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세계여행] 오스트리아

취기가 돌면 낭만적이 된다. 술에 취하고, 낭만에 취한다. 맨 정신에는 어색하던 노래도 술 한 잔에 그럴싸하게 한 가락 뽑아져 나온다. 자연에 취해도 그런가 보다.그래서 천혜의 자연이 있는 지역에서는 어김 없이 예술이 융성하지 않았는가.

국토의 3분의 2 가량이 알프스 산맥으로 뒤덮인 오스트리아는 그런 나라다. 이곳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취기가 잔뜩 몰려 온다. 온 천지가 푸르다. 하늘도, 산도, 호수도, 초지도.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맥의 만년설만이 푸르름 속에 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을 뿐이다.

술이 지나치면 취기는 객기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하기 나름이다. 1,000년의 역사가 도시 마다 여전히 살아 숨쉴 수 있는 것은 낭만적 취기를 지키기 위한 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천년 고도 빈의 건물 여행

합스부르크 왕가는 13세기부터 독일 헝가리 체코 스페인 포르트갈 등 유럽 각국을 650년 가량 통치했다. 그 속에서 음악이, 예술이 싹텄다. 빈(영어 식으로는 비엔나라고 부른다)은 그래서 오스트리아의 수도 보다는 유럽 왕실의 수도, 세계 음악의 수도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빈으로의 여행은 유럽 역사와 함께하는 건물 여행이다. 구시가 중심을 타고 도는 4.5㎞ 길이의 순환 도로 ‘링’ 거리에 들어 서면 시간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 간다.

1147년 지어진 슈테판 성당에서부터 폴크스가르텐(시민공원), 부르크시어터(국립극장), 라트하우스(시청), 자연사박물관, 그리고 1869년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 공연과 함께 문을 연 국립오페라극장까지 옛 합스부르크 왕가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는 건물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다. 그 한 가운데 서면 비둘기의 날갯짓도 트램(전차)의 바퀴 소리도 모두 왈츠가 된다.

그 중 압권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이용됐던, 아름다운 분수라는 이름의 쉔부른 궁전이다. 1700년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 시대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궁전 내부는 모델이 된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의 화려함을 능가한다. 1,441개의 방(이중 45곳의 방이 일반에게 공개된다)의 장식 하나 하나에는 세심한 배려의 흔적이 묻어난다.

혹시 빈에 들르면 도나우(다뉴브)강이 내려다 보이는 노천 카페에서 비엔나 커피를 마시며 왈츠에 흠뻑 젖어보겠노라고 작심했다면 계획을 약간 수정하는 것이 좋다. 애석하게도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라고 이름이 붙여진 커피가 없기 때문이다. (멜랑시라는 커피가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나 커피와 가장 유사하다.)


붉은 지붕이 아름다운 문화의 도시 그라쯔

빈에서 남쪽으로 차로 2시간 가량 달리면 빈(인구 150만명)에 이어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쯔(25만명)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이 도시는 거리 곳곳이 문화 유산으로 뒤덮인 하나의 박물관이다.

우리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배경이 된 란트하우스(시민회관), 그라쯔 시청이 자리 잡은 중앙 광장,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그라쯔 대성당…. 그래서 유엔은 이 도시를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라쯔를 가장 돋보이게 하는 것은 붉은 색 물결의 구시가 건물 지붕들이다. 473㎙ 높이의 작은 산에 세워진 그라쯔 산성에 오르면 시계탑 아래로 펼쳐지는 온통 붉은색으로 채색된 도시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인근에서 1박을 해야 한다면 블루마우라는 작은 마을을 찾아가 보자. 그라쯔에서 60㎞ 떨어진 블루마우에서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흰색 등 원색의 외벽이 마치 동화 속 요술성 같은 ‘로그너 리조트’가 관광객을 맞이한다.

세계적인 건축가 훈데르트 바서가 그라쯔 지방의 옛스러움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시켜 설계한 건물이다. 숙소에 짐을 푼 뒤 야외 온천 수영장에 몸을 담그면 여독이 말끔히 가신다. 간혹 수영복을 걸치지 않고 온천 수영을 즐기는 낭만족들이 있어 운이 좋다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다시 차로 북쪽으로 2시간 가량 이동하면 잘츠캄머굿 지역의 백미라는 조그만 호반 마을 할슈타트다. 햇빛을 받아 유난히도 광채를 뿜어내는 호수를 내려다보며 소금 광산의 경사를 따라 150채의 그림 같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마을에서는 나무도 집의 일부가 된다. 비탈진 땅이 좁았기 때문이라던가. 하얀 색 담벼락을 타고 오른 나무는 예쁘게 그려진 벽화와도 같다.


풍요의 도시 잘츠부르크

오스트리아 서쪽 ‘소금의 성’이라는 뜻의 잘츠부르크는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도시다. 소금 무역으로 늘 풍요를 누렸던 이 도시를 시인 칼 하인리히 바겔은 이렇게 표현했다. “잘츠부르크는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도시다.”

처음 찾는 잘츠부르크가 낯익은 느낌이라면 그것은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때문일 테다. 꽃이 만개한 미라벨 정원에 들어서면 난장이 동산에서, 너도 밤나무 아치에서, 계단 위에서 영화 속 마리아가 아이들과 손을 잡고 달려 나와 흥겹게 ‘도레미송’을 부를 것만 같다. “Doe a deer, a female deer. Ray a drop of golden sun….”

구시가 중심에 내려 서면 간판으로 잘 알려진 길, 게트라이데 가세(거리)다. 100㎙ 가량 좁은 길을 따라 밀집한 상점 위로 수백년 전부터 보존돼 온 철로 만든 수공 간판이 인상적이다. 문맹률이 높았던 중세 시대, 글을 읽을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상점의 특징이 디자인으로 표현됐다.

거리의 끝 지점, 음악 신동 모짜르트의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정작 그는 생전에 이 도시를 늘 떠나고 싶어 했다지만, 도시에게 그는 언제나 가장 큰 자랑 거리였다. 그가 네 살 때 연주했던 바이올린, 아버지 레오폴드와 주고받은 편지, 자필 악보 등 전시물 하나 하나에서 그의 음악이 되살아 난다.

헬브른 궁전은 대주교가 여름 피서 장소로 이용했던 곳. 1615년 건축된 이 궁전은 장난을 좋아했던 대주교 마쿠스 시티쿠스가 성내 곳곳에 혼자만 아는 ‘깜짝 분수’를 만들어 놓고 초대한 손님에게 물벼락을 주었다고 한다. 대주교의 장난기를 물려 받은 가이드가 언제 어느 곳에서 ‘깜짝 분수’를 쏘아댈 지 모르니 물벼락을 맞아도 문제가 없는 의상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해질 녘 언덕 위 호엔잘츠부르크성을 배경으로 시내에 노을이 밀려 들면 오래된 건축물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발산한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아 거품이 잔뜩 묻어나는 스티글(이 도시에서 가장 인기있는 맥주 중 하나) 맥주 한 잔을 부딪치며 길동무들과 이렇게 외쳐보는 것은 어떨까. 여행의 낭만이 한층 배가될 수 있을 테다. “프로우스트(건배).”


인스부르크에서 알프스와 하나가 된다

만년설이 덮인 알프스를 만끽하고 싶다면 이제부터가 제격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키 코스 중 하나라는 티롤 지역의 인스부르크는 동계올림픽을 두차례나 개최한 유서 깊은 유럽의 고도다.

2,657장의 금박 지붕이 입혀졌다는 구시가의 ‘작은 황금 지붕’을 잠시 둘러본 뒤 인근의 할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러 13세기 중세 기사들이 이용했다는 식당을 체험해보자.

올해로 700년째를 맞는 ‘리터 쿠켄’이라는 어두침침한 식당에 들어서면 칼과 방패로 무장한 중세 기사들의 동상과 벽난로, 곰 박제 등 실감나는 내부 장식에 고객들은 모두 기사가 된다. 식사 역시 기사들의 습성대로 무조건 손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 여주인 요한나 씨의 설명. 커다란 쟁반 위에 놓여진 햄과 치즈가 들어간 빵, 닭 튀김, 감자 등이 보기에도 푸짐하다.

인스부르크에서 제필드 마을을 지나 독일 국경을 막 넘어가면 해발 2,968㎙의 추크슈피제다. 등산 톱니바퀴 열차나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온통 보이는 건 눈 뿐이다. 눈에 비친 햇살이 강렬해 선글라스가 없으면 눈을 뜨기도 힘들 지경이다. 각지에서 몰려 든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경사 높은 산을 미끄러지며 봄날의 자유 활강을 즐긴다. 그렇게 이곳의 사람들은 알프스와 하나가 된다.


☞ 여행팁 :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로마). 여기에 1~2개 국가를 덧붙인다면 스위스와 독일. 서유럽 여행은 보통 그렇다.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명소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도장 찍기 여행’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오스트리아 일주가 제 격이다. 한반도 절반인 우리나라의 크기에도 못 미치는 자그마한 나라(8만3,858㎢)이지만 유럽 전체의 역사가, 그리고 웅장한 알프스가 그 속에 있다.

오스트리아로 가는 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수도 빈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인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35분, 다시 빈까지 1시간20분이다. 대기 시간까지 감안하면 14~15시간은 족히 걸리는 먼 나라다.

오스트리아 동북부 빈에서 시작한 여행은 그라쯔, 할슈타트, 잘츠부르크, 인스부르크를 거쳐 추크슈피제에서 마무리 된다. 하나투어에서는 5월부터 오스트리아 전역과 독일 남부 뮌헨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7박8일짜리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매주 수요일 출발하며 가격은 299만원. (02)725-6000.

글·사진 이영태기자

입력시간 2003/05/16 17:00


글·사진 이영태 ytlee@hk.co.kr