나 영화의 형식이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신하균이 나오고 행성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얼마 전에 개봉했다 흥행에 실패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와 비슷한 이미지 때문에 마케팅에서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왜 하필 외계와 관련된 느낌을 주는 두 영화에 똑 같은 배우가 출연하게 되었는진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접하는 관객들은 비슷한 이미지로 이 영화를 받아 들이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화성으로 간 사나이>의 내용은 <지구를 지켜라>와 완전히 다르다.

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놓인 시골마을의 순박한 우체부 승재는 죽은 아빠가 화성으로 갔다고 믿고 있는 이웃집 소녀 소희에게 절대 오지 않을, 아니 오지 않아야 마땅한 아빠의 답장을 대신 써 주며 사랑을 키운다.

소희를 위해 빨간 우체통에 밤새 쓴 편지를 넣던 승재는 결국 제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고향 마을 우체부가 되어 소희가 떠난 후에도, 소희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녀의 할머니에게 소희의 답장을 대신 써준다.


소중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화성에 잠시 여행을 떠난 아빠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 준다고 믿던 소희. 그렇게 순진했던 그녀는 차가운 도시에서 성공을 위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쉬지 않는 여자로 성장했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가진 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만 그 사랑은 영화가 그리고자 하는 진실하고 판타지한 사랑이 아니기에 쪽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꿈도 희망도 사랑도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된 소희는 유일하게 남은 소중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어느날 깨닫고 승재를 찾게 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영화는 안타까움을 배가 시키기 위해 다시 한번 남은 쪽박을 마저 깨버린다. 승재는 그녀를 기다리다 먼저 화성이라는 이름의 저승으로 떠나고 만 것이다.

“소희의 마지막 소중함이 되기 위해 소희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모여있는 별 ‘화성’ 으로…” 떠난다는 설정이지만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제 그 누구도 답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에 홀로 남겨진 소희가 느끼는 슬픔의 본질이라 하겠다.

사춘기 시절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를 거친 이들이라면 한번쯤 ‘어린왕자’같은 소설을 읽고 판타지의 나래를 펼치며 유치한 시 구절을 끄적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글을 끄적이면서 상상했던 자신을 둘러싼 여러 가지 애틋한 가상들을 영상으로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다.

또 배우들의 이미지를 그대로 적용시킨 영화라 할 수 있겠는데, 연기면에서 신하균의 연기는 그 이미지를 이 영화에서는 그대로 적용시켰다. 김희선의 연기 또한 연기력이 어떻다 하기 보다 김희선이 외적으로 주는 그 이미지를 이 영화는 얼마나 잘 살렸는가를 보는 게 더 중요한 듯 하다.

‘청순가련’도 아니고 그렇다고 ‘재기발랄’도 아닌 두 가지가 오버랩 된 듯한 그녀의 느낌은 참으로 이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연기력에서는 조금 아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의 소희와 김희선이 주는 느낌이 많이 달라 나중에 성장한 그녀를 대할라치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멜로 장르와 잘 어울리는 김 감독의 감성이 살아있는 이 영화에서 독자들은 ‘동감’에서 받았던 느낌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윤지환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2003/05/16 14:5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